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잉글랜드의 왕비들...(4) 플랑드르의 마틸다 : 정복왕 윌리엄의 왕비

엘아라 2014. 9. 25.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잉글랜드의 왕비들...(4) 플랑드르의 마틸다 : 정복왕 윌리엄의 왕비




플랑드르의 마틸다

노르망디 공작부인

잉글랜드의 왕비

Matilda of Flanders 

(Mathilde de FlandreMathilda van Vlaanderen

(c. 1031 – 2 November 1083)



플랑드르의 마틸다와 정복왕 윌리엄 사이에서는 모두 4명의 아들과 다섯명 이상의 딸이 태어났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중세시대 여성에 대한 기록이 많이 없으며 딸들에 대한 기록은 애매모호한 면이 있었기 때문인듯합니다.또 딸들의 출생 연도 역시 애매하다고 합니다. 재미난 사실은 윌리엄은 사생아를 뒀다는 증거가 없으며 아이들 모두 마틸다의 자녀로 여겨진다고 합니다. 이것은 당시에 매우 드문일로 아마도 둘의 결혼생활이 매우 행복했었다는 방증이 아닐까합니다.



윌리엄과 마틸다


둘사이에 장남은 로베르(로버트)였습니다. 그는 1054년 태어났다고 알려져있지만 실제로는 1051년에 태어났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로베르는 뛰어난 군인이었지만 게으르고 단점이 많은 인물이라고 알려져있었는데 그는 특히 동생들과의 불화로 유명합니다. 동생들과 사이가 나빠졌을때 그의 아버지인 윌리엄은 로베르의 편을 들지 않았고 이에 불만을 품은 로베르는 반란을 획책하다가 실패하고 오래도록 망명생활을 해야했다고 합니다. 어머니인 마틸다의 중재로 겨우 다시 아버지와 다시 만날수 있었다고 합니다. 로베르는 아버지가 죽은뒤 노르망디 공작령을 상속받았는데 그는 동생인 윌리엄 2세가 상속받은 잉글랜드 왕위를 얻고 싶어했으며 윌리엄2세가 사망한뒤 잉글랜드 왕위를 얻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으며 결국 잉글랜드 왕위는 물론 노르망디 공작령까지 동생인 헨리에게 뺏기게 됩니다. 그가 죽은뒤 아들인 기욤은 노르망디를 수복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했고 후손없이 사망했습니다.



장남 로버트


둘째아들은 리샤르(리처드)로 그는 1070년대 초반 뉴포레스트(잉글랜드 남부에 있는 지역으로 대충 왕실 사냥터쯤됩니다.)에서 사냥을 하다가 사고사했습니다. 그의 동생인 윌리엄 2세 역시 이곳에서 사고사했습니다.


셋째아들은 "루퍼스"라는 별명을 가졌던 윌리엄 2세입니다. 정복왕 윌리엄은 죽기전 살아남은 세아들들에게 각각 재산을 분배했는데 장남인 로베르에게는 노르망디 공작령을 윌리엄에게는 잉글랜드 왕국을 물려주었고 막내아들인 헨리에게는 영지를 살수 있게 돈을 줬다고 합니다. 후에 로베르는 자신의 영지를 담보로 동생에게 돈을 빌려서 십자군 원정을 떠났으며, 이에 윌리엄은 노르망디의 섭정으로써 노르망디도 통치했었다고 합니다. 그는 결혼도 하지 않았으며 정부나 사생아도 없었기에 동성연애자라는 의심을 받기도 합니다. 윌리엄 역시 뉴포레스트에서 사고사했는데 그의 죽음이 암살이라는 의견도 있다고 합니다.


