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

[The White Queen] 레이디 앤 보챔프 : 워릭 백작부인(두번째)

엘아라 2014. 2. 10.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어쩌다보니 글이 두개로 변신했습니다.

ㅠ.ㅠ 제가 글을 쓸때 분량을 대충 생각하긴 하지만 쓰다보면 제맘대로 안될때가 종종있습니다.

지금이 그런 경우라죠..ㅠ.ㅠ


[The White Queen] 레이디 앤 보챔프 : 워릭 백작부인(두번째)



1461년 에드워드 4세가 즉위하면서 워릭 백작가문의 권력은 최고에 이른듯합니다만 이미 이때부터 워릭 백작과 에드워드 4세간의 불화가 싹트고 있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에드워드 4세의 왕비인 엘리자베스 우드빌이 있었죠.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랭카스터 가문의 가신의 아내였으며 그녀의 가문은 랭카스터측과 더 가까운 가문이었습니다. 게다가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왕족의 혈통도 아니었었죠. 그녀가 왕비가 되면서 궁정내에서 자신의 세력을 확대시키려했었고 결국 이것은 워릭 백작과 마찰을 빚게 되는 것입니다.


아마 앤 역시 남편과 마찬가지로 엘리자베스 우드빌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을듯합니다. 앤과 앤의 남편 모두 에드워드 3세의 후손이었죠. 이런 왕실 혈통의 그녀가 평민 출신의 엘리자베스 우드빌에게 머리를 숙여야하는 상황이 그다지 달갑지 않았을듯합니다. 결국 앤은 남편과 행동을 같이하게 되죠.



엘리자베스 우드빌

에드워드 4세와 워릭 백작이 사이가 벌어진데는 엘리자베스 우드빌이 있었습니다.

워릭 백작측에서는 랭카스터 가문의 가신 출신인 우드빌가문이 에드워드 4세의 궁정에서 권력을 얻는데 불안감을 느꼈을듯합니다.반대로 에드워드 4세쪽에서는 안그래도 권력이 비대했었던 워릭 백작에 대한 견제로 우드빌 가문을 중요했을수도 있구요.




1469년 큰딸인 이사벨을 에드워드 4세의 동생인 클라렌스 공작 조지와 결혼시킵니다. 이에 대해서 에드워드 4세는 반대했지만, 워릭 백작 부부는 딸을 공작부인으로 만들었죠. 이것은 에드워드 4세와 워릭 백작간의 긴장을 가중시킨것이됩니다.


1470년 워릭백작부부는 두딸들과 남편과 사위와 함께 프랑스건너갑니다. 이때 이사벨은 임신중이었는데 배에서 아들을 조산했으며 아이는 얼마 살지 못했죠. 그리고 프랑스에서 워릭 백작은 자신의 숙적이었던 앙주의 마거릿과 동맹을 맺습니다. 이 동맹의 조건으로 워릭 백작의 막내딸인 앤 네빌은 헨리 6세의 아들인 웨일즈공 에드워드와 약혼합니다. 워릭 백작은 사위와 함께 다시 잉글랜드로 갔고, 앤은 딸들과 함께 앙주의 마거릿과 프랑스에 남습니다. 1470년 12월 앤 네빌은 웨일즈공과 결혼합니다. 이때 앤 보챔프는 딸의 결혼식에 있었죠 이후 앤 보챔프는 프랑스에 남습니다만, 이사벨은 남편이 있는 잉글랜드로 돌아갑니다.


워릭백작의 반란은 성공한듯 보였고 프랑스에 있던 앤과 앙주의 마거릿 그리고 앤 네빌과 웨일즈공은 잉글랜드로 돌아갈 준비를 합니다. 앤은 앙주의 마거릿과 따로 잉글랜드로 돌아갔습니다만 그녀가 잉글랜드에 도착했을때는 다시 세상이 바껴있었죠. 에드워드 4세가 복귀했으며 그녀의 사위인 클라렌스 공작은 형에게 돌아갔었으며 앤의 남편인 워릭백작은 전장에서 이미 사망한 상태였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앤은 앙주의 마거릿에게 가지 않고 수도원으로 가서 성소에 보호를 받게 됩니다. (중세시대 성당은 일종의 치외법권구역으로 범죄를 저지르거나 아니면 정치적인 이유로 위험할경우 보호를 받을수 있었습니다. 후에 엘리자베스 우드빌 역시 리처드 3세 시절에 같은 일을 했었구요.)



바넷 전투

워릭 백작이 사망한 전투


에드워드 4세는 다시 복위했으며 랭카스터 가문의 직계 후계는 완전히 단절되게 됩니다. 하지만 앤 보챔프의 재산은 왕실 공작들간의 불화를 야기시킵니다. 워릭 백작이 죽었기에 이제 재산은 아내와 두딸들이 상속받게 되었죠. 클라렌스 공작은 아내가 단독으로 재산을 상속받길 원했으며 이때문에 처제인 앤 네빌을 감금하다시피 합니다. 아마 처제를 수녀원에 보내서 재산을 독차지하길 원했을듯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클라렌스 공작의 동생인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가 끼어듭니다. 그는 앤 네빌을 구했으며 그녀와 결혼하므로써 앤의 상속분에 대해서 주장하게 되죠. 게다가 더 복잡하게도 아직 네빌가의 두 상속녀의 어머니인 앤 보챔프가 살아있었다는 것입니다. 워릭 백작의 재산은 앤 보챔프가 상속받은 재산이었기에 딸들이 상속받는것은 어머니가 죽은 뒤어야했었죠. 문제는 앤 보챔프가 성소에 들어가서 보호를 받았기에 그녀의 재산을 논의하는것도 매우 복잡한 문제였다는 것입니다.결국 앤은 "법적으로 사망한 인물"로 취급받았으며 이로써 앤의 딸들과 사위들은 합법적으로 워릭백작의 재산을 상속받게 됩니다.



리처드 3세와 앤 네빌

앤 보챔프의 딸과 사위


아마도 앤은 오래도록 자유롭지 못한 생활을 했을듯합니다. 게다가 딸이 왕비가 되었을때도 대관식에 참석하지 못했던것으로 추정합니다. 하지만 리처드 3세때 연금을 지급받은 기록이 있기에 아마도 리처드가 국왕이 된뒤에 좀 더 자유가 주어졌을듯은 합니다.


앤은 사위와 딸이 죽은 뒤에도 살아남았는데, 그녀는 헨리 7세가 즉위한 뒤인 1486년 네빌가문과 드스펜서 가문의 재산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습니다. 헨리 7세는 그녀가 죽은뒤 그녀의 영지 대부분을 국왕에게 귀속한다는 조건으로 이 권리를 인정해줬다고 합니다.


앤 보챔프는 1492년 사망했는데 그녀가 사망했을때 그녀의 후손은 큰딸인 이사벨의 두 자녀인 에드워드와 마거릿밖에 없었습니다. 에드워드는 1499년 헨리 7세의 명으로 런던탑에서 처형당했으며 마거릿은 헨리 8세의 명으로 역시 런던탑에서 처형당했습니다.


자료&그림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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