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완전히 장미전쟁의 핵심인물들을 다 훓어보고 있는 중인 기분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헨리 6세를 안했군요.-0-;;;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의 남편인 더비 백작도 안했구요..
아직 할사람 많네요....
[The White Queen] 재스퍼 튜더 : 헨리 7세의 숙부(첫번째)
재스퍼 튜더
Jasper Tudor,
1st Duke of Bedford
1st Earl of Pembroke,
(Welsh:Siasbar Tudur)
(c. 1431 – 21/26 December 1495)
재스퍼 튜더의 문장
헨리 7세의 숙부로 죽은 형을 대신해서 조카를 돌보고 가르쳤던것으로 알려진 재스퍼 튜더는 1431년경 오웬 튜더와 헨리 6세의 어머니였던 카트린 드 발루아의 둘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카트린 드 발루아는 첫번째 남편인 헨리 5세가 사망한뒤 어린 아들인 헨리 6세를 돌보면서 지냈었습니다만, 정치적 영향력은 별로 없었다고 합니다. 과부였던 카트린은 웨일즈 출신의 군인인 오웬 튜더와 관계를 맺게 됩니다. 그녀가 오웬 튜더와 결혼했는지 아닌지는 불분명했는데 적어도 캐서린이 살아있었을때 그는 궁정에 있는 것이 용납되었으며 "잉글랜드 인으로써의 권리"를 취득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웨일즈 출신은 잉글랜드 출신이랑 차별대우를 받았다고 합니다.) 카트린 드 발루아는 1437년 아이를 낳은 직후 사망했으며 이후 오웬 튜더는 체포되었다가 풀려났었고 고향인 웨일즈로 돌아가야했다고 합니다.
재스퍼의 아버지 오웬 튜더의 문장
카트린과 오웬의 결혼에 대해서 말이 많은 것은 적어도 캐서린이 살아있을때 그녀의 재혼을 인정받지 못했었기 때문일듯합니다. 섭정단은 대비의 결혼을 허용하지 않았으며 국왕의 허락없이 대비가 결혼하지 못하게 했었다고 합니다. 카트린이 살아있었을 당시 국왕인 헨리 6세가 어머니의 결혼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그 자녀들의 상태가 애매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사실 후대에 카트린과 오웬의 손자인 헨리 7세가 국왕이 되면서 그가 "사생아"의 후손인지 아닌지에 대한 관심때문이었을듯합니다.(리처드 3세의 경우 헨리 튜더에 대해서 부계와 모계 모두 "사생아"출신이라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외할머니 역시 자신이 사생아라고 비난한 보퍼트 가문 출신이라 누워서 침뱉기 정도였다고 할까요.)
헨리 5세와 카트린 드 발루아의 결혼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가 체포된뒤, 카트린 드 발루아의 자녀들은 바킹 수녀원으로 보내졌으며 그곳 수녀였던 캐서린 드 라폴에 의해서 양육되었다고 합니다. 캐서린 드 라 폴은 1대 서퍽 공작인 윌리엄 드 라폴의 여동생이었다고 합니다. 캐서린 드 라 폴은 재스퍼와 그의 형인 에드먼드 그리고 여동생인 마거릿을 돌봤는데 그녀의 오빠인 윌리엄 드 라 폴은 헨리 6세의 총신이었으며, 아마도 캐서린은 오빠를 통해서 국왕에게 이복동생들의 존재와 동생들을 돌보라고 이야기했었을듯합니다.
1442년 국왕인 헨리 6세는 자신의 이부동생들의 양육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국왕은 이부동생들은 수녀원에서 궁정으로 불렀으며, 동생들에게 훌륭한 교육을 시켜줍니다. 헨리 6세는 동생들이 사생아가 아닌 적자로써 국왕의 이부동생임을 인정해줬습니다. 재스퍼와 에드먼드는 사제로부터 여러가지 지식을 교육받았을뿐만 아니라 군인으로써 훈련을 받게 됩니다. 아마도 헨리 6세는 동생들에게 군 지위를 부여해주려했을것입니다. 또 헨리 6세는 동생들이 "적자"로 의회의 인정을 받도록 했으며 에드먼드에게는 "리치먼드 백작"지위를 재스퍼에게는 펌브로크 백작 지위를 부여해줍니다.
헨리 6세
재스퍼는 형과 함께 랭카스터 가문의 충성스러운 신하가 됩니다. 그와 그의 형은 헨리 6세에 중요한 고리중 하나가 되는데 그의 가문은 웨일즈의 유력가문이었으며 이때문에 웨일즈가 국왕에게 충성하도록 힘을 기울일수 있게 했습니다. 또 이런 연결고리는 후에 조카를 국왕으로 세우는데 큰 힘이 되기도 했었죠. 하지만 초기 궁정에서 재스퍼는 요크 공작과 그 주변 귀족들과 랭카스터 가문이 불화하는것을 중단시키려고 노력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장미전쟁은 그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었으며 재스퍼는 이제 국왕의 이부동생으로 랭카스터 가문을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재스퍼 튜더의 형인 리치몬드 백작 에드먼드는 장미전쟁 직후 요크가문의 포로가 되었으며 병사합니다. 그가 죽었을때 그의 아내인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는 겨우 열세살에 임신중이었죠. 재스퍼는 어린 형수를 돌봤으며 조카가 태어나자 형을 대신해서 조카를 돌보게 됩니다.
재스퍼는 장미 전쟁의 여러전투에 참가했었으며 결국 이것은 그가 군사적 경험을 쌓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하지만 1461년 요크가문이 승리하게 되면서 재스퍼의 상황도 어렵게 되죠.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역사이야기 > 영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The White Queen] 재스퍼 튜더 : 헨리 7세의 숙부(두번째) (0) | 2014.02.24 |
---|---|
보퍼트 가문 사람들...(12)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 : 데본 백작부인 (0) | 2014.02.19 |
보퍼트 가문 사람들...(11) 에드먼드 보퍼트 : 2대 서머셋 공작 (0) | 2014.02.12 |
[The White Queen] 레이디 앤 보챔프 : 워릭 백작부인(두번째) (0) | 2014.02.10 |
보퍼트 가문 사람들...(10) 토마스 보퍼트 : 페르셰 백작 (0) | 2014.0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