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영국의 왕비들...(54)레이디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 조지 6세의 왕비(다섯번째)

엘아라 2014. 8. 28.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영국의 왕비들...(54)레이디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 조지 6세의 왕비(다섯번째)



레이디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영국의 엘리자베스 왕비

Elizabeth Angela Marguerite Bowes-Lyon 

(4 August 1900 – 30 March 2002) 


딸이 결혼하고 후계자가 태어나면서 좀더 편안한 삶을 살것같았던 엘리자베스는 그렇지는 않습니다. 남편인 조지 6세의 건강이 점차 악화되기 시작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남편은 1940년대 말에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하는데 1951년에는 폐암진단을 받게 됩니다. 왕비는 남편이 폐암에 걸린것이 스트레스 때문에 담배를 과도하게 피워서 그렇게 된것이라고 여겼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시아주버니를 퇴위시킨 윈저 공작부인을 더 미워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조지 6세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많은 일을 딸이자 후계자였던 엘리자베스 공주가 하게 됩니다. 1951년 폐암수술을 받은 조지 6세는 어느정도 회복하는듯보였고 공주와 그녀의 남편인 에든버러 공작은 1952년 해외순방을 떠나게 됩니다. 하지만 1952년 2월 조지 6세는 사망했었죠.



여왕과 필립공의 대관식 사진


남편이 죽은후 이제 엘리자베스 왕비의 장녀인 엘리자베스 공주가 여왕이 됩니다. 딸인 엘리자베스 여왕과어머니인 엘리자베스 왕비를 구별하기 위해 언론이나 대중은 왕비를 the queen mother이라는 호칭으로 부르게 되죠. 왕비는 남편이 죽은뒤 공적 생활을 은퇴하고 고향인 스코틀랜드로 돌아가 조용한 생활을 하려했었습니다. 하지만 왕비는 곧 다시 궁으로 돌아와서 의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이것은 당시 수상이었던 처칠의 부탁이 컸다고 합니다. 젊은 여왕부부에 대해서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이런 사람들과 여왕 내외를 중재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모후가 된 엘리자베스 왕비가 이 일에 적임자였기 때문이죠. 결국 엘리자베스 왕비는 다시 돌아왔으며 여러가지 의무를 수행햇으며 자선사업에 열성을 다했으며 여러가지 궁 내부 문제에서도 중재자 역할을 했었습니다.



1970년대

퀸마더


하지만 엘리자베스 왕비는 둘째딸인 마거릿의 결혼문제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녀는 딸이 자신보다 16살이나 많은 이혼남인 타운센드와 결혼하길 원한다는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처음에 관계는 그냥 모른척햇으며 이후에는 알았지만 개입하지는 않습니다. 마거릿은 언니 엘리자베스와 달리 매우 고집세고 격식을 고려하지 않는 여성이었기 때문입니다. 마거릿의 결혼은 정치적으로 복잡한 문제가 있었는데 당시에만 하더라도 이혼은 죄악에 가까웠으며 궁정내에 출입조차 제한받을 정도였습니다. 이런 상황은 여왕이 동생과 이혼남과의 결혼을 허락할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영국 왕실에서는 이런경우 국왕의 허락을 받아야 결혼할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거릿은 뜻을 굽히지 않았는데 결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이 일을 반대했고, 타운센드는 서둘러 외국으로 발령나게 되죠. 마거릿은 오래도록 그와 결혼할수 있을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결국 왕위계승권을 포기하기전에는 결혼할수 없었으며 마거릿은 타운센드와의 결혼을 포기했습니다. 


언니 엘리자베스 여왕과 함께 있는 마거릿 공주


엘리자베스 왕비는 공식의무를 수행하기는 했지만 왕비로써 국정을 수행하는 국왕 곁에 있는 것은 아니었죠. 그리고 나이가 들고 자녀들이 결혼하고 대체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게 되면서 젊은 시절보다 훨씬더 편안함을 누리게 됩니다. 그결과 왕비는 삶에 대해서 좀더 태평해졌고 명랑하고 활달해졌습니다. 맛난 음식들을 많이 먹어서 점차 살이 쪘지만 늘 웃는 모습의 엘리자베스 왕비의 모습은 도리어 "귀엽다"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또 여러 공무를 행복하게 수행했고 그녀의 명랑한 행동은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언론에서는 왕비에게 격식있는 the Queen Mother이라는 호칭보다는 the Queen Mum 이라는 애칭으로 표현했었습니다.



엘리자베스 왕비


물론 엘리자베스 왕비는 비난을 받기도 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예는 바로 조카들의 문제였습니다. 왕비가 가장 좋아한 오빠인 존 보우스-라이언의 두 딸들이 정신적 장애로 인해서 요양원에 있었는데 중요한것은 귀족들의 가계를 알려주는 족보에서는 둘이 살아있었음에도 죽은것으로 표시되었으며 둘이 요양원에 있는 동안 가족들 어느 누구도 둘을 방문하지도 않았으며 둘과 연락하려하지도 않았다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특히 왕비가 지적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단체를 후원했기에 비난이 컸다고 합니다.


엘리자베스 왕비는 나이가 들수록 점차 쇠약해졌지만 대체적으로 건강하게 오래 살았습니다. 하지만 2002년 2월 왕비의 둘째딸인 마거릿 공주가 어머니보다 먼저 사망합니다. 그리고 딸이 죽은 두달뒤 왕비 역시 사망합니다. 엘리자베스 왕비는  윈저성에 남편과 마거릿 공주 곁에 묻혀있습니다.




자료출처

앞쪽과 동일

그림출처

앞쪽과 동일

http://www.telegraph.co.uk/news/picturegalleries/royalty/9176069/The-Queen-Mother-in-pictures.html?frame=21815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