윌리엄 2세



넷째아들이자 아들로는 막내아들은 헨리로 그는 형인 윌리엄2세가 죽은뒤 잉글랜드의 국왕이 되는 인물입니다. 윌리엄 2세가 사망했을때 큰형인 로베르는 십자군 전쟁에 참가해서 돌아오지 않고 있었기에 잉글랜드 국왕 지위를 얻을수 있게 되었죠. 후에 형인 로베르와 전쟁을 했지만 결국 잉글랜드 통치권을 확보했으며 후에 노르망디 공작령도 형에게서 뺏어올수 있었습니다. 이후 그는 프랑스 국왕과 전쟁을 통해서 노르망디 공작령의 후게를 확고히 했습니다. 하지만 유일한 남성 후계자였던 윌리엄이 화이트쉽사고로 사망하면서 그에게는 유일한 적자였던 마틸다만이 남았으며 결국 그녀를 자신의 후계자로 선포합니다. 그러나 헨리 1세의 사후 귀족들은 마틸다를 자신들의 군주로 인정하지 않으려했으며 헨리1세의 조카였던 스티븐을 옹립합니다. 결국 이것은 오랜 잉글랜드 내전의 시작이 되는 사건이었죠. 후에 헨리 1세의 외손자이자 마틸다의 아들이었던 앙주 백작 앙리가 잉글랜드의 헨리 2세가 됩니다.



헨리 1세


딸들중 첫째는 아마도 아델리자(또는 아델라이드,아델리다)로 그녀의 출생년도와 사망연도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복왕의 자녀들 명단중에 제일 먼저 이름이 나오는 딸로 아마도 장녀였으리라 추정하며 또는 윌리엄과 마틸다의 첫번째 자녀일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  연대기중에는 헤롤드 국왕이 죽기전 윌리엄의 딸인 "아델리디스"와 약혼한 사이였다고 나오는데 아마도 이 딸과 약혼했을 가능성이 있어보입니다. 그리고 후대에 그녀는 수녀가 되었을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다른 딸인 세실리아 역시 수녀가 되었는데 그녀는 아델리자와 달리 출생연도와 사망연도가 정확히 나와있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세실리아를 큰딸로 추정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세실리아는 어려서부터 교육을 잘 받았으며 형제 자매들과 친했는데 특히 큰오빠인 로베르와 매우 친한 사이였다고 합니다. 그녀는 어린시절 부모에 의해서 수녀원으로 보내졌으며 어머니가 세운 수녀원의 수도원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세실리아


또다른 딸인 마틸다는 출생과 사망연도와 그녀가 정복왕의 딸이라는 사실이 툼스데이북(잉글랜드의 인구 조사서)에 기록되어있다고 합니다.


콘스탄스는 윌리엄과 마틸다의 딸중 가장 재능이 뛰어났었던 딸로 알려져있습니다. 그녀는 어머니인 마틸다가 가장 예뻐한 딸이었다고도 전해집니다. 1089년 그녀는 브르타뉴 공작이었던 알랭 4세와 결혼합니다. 이것은 정치적 목적으로 성사된 결혼이었는데 브르타뉴와 노르망디는 앙숙간이었고, 윌리엄은 알랭의 숙부가 공작령상속을 주장하면서 일으킨 반란을 지원할정도였죠. 어쨌든 콘스탄스와 알랭 4세와의 결혼은 정치적 목적이 강했을듯합니다. 연대기 저자들은 브르타뉴에서의 콘스탄스의 평가를 상반되게 이야기하는데 어떤이는 그녀가 브르타뉴에서 환영받지 못했으며 심지어는 그녀의 남편이 그녀를 독살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반면 어떤이는 그녀가 자선을 베풀었고 사망한뒤 도시 사람들이 그녀를 애도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어쨌든 독살은 후대에 시행된 검사에 의해서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졌다고 합니다.



콘스탄스


아델라는 아마도 헨리 1세와 비슷한 또래로 아마도 윌리엄과 마틸다의 가장 어린 자녀들이었으리라 추정한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아델라는 헨리 1세가 가장 좋아한 누이였다고 합니다. 그녀는 어린시절부터 교육을 잘 받았으며 라틴어도 읽을줄 알았다고 합니다. 아델라는 자신보다 20살이 많은 발루아 백작의 후계자인 에티엔과 결혼했는데 그는 아내를 믿고 십자군 원정에 참가했었다고 합니다.  아델라의 아들인 에티엔은 후에 외삼촌인 헨리 1세의 뒤를 이어 잉글랜드 국왕으로 추대되기도 했습니다. 아델라는 가톨릭교회의성인이기도 합니다.



아델라

스티븐 국왕의 어머니


그리고 레온과 카스티야의 국왕 알폰소 4세와 약혼했다고 알려진 아가사라는 딸도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