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잉글랜드의 왕비들...(2) 플랑드르의 마틸다 : 정복왕 윌리엄의 왕비 (첫번째)

엘아라 2014. 9. 11.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이 시리즈의 제목은 사실 "정복왕 윌리엄 이후의 잉글랜드의 왕비들"입니다만...그냥 줄여서 저렇게 쓰겠습니다. 왜냐구요 나중에 "정복왕 윌리엄 이전의 잉글랜드 왕비들"을 할 예정이라서 말입니다.


첫번째로 플랑드르의 마틸다 이야기를 해볼까합니다.

그런데 제가 이쪽 시대 프랑스쪽 가계를 잘 몰라서 완전 헤멜듯하기도 합니다..ㅠ.ㅠ


잉글랜드의 왕비들...(2) 플랑드르의 마틸다 : 정복왕 윌리엄의 왕비




플랑드르의 마틸다

노르망디 공작부인

잉글랜드의 왕비

Matilda of Flanders 

( Mathilde de FlandreMathilda van Vlaanderen

1031 – 2 November 1083)

19세기 상상화-0-;;;



플랑드르의 마틸다는 플랑드르 백작 보두앵 5세와 그의 아내인 프랑스의 아델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플랑드르 백작가문은 9세기무렵 처음으로 플랑드르를 지배했던 가문으로 첫번째 백작 보두앵 1세는 샤를 마뉴의 증손녀였던 유디트와결혼하면서 가문을 세웠는데 유디트는 웨섹스의 왕비였다가 남편이 죽은뒤 프랑스로 돌아왔었다고 합니다. 보두앵은 프랑크 왕국의 공주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의 딸과 결혼하기에는 신분이 딸렸었던듯합니다만 어쨌든 우여곡절끝에 결혼했고 플랑드르 백작이 되었죠. 플랑드르 백작령은 지리적으로 중요한 곳에 위치했었고 이때문에 플랑드르 백작들은 유럽의 유력 왕가들과 결혼했었습니다.

플랑드르 백작가문은 결혼을 통해서 샤를마뉴의 후손인 동시에 역시 결혼을 통해서 잉글랜드의 초대국왕으로 여겨지는 앨프러드 대왕의 후손이기도 했었습니다.

보두앵 5세는 프랑스의 공주와 결혼하므로써 프랑스 왕가에 매우 중요한 인물이 됩니다. 그는 아내의 조카였던 필리프 1세가 어린나이로 즉위하자 그의 섭정이 되기도 했었죠.



플랑드르 백작 보두앵 5세의 씰


마틸다의 어머니인 프랑스의 아델은 경건왕이라고 불렸던 프랑스의 로베르 2세와 그의 아내인 프로방스의 콘스탄스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아델은 원래 노르망디 공작이자 정복왕 윌리엄의 백부였던 리샤르 3세와 결혼했었습니다. 하지만 결혼 6개월뒤 리샤르 3세는 갑작스럽게 사망했고 아델은 플랑드르 백작이었던 보두앵과 재혼한것이었죠.


마틸다는 프랑스 왕가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었을뿐 아니라 여러 왕가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유력가문이었습니다. 이때문에 그녀는 노르망디 공작인 윌리엄 2세(프랑스식으로는 대충 기욤일듯..-0-;;)와 결혼하게 됩니다. 이 결혼을 추진한 사람은 윌리엄의 숙부이자 루앙의 대주교였던 Mauger였다고 합니다. 그는 노르망디 공작 로베르 2세의 적자였음에도 사생아였던 조카 윌리엄을 지지했다고 합니다.(반면 그의 동복동생이었던 기욤은 윌리엄 대신 자신이 노르망디 공작이 되어야한다고 주장하면서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윌리엄의 정통성과 플랑드르 백작령의 위치적 중요성때문에 마틸다와의 결혼을 성사시키려했었던듯합니다.


정복왕 윌리엄의 가계도

....누가 누군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랫쪽의 가지쭉있는 윗 사람이 아마 윌리엄인듯합니다.--;;;;;


결혼 협상은 1048년경에 시작되었는데 둘의 결혼식은 1050년이나 1051년경 노르망디 공작령의 중심 도시였던 루앙에서 거행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둘의결혼은 교황의 허락을 받지 못했는데 당시 교회는 신랑신부가 5세대에 걸쳐서 친척관계가 아니어야지만 결혼을 허락했었는데 윌리엄과 마틸다는 앙주가문을 통해서 친척관계였었습니다. 그러니까 윌리엄의 할머니는 브르타뉴 공작의 딸인 유디트였는데, 유디트의 어머니가 앙주의 에르망가르드 였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앙주 백작 조프리 1세였고 조프리1세는 앙주 백작 풀크 2세의 아들이었습니다. 한편,마틸다의 어머니인 프랑스의 아델은 프로방스의 콘스탄스의 딸이었고, 프로방스의 콘스탄스는 다시 앙주의 아델라이드의 딸이었습니다. 그리고 앙주의 아델라이드는 앙주 백작 풀크 2세의 딸이었죠.

다시 말해서 윌리엄의 할머니의 외할아버지와 마틸다의 어머니의 외할머니가 남매간이었던것입니다. 

둘의 결혼은 1059년에 가서야 교황에 의해서 승인받는데 다른 많은 왕족들처럼 수도원을 봉헌하기로 하고 결혼을 승인받았다고 합니다. 둘은 각각 수도원 하나씩 지어서 봉헌했는데 둘은 칸느에 여성을 위한 수도원과 남성을 위한 수도원을 각각 지었다고 합니다.



윌리엄이 세운 수도원과 마틸다가 세운 수도원



이런 상황은 마틸다와 윌리엄의 결혼에 대한 재미난 전설이 전해져오는 계기가 되었을듯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윌리엄과의 혼담이 오가기 시작했을때 마틸다는 윌리엄과의 혼담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자신은 샤를마뉴의 후손이며 여러 왕가의 후손이며 프랑스 국왕의 조카인것에 비해 윌리엄은 노르망디 공작이긴 하지만 사생아였고 이런 사생아와 결혼하기에 자신의 신분이 너무 높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윌리엄은 화가 났으며 바로 말을 타고 플랑드르 백작의 성이 있는 브뤼허로 갔다고 한다. 그리고 교회를 가는 길이었던 마틸다를 만났는데 그는 그녀의 양갈래 머리를 낚아채서 당황한 시종들 앞에서 말에서 끌어내려 내동댕이 쳤다고 한다. 또다른 버전에서는 역시나 화가난 윌리엄이 릴에 있는 플랑드르 백작의 집으로 가서 방에 있던 마틸다의 양갈래 머리를 잡아 내동댕이 친후에 마틸다를 때렸다고 합니다. 어쨌든 딸이 모욕당한 상황이었기에 플랑드르 백작 역시 가만히 있지 않으려 했었는데 이번에는 마틸다가 윌리엄 아니고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결혼이 성사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의 진실이 어떻든 간에 마틸다가 윌리엄과 결혼하기로 결정한것은 스스로의 선택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윌리엄은 다른 선조들과 달리 마틸다 외에 다른 여성에게서 자녀를 얻었다는 기록이 없는것으로 봐서 둘은 매우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으리라 추측됩니다.



정복왕 윌리엄 

17세기 작품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