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잉글랜드의 왕비들...(6) 스코틀랜드의 마틸다 :헨리 1세의 왕비 (두번째)

엘아라 2014. 10. 16.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잉글랜드의 왕비들...(6) 스코틀랜드의 마틸다 :헨리 1세의 왕비 (두번째)






스코틀랜드의 마틸다

또는 이디스

잉글랜드의 마틸다 왕비

Matilda of Scotland

(c. 1080 – 1 May 1118) 




말콤3세가 전사하고 왕비인 성 마거릿 역시 충격으로 사망하면서 스코틀랜드의 왕위 계승은 다시 복잡하게 돌아가게 됩니다. 말콤 3세의 동생인 도날드 배인이 조카들에게 대항해서 스코틀랜드의 국왕이 되려했으며 결국 말콤 3세의 자녀들과 도날드 사이에 왕위계승 다툼이 일어납니다. 도날드는 스코틀랜드의 국왕이 되면서 조카들을 모두 추방하는데 이때 마틸다 역시 스코틀랜드에서 추방당하게 됩니다. 그녀는 다른 형제들과 함께 잉글랜드로 갔으며 아마도 당시 잉글랜드의 국왕이었던 윌리엄 루퍼스(윌리엄 2세)의 보호를 받았으리라 추측할수 있습니다. 



잉글랜드의 윌리엄 2세

헨리1세의 형


하지만 1093년부터 1100년까지의 마틸다의 행적은 명확하지 않는데 그녀가 수도원으로 돌아오게 해야한다는 이야기정도만 남아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때 몇몇 이야기에서는 샐리스버리 백작인 윌리엄 드 워렌이 마틸다에게 구혼했다는 이야기정도가 남아있다고 합니다만 혼담은 당연히 성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확실한 점은 마틸다가 결혼 이전에 헨리를 알고 있었으며 헨리 역시 마틸다를 알고 있었다는 것은 짐작해볼수 있을듯합니다.


1100년 정복왕 윌리엄의 막내아들인 헨리가 형 윌리엄2세의 뒤를 이어 잉글랜드의 국왕 헨리 1세가 됩니다. 그는 즉위한 직후 마틸다에게 청혼을 하죠. 하지만 마틸다의 상태가 과연 헨리와 결혼할수 있는 신분인지에 대해서 의문이 제기 됩니다. 마틸다는 오래도록 수녀원에 살았었으며 수녀의 옷이나 베일을 입고 쓰기도 햇었었죠.  결국 성직자들이 모여 오랜 논의끝에 마틸다는 수녀로 서원한것이 아니었기에 헨리와 결혼할수 있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헨리 1세


마틸다는 이런 결정을 "매우 행복하게" 받아들였으며 1100년 11월 11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헨리 1세와 결혼했고 잉글랜드의 왕비 마틸다로 대관하게 됩니다. 마틸다와 헨리의 결혼은 잉글랜드에서 매우 환영받게 됩니다. 왜냐면 마틸다는 잉글랜드의 전 국왕의 후손이었을뿐만 아니라 스코틀랜드의 공주로 그녀의 오빠인 에드가는 스코틀랜드의 국왕이었기 때문이었죠.  마틸다는 정복왕이전에 잉글랜드를 통치하던 가문의 직계후손이었으며 이런 상황은 마틸다와 헨리의 자녀들은 잉글랜드를 통치할만한 더 확고한 권리를 갖게 될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마틸다와 헨리의 결혼으로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에 어느정도 우호적인 관계를 보였으며 결국 잉글랜드 북쪽 지방의 안정을 도모할수 있게 되었던것입니다. 특히 마틸다에 대해서 런던 사람들이 매우 호의적이었는데 런던 지역은 전통적으로 웨섹스 왕가에 지지를 표했고 마틸다는 이런 웨섹스 가문의 직계후손이었기때문입니다.



가계도에서의 헨리와 마틸다


마틸다는 혼수를 그다지 많이 가져오지 못했었습니다. 하지만 헨리는 왕비로써 매우 많은 권리를 보장받게 됩니다. 여러임명권이나 도시의 출입세 징수권같은것을 받았으며 이런 권리를 통해 왕비는 안정적 수익을 벌게 되었을듯합니다. 

마틸다와 헨리의 결혼생활은 매우 행복했다고 추정할수 있습니다. 물론 마틸다가 많은 아이를 낳지 않았었지만 아마 그것은 마틸다의 결혼초기 아이를 연년생으로 낳았었고 이에 따른 문제가 생겼을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1101년 마틸다는 아이를 낳았었는데 1102년 2월에 딸인 마틸다를 또 낳았죠. 이것은 둘째딸이 달수를 다 못채우고 태어났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일듯합니다. 그리고 계속 년연생으로 아이를 둘을 더 낳습니다.



헨리1세와 마틸다의 딸 

마틸다

신성로마제국의 황후

앙주 백작부인

헨리 2세의 어머니


자료출처

앞쪽과 동일

그림출처

앞쪽과 동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