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보퍼트 가문 다해 갑니다.
참 보퍼트 가문을 보니까 뭐랄가 장미전쟁때 서로 쌈질한 양측이 아예 다른 가문이 아니고 이리저리 다 친척에 인척관계군요.--;;;;;
보퍼트 가문 사람들...(13) 헨리 보퍼트 : 3대 서머셋 공작
헨리 보퍼트
Henry Beaufort,
3rd Duke of Somerset
(26 January 1436 – 15 May 1464)
3대 서머셋 공작이 되는 헨리 보퍼트는 2대 서머셋 공작인 에드먼드 보퍼트와 그의 부인인 레이디 엘레노어 보챔프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인 에드먼드 보퍼트는 랭카스터 공작인 곤트의 존과 그의 세번째 부인인 캐서린 스윈포드의 손자였었죠. 이때문에 그는 랭카스터 가문의 방계 가문으로 그의 아버지는 헨리 5세의 사촌이었고 그는 헨리 6세와 육촌관계였죠. 헨리의 어머니인 레이디 엘레노어 보챔프는 13대 워릭 백작의 딸로 그녀의 이복동생인 레이디 앤 보챔프는 16대 워릭 백작의 부인이기도 햇었습니다. 결국 헨리의 아버지를 살해한 워릭 백작은 헨리 보퍼트의 이모부이기도 했었죠.
헨리 보퍼트의 외할아버지
헨리 보퍼트는 다른 귀족들처럼 기사로 수업을 받았을듯합니다. 하지만 그의 삶을 완전히 바꾼것은 바로 1455년 장미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1차 세인트 알반스 전투였습니다. 여기서 아버지의 숙적인 요크 공작과 워릭 백작은 그의 아버지와 다른 많은 정적들을 살해합니다. 헨리 보퍼트 역시 이 전투에서 부상당했었죠. 그는 아버지의 죽음에 매우 분노했으며 요크가문을 적대시하면서 장미전쟁중 랭카스터 가문을 이끄는 중심 인물중 하나가 됩니다. 그는 전투에 참여했으며 웨이크필드 전투나 2차 세인트 알반스 전투를 승리로 이끌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타운튼전투 이후 그는 다른 랭카스터 가문 지지자들처럼 스코틀랜드로 피신했었습니다.
잉글랜드로 돌아간후. 헨리 보퍼트는 노섬벌랜드의 성들에서 오래도록 저항했지만 결국 요크가문의 국왕인 에드워드와 평화를 원했고, 에드워드는 랭카스터 가문쪽의 핵심 인물이었던 헨리 보퍼트가 자신의 궁정에 오는것은 그가 잉글랜드의 국왕임을 인정하는 중요한 것이라 인식하고 그를 받아들였습니다. 1462년 3월 헨리 보퍼트는 자신의 지위와 영지를 돌려받게 됩니다. 1463년동안 헨리 보퍼트는 에드워드의 궁정에 출입했으며 그의 군사 자문역할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1463년말 헨리 보퍼트는 다시 랭카스터 가문편에 서서 반란을 시도하게 됩니다. 그는 다시 노섬벌랜드 지방으로 갔으며 1464년 5월 15일 헥섬 전투에서 패배합니다.
헨리 보퍼트는 전투 마지막에 사로잡혔으며 잡힌 직후 참수당했다고 합니다. 그의 시신은 헥섬 수도원에 안장되어있습니다.
헥섬 수도원
헨리 보퍼트는 미혼으로 사망했었는데 그에게는 찰스 서머셋이라는 사생아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후에 헨리 7세가 즉위한뒤 적자로 인정받았으며 워세스터 백작 지위를 얻게 되죠. 이후 그의 후손들은 보퍼트 공작이 되었으며 현재 보퍼트 공작 역시 헨리 보퍼트의 후손입니다.
찰스 서머셋
1대 워세스터 백작
헨리 보퍼트의 아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역사이야기 > 영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퍼트 가문 사람들...(14) 에드먼드 보퍼트와 존 보퍼트 (0) | 2014.03.05 |
---|---|
[The White Queen] 헨리 스탯포드 :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의 두번째 남편(첫번째) (0) | 2014.03.03 |
[The White Queen] 재스퍼 튜더 : 헨리 7세의 숙부(두번째) (0) | 2014.02.24 |
보퍼트 가문 사람들...(12)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 : 데본 백작부인 (0) | 2014.02.19 |
[The White Queen] 재스퍼 튜더 : 헨리 7세의 숙부(첫번째) (0) | 2014.0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