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잉글랜드의 왕비들...(5) 스코틀랜드의 마틸다 :헨리 1세의 왕비 (첫번째)

엘아라 2014. 10. 9.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헨리 1세부터 하는군요.

잉글랜드 중세는 사실 잘 안 읽어봐서 제가 잘 모르거든요. 에드워드 3세 이후는 좀 읽엇는데 이전은 진짜 난감하다죠.--;;

하여튼 열심히 자료를 찾아보고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잉글랜드의 왕비들...(5) 스코틀랜드의 마틸다 :헨리 1세의 왕비 (첫번째)





스코틀랜드의 마틸다

또는 이디스

잉글랜드의 마틸다 왕비

Matilda of Scotland

(c. 1080 – 1 May 1118) 


잉글랜드의 헨리 1세의 첫번째 왕비였던 스코틀랜드의 마틸다는 1080년 여름경에 태어났습니다. 마틸다의 부모는 스코틀랜드의 국왕 말콤 3세와 그의 부인인 성 마거릿입니다.10세기경의 스코틀랜드 역사는 이시기쯤의 잉글랜드 역사만큼이나 복잡한데 말콤 3세의 경우 그의 아버지인 던컨이 살해당한뒤 다른곳으로 피신했다가 스코틀랜드의 국왕이 되었다고 합니다. 말콤 3세의 아버지 던컨의 이야기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라고도 합니다. 말콤3세는 나름 유능한 군인으로 잉글랜드와의 투쟁에서도 성공적이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런 상황은 말콤이 마틸다의 어머니인 성 마거릿과 결혼하게되는 계기가 되었을듯합니다.


말콤 3세

16세기말 그림


훗날 "성인"으로 추앙받아 성 마거릿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 마틸다의 어머니인 웨섹스의 마거릿은 잉글랜드 국왕 에드먼드 2세의 손녀였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할아버지때 덴마크 국왕이 크누트가 잉글랜드를 정복했었습니다. 에드먼드 2세는 크누트의 포로로 사망했고 그의 자녀들은 스웨덴으로 보졌는데 스웨덴 국왕의 호의로 이들은 도망칠수 있었으며 결국 마거릿의 아버지인 에드워드는 헝가리에 머물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가사"라는 이름의 여성과 결혼해서 마거릿과 형제 자매들을 낳았다고 이야기됩니다. 성 마거릿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누군지 정확히 기록이 없는데 여러곳에서 여러 공주들을 마거릿의 어머니라고 추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마거릿의 아버지인 에드워드는 잉글랜드의 왕위계승후보로 다시 잉글랜드로 돌아왔지만 잉글랜드에 돌아간 직후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정복왕 윌리엄이 잉글랜드에 오면서 마거릿의 어머니는 자녀를 데리고 피신해야만했다고 합니다. 



성마거릿의 가계도

아마 저기 맨 아래 두번째가 성 마거릿일듯합니다.

맨 왼쪽 위가 잉글랜드의 국왕 에드먼드 2세입니다.



아마도 이런 정치적 상황은 웨섹스의 마거릿이 스코틀랜드의 국왕인 말콤 3세와 결혼하는 계기가 되었을듯합니다. (...더이상 스코틀랜드 역사는 복잡해서 생략하겠어요..ㅠ.ㅠ 나중에 스코틀랜드 왕비들 할때 다시 보겠어요.ㅠ.ㅠ)


그녀는 원래"이디스"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알려져있습니다만 동시에 당대기록에는 "마틸다"라는 이름으로만 나온다고 합니다. 마틸다의 대부는 정복왕의 장남인 로버트였다고 합니다. 또 정복왕의 아내였던 마틸다 역시 대모로써 세례식에 참석했으며 마틸다라는 이름 역시 왕비의 이름을 땄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플랑드르의 마틸다가 대모로써 세례식에 참석했는데, 아기가 자신의 대모의 머리에 있던 베일을 자신에게 닿게 했고 이것은 아기가 훗날 대모처럼 잉글랜드의 왕비가 될거라는것을 암시햇대나 어쩐대나 그렇습니다.


플랑드르의 마틸다

잉글랜드의 왕비


마틸다는 어린시절 언니인 메리와 함께 이모 크리스티나가 있는 수녀원으로 보내져서 이모의 보호아래 교육을 받았습니다. 아마도 중세시대에 수녀원이나 수도원은 읽기 쓰기등을 가르쳐줬었기에 아마도 훌륭한 교육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다고 추측할수 있을듯합니다. 하지만 마틸다는 이런 수녀원 생활에서 신앙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이게 됩니다.  어머니 마거릿이 "성녀"로 추앙받을 만큼 신앙심이 깊었다는 것과 이모가 수녀였다는것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을듯합니다.



이모 크리스티나


하지만 이런 상황에 대해 그녀의 아버지인 말콤 3세는 매우 화를 냈다고 합니다. 어린 공주를 방문한 사람들은 자주 공주가 수녀복을 입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했었으며, 1093년에는 딸을 방문한 말콤 3세가 딸이 수녀의 베일을 쓰고 있는것을 목겨했다고 합니다. 이를 본 국왕은 매우 대노해서 딸의 베일을 직접 벗겨버렸으며 딸이 수녀가 되는것을 보느니 함께 갔었던 리치몬드 백작 앨런 루퍼스를 사위로 맞겠다고 했다고 전해집니다. (앨런 루퍼스는 정복왕 윌리엄의 가신으로 마틸다보다 40살이나 많은 사람이었기에 국왕의 이야기는 화가나서 그랬다는 이야기와 실제로 국왕이 앨런 루퍼스와 딸을 약혼시켰다는 두가지 의견으로 나뉜다고 합니다) 말콤3세는 딸을 스코틀랜드로 돌아오게 합니다.



앨런 루퍼스

"Honour of Richmond"


1093년 마틸다는 수녀원에서 나오게 되면서 삶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단순히 수녀가 되겠다는 그녀의 삶이 바뀐것이 아니라 스코틀랜드의 공주로써 정치적 상황이 급변하게 되면서 그녀의 삶도 역시 바뀌게 된것이었죠. 1093년 11월 13일 앤윅(Alnwick)전투에서 말콤3세와 그의 장님이 패배하면서 살해당했고, 그 3일뒤에 마틸다의 어머니인 성 마거릿 역시 사망합니다. 그리고 말콤 3세와 그의 장남이 살해당하자 말콤3세의 나머지 아들들과 말콤 3세의 동생간에 스코틀랜드 왕위계승 다툼이 벌어지게 되면서 마틸다의 삶도 불안정하게 되죠.


자료출처

1.Oxford Dictionary of National Biography http://www.oxforddnb.com/

2.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