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합스부르크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64)마리아 루도비카 : 황제 프란츠 2세의 딸 (네번째)

엘아라 2013. 12. 17.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64)마리아 루도비카 : 황제 프란츠 2세의 딸 (네번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루도비카 여대공

프랑스의 마리 루이즈 황후

파르마의 마리아 루이사 여공작

Marie Louise of Austria

(Maria Ludovica Leopoldina Franziska Therese Josepha Lucia von Habsburg-Lothringen)

(12 December 1791 – 17 December 1847) 

1820년대



1814년 여름 마리 루이즈의 아버지인 황제 프란츠 1세는 딸이 온천을 하러 가는데 아담 폰 나이페르크 백작을 동행시킵니다. 이것은 마리 루이즈가 남편인 나폴레옹에게 가는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죠. 나이페르크 백작은 자신의 임무를 잘 이해했으며 훌륭하게 수행합니다. 그는 훗날 이때의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6주안에 나는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으며, 6달 안에 그녀의 연인이되었다."

마리 루이즈는 나이페르크 백작과 사랑에 빠졌으며 남편이 있는 엘바섬으로 가는것을 단념합니다.



나이페르크 백작


1815년 3월 나폴레옹은 엘바섬을 탈출했으며 다시한번 전쟁을 시작합니다. 마리 루이즈는 매우 난처한 상황이었는데 마리 루이즈의 새어머니인 마리아 루도비카 황후는 마리 루이즈에게 오스트리아군의 승리를 기원하는 행사에 참가하라고 강요했다고 합니다만 마리 루이즈는 이를 거절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과도 함께 하지 않았는데 남편에게 자신은 이혼을 하지는 않을것이지만 더이상 남편과 함께 하지 않을것이며 이런 자신의 입장을 이해해달라고 하죠.

나폴레옹의 탈출은 100일 천하로 끝났으며 나폴레옹은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보내집니다. 



세인트 헬레나에서의 나폴레옹


비엔나 회의에서 마리 루이즈는 파르마 여공작의 지위를 인정받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아들이 파르마 공작령을 상속하는것에 대해서는 반대합니다. 마리 루이즈가 살아있는 동안만 그녀가 파르마 여공작지위를 인정받으며 그녀가 사망한 후에는 파르마 공작령은 그녀의 후손이 상속받을수는 없게 하죠. 또 마리 루이즈는 아들을 자기가 키울수 없었습니다. 마리 루이즈의 아들인 나폴레옹 2세는 오스트리아에서 자랐으며 그는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이 아닌 라이히슈타트 공작 프란츠라는 이름으로 살았죠. 마리 루이즈는 아들을 만날수는 없었지만 자주 동생들을 통해서 소식을 전해들었다고 합니다. 



나폴레옹 2세

1818년경


마리 루이즈의 아들인 나폴레옹 2세는 오스트리아에서 아버지에 대해 금지 당한채 우울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황제 프란츠 1세는 이 불우한 외손자를 무척이나 아꼈다고 합니다. 나폴레옹 2세는 매우 잘생겼으며 총명했다고 알려져있는데, 마리 루이즈의 여동생은 마리 루이즈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조카가 너무나 잘생겨서 자신이 젊었다면 당장 반해버렸을거라고 이야기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나폴레옹 2세는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만약 조제핀이 내 어머니였다면 내 아버지는 세인트 헬레나에 묻히지 않았을것이고 나 역시 빈에서 자라지 않았을것이다. 내 어머니는 상냥하지만 연약한 분으로 내 아버지에게 어울리지 않는 아내였다"라고 했었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