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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hite Queen] 앙주의 마거릿 (두번째)
앙주의 마거릿은 왕비로써 어린 아들이자 후계자를 기르는데 전념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치적 상황은 그녀가 아들의 양육에만 집중할수 없게 합니다.
당시 3대 요크 공작이었던 리처드는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보퍼트 가문 사람들과 정치적 권력을 두고 다퉜었는데, 보퍼트 가문이 힘을 잃게 되자 왕국의 최고 권력자가 되죠.
마거릿은 요크 공작을 아들의 왕위계승권을 위협할수도 있는 인물로 판단했었고 그의 정적들에게 힘을 실어주려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동맹관계는 도리어 사람들에게 마거릿의 인기만 떨어뜨리게 만들었죠. 이런 상황은 권력을 가진 리처드에게 도리어 위협적인 상황이 되었으며 기회인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 자신이 정당한 왕위계승자라고 주장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사실 가계로 따지면 리처드가 랭카스터 가문보다 더 높은 왕위계승권을 가지고 있는것이 사실입니다. 그의 어머니가 랭카스터 공작의 형의 후손으로 랭카스터 가문보다 높은 왕위계승권을 가지고 있었죠. 게다가 그의 아버지쪽 역시 에드워드 3세의 후손이었으며 그의 아내는 랭카스터 공작인 곤트의 존의 외손녀이기까지 했습니다.
마거릿과 요크 공작이 불화한것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도 있는데 그녀의 동맹들이었던 서머셋 공작과 서퍽 백작의 요크 공작에 대한 과잉 대응과 의회에서의 요크공작의 인기가 결국 마거릿의 평판을 떨어뜨리고 요크 공작이 왕위 게승을 주장하게된 계기가 되었다고 보기도 합니다.
요크 공작과 서머셋 공작의 불화
셰익스피어 극에 나오는 장면을 묘사한것으로 요크공작은 흰장미 서머셋 공작은 붉은 장미를 들고 있습니다.
어쨌든 요크 공작이 왕위계승권을 주장하는 것은 마거릿의 아들의 계승권을 무시하는 처사였고 마거릿은 가만히 있지 않게 됩니다. 그녀는 요크 공작과 요크 가문에 충성하는 사람들에 대항해 랭카스터 가문에 충성하는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런 불화는 결국 내전이 일어나게 만들었죠.
장미전쟁동안 군대를 이끌 능력이 없던 헨리 6세를 대신해서 앙주의 마거릿이 아들인 에드워드와 함께 전장에 나서게 됩니다. 그녀는 랭카스터쪽의 지도자로 군대를 이끌었었죠.하지만 결국 마거릿은 아들과 함께 간신히 달아나야했으며 에드워드는 잉글랜드의 국왕으로 즉위합니다. 마거릿의 남편인 헨리 6세는 1465년 결국 요크 가문의 포로가 되었고 런던탑에 갇히게 됩니다.
마거릿의 남편
헨리 6세
프랑스의 루이 11세는 마거릿과 사촌관계였고 그녀는 루이 11세를 자신의 동맹으로 만듭니다. 요크가가 프랑스와 적대적이었던 부르고뉴 가문과 동맹이었기에 마거릿은 루이를 자신의 동맹으로 끌어들이게 되죠 여기에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문제로 에드워드 4세와 사이가 벌어진 워릭백작 리처드 네빌도 가담합니다. 마거릿은 자신의 아들인 웨일즈공과 워릭 백작의 딸인 앤 네빌을 결혼시키므로써 동맹을 확약했죠.
1470년 랭카스터 가문의 반격은 성공했고 그녀의 남편인 헨리 6세가 다시 복위합니다. 마거릿은 아들과 며느리와함께 다시 잉글랜드로 갔죠. 1471년 망명지인 부르고뉴에서 돌아온 에드워드 4세는 랭카스터 가문을 무찌르고 왕위를 되찾습니다. 1471년 5월 4일 튜크스베리 전투때 마거릿은 아들과 함께 직접 전투에 참가합니다. 하지만 이 전투는 요크가문의 승리로 끝나죠. 이 전투에서 그녀의 아들인 웨일즈 공 에드워드는 물론 랭카스터 가문의 방계가문인 보퍼트 가문의 남아있던 남성 직계 모두가 살해당합니다. 전투 끝에 마거릿은 포로로 잡히는데 그녀는 아들의 죽음에 충격을 받았고 매우 상심이 컸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인 헨리 6세 역시 이미 튜크스베리 전투 이전에 살해당했었죠.
튜크스베리 전투후 포로가 된 마거릿
마거릿은 런던탑에 갇혔는데 마거릿의 전 시녀였으며 요크가를 지지했었떤 서퍽 공작부인 앨리스 드 라폴(앨리스 초서.제프리 초서의 손녀로 캐서린 스윈포드의 여동생인 필리파의 손녀)이 마거릿의 감시를 맡았다고 합니다. 1475년 마거릿의 사촌인 프랑스의 루이 11세가 마거릿의 몸값을 지불했고,마거릿은 프랑스로 돌아갑니다.
마거릿은 프랑스에서 7년을 더 살았는데, 사촌인 프랑스 국왕과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실 마거릿의 아버지인 르네는 딸을 데려오고 싶었지만 재정적으로 딸의 몸값을 지불할수 없었으며 이에 루이 11세가 대신 몸값을 지불했고 르네의 몇몇 영지들을 얻고 싶어했었습니다. 르네는 다른 후손들에게 상속하려했지만 루이 11세는 그를 압박했으며 이런 문제는 아마도 마거릿이 프랑스로 돌아온뒤 국왕과의 사이가 나빠지게 했을듯합니다. 마거릿은 1482년 앙주에서 사망했으며 부모곁에 묻혔습니다.
1475년경의 앙주의 마거릿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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