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보퍼트 가문 이야기를 하긴 하는데 사실 책을 그다지 많이 안보고 대충 위키로 버티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중세 시대라서 그런지 자료가 불분명한듯해요.
..ㅠ.ㅠ 다른 참조 자료를 봐야할것같긴하네요..어흑..ㅠ.ㅠ
전쟁이야기 싫어서 장미 전쟁이나 백년전쟁을 어떻게든 피해보려고 하는데 잘 안되는군요.
..전쟁 상황을 모르니까 인물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네요..ㅠ.ㅠ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 전기도 읽다가 장미전쟁 이야기 나와서 때려쳤었는데..ㅠ.ㅠ)
보퍼트 가문 사람들...(10) 토마스 보퍼트 : 페르셰 백작
토마스 보퍼트
페르셰 백작
Thomas Beaufort, Count of Perche
(c. 1405 – 3 October 1431)
토마스 보퍼트는 1대 서머셋 백작인 존 보퍼트와 그의 부인인 마거릿 홀랜드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어린시절 사망했으며 그의 어머니는 그의 사촌이었던 클라렌스 공작인 랭카스터의 토마스와 재혼했었습니다.
1419년 토마스 보퍼트는 큰형인 2대 서머셋 백작 헨리 보퍼트와 함께 헨리 5세의 프랑스 침공에 동참했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는 그는 새아버지인 클라렌스 공작과 함께 1421년 앙주 지방의 전투에 참가했었습니다. 하지만 보제 전투에서 잉글랜드 군은 패배했으며, 그는 형인 존 보퍼트와 함께 프랑스의 포로가 됩니다. 형인 서머셋 백작은 몸값이 매우 높았기에 오래도록 포로생활을 했지만, 그의 동생이었던 토마스는 1427년 숙부인 보퍼트 추기경에 의해서 포로교환으로 풀려나게 됩니다.
보제전투
풀려난 즉시, 토마스 보퍼트는 다시 전쟁에 참여했으며, 1427년에는 페르셰 백작 칭호를 부여받습니다. 페르셰 백작령은 노르망디와 멘 사이에 있던 백작령으로 원래는 알랑송 공작인 장 2세의 영지였습니다. 하지만 알랑송 공작은 1424년 전투에서 포로로 잡혔고, 엄청난 몸값을 지급하기 위해 잉글랜드에 자신의 전 재산을 넘겨야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에 토마스 보퍼트는 페르셰 백작칭호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백작령을 자신의 소유로 강하게 주장했었다고 합니다. 토마스의 행동은 일부 그의 숙부인 보퍼트 추기경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기경은 잉글랜드에 영지가 없던 조카를 위해서 프랑스에서 점령한 영지를 확부해주려했었던것이라고 합니다.
토마스 보퍼트는 프랑스와의 전쟁에 지속적으로 참여했으며, 1431년 루비에 포위 공격때 사망했습니다. 그가 죽은 3주후에 도시는 함락되었다고 합니다.
토마스 보퍼트는 미혼으로 죽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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