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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hite Queen] 재스퍼 튜더 : 헨리 7세의 숙부(두번째)

엘아라 2014. 2. 24.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어째 글들이 점점 길어집니다..ㅠ.ㅠ


[The White Queen] 재스퍼 튜더 : 헨리 7세의 숙부(두번째)


1461년 요크가의 승리로 인해 랭카스터 가문은 매우 위험한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재스퍼의 아버지이자 역시나 랭카스터 가문에 충성스러운 신하였던 오웬 튜더는 전투후 반역자로 처형당합니다. 재스퍼는 웨일즈공과 앙주의 마거릿과 연락을 하면서 계속 요크가문과 투쟁을 시도합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영지인 펌브로크성을 뺏겼으며 1462년 앙주의 마거릿처럼 프랑스로 망명합니다. 프랑스에서 6년간을 기다린 재스퍼 튜더는 1468년 다시 잉글랜드로 돌아오게 됩니다. 튜더 가문은 웨일즈 출신이었기에 웨일즈에서의 랭카스터 지지자를 얻기 위해 자신의 성인 펌브로크 성쪽으로 갔습니다만 그곳에서 역시 웨일즈 출신이었던 윌리엄 허버트에게 사로잡히게 되죠. 이때 윌리엄 허버트는 펌브로크 백작 지위와 영지를 얻었으며 재스퍼 튜더의 조카인 리치먼드 백작 헨리 튜더의 후견인 지위도 얻었습니다. 



윌리엄 허버트의 문장

그는 자신의 딸을 헨리 튜더와 결혼시키려 했습니다만, 에지스코트 전투 이후 워릭 백작에 의해 살해당합니다.


재스퍼는 다시한번 프랑스로 도망쳤야했습니다. 하지만 곧 그는 다시 잉글랜드로 돌아오게 됩니다. 에드워드 4세와 마찰을 빚던 워릭 백작이 프랑스로 와서 랭카스터 가문을 위해 반란을 도모하겠다고 했었죠. 재스퍼는 워릭백작과 함께 다시 잉글랜드로 돌아갔으며, 에드워드 4세를 몰아내고 헨리 6세를 다시 복위시키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이 성공은 잠시뿐이었죠. 다행히 재스퍼는 잉글랜드로 돌아온뒤 조카인 헨리 튜더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재스퍼의 형수이자 헨리의 어머니였던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와 그녀의 남편인 헨리 스탯포드 경과도 만나게 되죠.


1471년은 랭카스터 가문의 재앙의 해였습니다 에드워드 4세가 다시 잉글랜드에 돌아왔으며 워릭 백작은 전사했었죠. 재스퍼는 요크가문과 대적하기 위해 군대를 모았습니다만, 에드워드 4세는 재스퍼와 앙주의 마거릿의 군대가 만나기전 앙주의 마거릿쪽 군대와 전투를 했고 결국 승리를 거뒀습니다. 이때 랭카스터쪽의 직계 남성후계자는 거의다 살해당하게 됩니다. 레이디 마거릿과 그녀의 남편은 요크가문에 충성을 맹세하지만, 그녀는 아들을 지킬수는 없었죠.

재스퍼는 조카인 헨리 튜더를 데리고 브르타뉴로 망명길을 오르게 됩니다. 에드워드 4세는 둘을 잡기 위해 외교적 압력을 행사했지만 재스퍼와 헨리 튜더는 브르타뉴에서 무사히 지낼수 있었습니다. 재스퍼의 조카인 헨리 튜더는 이제 랭카스터 가문의 가장 가까운 왕위계승 요구자였으며 재스퍼는 조카를 훈련시키면서 조카의 성공을 위해 뒷바라지를 합니다.



재스퍼의 조카

헨리 튜더

후에 잉글랜드의 헨리 7세

1470-1480년대 사이


그리고 1485년 조카와 함께 다시 잉글랜드로 돌아가서 리처드 3세의 군대를 물리치고 조카인 헨리 튜더가 잉글랜드 국왕이 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합니다. 헨리 7세는 즉위한뒤 자신의 숙부에 대한 반역 혐의를 벗겨줬으며 그의 지위를 복권시켜줬습니다. 그리고 가터훈장을 수여했고 숙부에게 베드포드 공작 지위를 부여했었죠.


재스퍼 튜더는 1485년 11월 캐서린 우드빌과 결혼합니다. 캐서린 우드빌은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여동생으로 2대 버킹엄 공작의 부인이기도 했습니다. 2대 버킹엄 공작이었던 헨리 스탯포드는 리처드 3세에게 대항해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처형당한 인물이기도 했었습니다. 아마도 캐서린 우드빌과 재스퍼 튜더의 결혼은 조카인 헨리 7세와 요크의 엘리자베스의 결혼처럼 정치적 의도였을듯합니다. 둘사이에서는 사산된 아들이 한명이었을뿐 후손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재스퍼 튜더에게는 장미전쟁중에 태어난 사생아 딸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재스퍼 튜더는 1495년 사망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