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

[The White Queen] 앙주의 마거릿 (첫번째)

엘아라 2014. 1. 13.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앙주의 마거릿을 할까말까하다가 뭐 앤 네빌도 했는데 싶어서 그냥 하기로 합니다.

원래 앤의 엄마를 할려고 했는데 그냥 앙주의 마거릿 할까합니다.

이렇게 써놓으면 나중에 잉글랜드 왕비들 할때 편하겠죠.-0-;;;;;;;;


솔직히 나중을 위해서 설명을 좀 생략...(저도 뒷일을 생각해야죠..ㅎㅎㅎ)


[The White Queen] 앙주의 마거릿 (첫번째)





앙주의 마거릿

마르그리트 당주

Margaret of Anjou

 (Marguerite d'Anjou

(23 March 1430 – 25 August 1482) 


앙주의 마거릿은 앙주 공작이자 나폴리와 시칠리의 국왕이었던 르네와 그의 첫번째 부인인 로렌의 이사벨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로렌 공작의 상속녀로 남편과 함께 공동 통치자였죠. 이사벨은 위험에 빠진 남편을 구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가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마거릿은 매우 교육을 잘 받았는데 마거릿의 어머니는 자녀들을 학자이자 저작자였던 앙투안 드 살이 아이들을 가르치게 했다고 합니다.



마거릿의 부모

앙주 공작이나 나폴리 국왕인 르네와 그의 부인이자 로렌의 여공작이었던 이사벨



앙주의 마거릿은 1445년 자신보다 여덟살 많은 잉글랜드의 국왕 헨리 6세와 결혼합니다. 이때 그녀의 고모부였던 샤를 8세는 이 결혼을 승락하는 조건으로 다양한 이익을 얻어냈다고 합니다. 열다섯살의 마거릿은 헨리 6세와 결혼했으며 이제 잉글랜드의 왕비로 대관까지 합니다. 열다섯살의 마거릿은 매우 아름답고 자부심강하고 의지가 굳은 인물이었습니다. 어렸지만 정치적 상황을 직시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녀의 아버지가 나폴리 왕위를 두고 아라곤 왕가와다투고 있었을 뿐만아니라 그녀의 어머니가 상속녀로 남편과 함께 로렌 공작령을 통치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이런 상황은 앙주의 마거릿이 정치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명확하게 알게 해줍니다.



헨리 6세와 마거릿의 결혼


마거릿은 결혼 8년만에 1453년 아들이자 후계자인 윈체스터의 에드워드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국왕 헨리 6세는 이미 정신적인 상태가 나빠지기 시작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결혼후에 오래도록 없다가 생긴 아이에 국왕의 상태도 온전치 못했기에 잉글랜드에서는 마거릿의 아들이 다른 남자의 아이일거라는 소문이 파다했다고 합니다.  마거릿과 유대관계를 맺었던 2대 서머셋 공작 에드먼드 보퍼트나 윌트셔 백작 제임스 버틀러등이 아이 아버지라는 의심을 받았다고 합니다.


마거릿은 화를 잘내는 성품이었다고 합니다만 자신의 남편처럼 배우는것을 좋아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아마도 어린시절 학자에게 교육을 받았던 마거릿은 남편과 같은 취미를 즐길수 있었을듯합니다. 그녀는 캠브리지 대학의 퀸스 칼리지를 세우는데 후원했다고 합니다.(이후 엘리자베스 우드빌이 다시 이 칼리지를 세우는데 후원자로 나섰고 이때문에 Queens' College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지만 곧 잉글랜드 왕비이자 후계자의 어머니인 마거릿의 삶을 크게 바꿔놓는 장미전쟁이 시작되게 되죠.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