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합스부르크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62)마리아 루도비카 : 황제 프란츠 2세의 딸 (두번째)

엘아라 2013. 12. 3.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62)마리아 루도비카 : 황제 프란츠 2세의 딸 (두번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루도비카 여대공

프랑스의 마리 루이즈 황후

파르마 여공작

Marie Louise of Austria

(Maria Ludovica Leopoldina Franziska Therese Josepha Lucia von Habsburg-Lothringen)

(12 December 1791 – 17 December 1847) 

1810년




마리아 루도비카는 1810년 3월 11일 빈에서 대리 결혼을 치룹니다. 이 결혼식에 나폴레옹의 대리를 섰던 인물은 마리아 루도비카의 숙부이자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가장 뛰어난 장군중 한명으로 평가받았던 테센 공작 카를 대공이었습니다. 이 결혼식후 이제 마리아 루도비카는 프랑스의 황후이자 이탈리아의 왕비가 되었죠.  결혼식은 매우 호화롭게 치뤄졌으며,마리아 루도비카의 결혼식은 이전에 프랑스로 시집갔었던 루이 16세의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의 전례를 그대로 따르려했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마리아 루도비카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겪었던 "교환절차"를 그대로 답습하게 됩니다. 3월 13일 빈을 출발한 마리아 루도비카는 3월 16일 프랑스 국경근처에 도착했으며 이곳에서 정식으로 프랑스로 들어갑니다. 




마리 루이즈의 프랑스 도착


이제 프랑스식으로 마리-루이즈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될 마리아 루도비카는 파리에 도착하기 전인 3월 27일 콩피에뉴에서 나폴레옹을 처음으로 만납니다. 이때 마리 루이즈는 나폴레옹에게 "초상화보다 훨씬더 멋져보이네요"라고 이야기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둘은 1810년 4월 1일 생클라우드 성에서 시민예식을 치뤘으며 다음날 파리로 가서 마리-루이즈의 대관식을 치뤘습니다.


황후로써 마리 루이즈는 나폴레옹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나폴레옹은 사랑했었지만 늘 불륜과 도박을 일삼던 조제핀과 달른 온순하며 남편에게 늘 순종적인 마리 루이즈에게 빠져들게 됩니다. 마리 루이즈 역시 나폴레옹과 함께하면서 긍정적인 면을 바라봤는데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황제가 사람들에게 부당한 평가를 받고 있으며 황제를 안다면 그를 좀더 좋게 볼것이라고 이야기하죠.


나폴레옹과 마리 루이즈의 결혼식


마리 루이즈와 나폴레옹의 결혼이후 외교적으로 오스트리아와 프랑스 사이는 갑작스러운 우정관계가 형성됩니다. 오스트리아에서 나폴레옹에 대한 평가가 갑자기 호의적으로 변햇으며 호의적인 편지들이 전달되기도 했었죠.

마리 루이즈는 공적인 모습에서 거의 대화를 하지 않고 남편의 곁에 있는 모습만 보여줍니다. 이것은 프랑스에서 그녀가 너무 수줍어한다는 평가를 받게 합니다. 조제핀의 경우 매우 활발한 여성이었던것에 비해 마리 루이즈는 정치적인 면에서도 거의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것은 마리 루이즈가 빈에서 교육받은 것으로 좋은 왕비가 되기 위한 교육의 결과였었죠.

또 마리 루이즈는 늘 프랑스 사람들을 두려워했는데 그녀는 자신의 대고모인 마리 앙투아네트의 운명을 늘 기억했었죠. 이때문에 마리 루이즈는 프랑스인들이 돌변해서 자신을 마리 앙투아네트와 같은 운명으로 만들지 않을까 두려워했었다고 합니다.



마리 루이즈 

1810년경


마리 루이즈는 나폴레옹의 친척들 사이에서는 그다지 호감을 얻지 못합니다. 나폴레옹의 누이들은 조제핀을 싫어했던것만큼이나 마리 루이즈에 대해서도 그다지 호감을 갖지 않습니다. 나폴레옹의 어머니인 마담 메르도 마리 루이즈를 그냥 미숙한 어린 여성으로 밖에 보지 않았습니다. 마리 루이즈에게 호의적이었던 인물은 조제핀의 딸인 오르탕스였다고 합니다.  또 마리 루이즈는 조제핀을 보는것역시 꺼려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남편의 전 부인이며 여전히 화려한 여성이었던 조제핀을 만나는것이 껄끄러웠을듯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리 루이즈에게 위안이 된 사람은 마리 루이즈의 수석시녀였던 몬테벨로 공작부인이었다고 합니다. (몬테벨로 공작부인은 장 란의 아내로 남편이 죽은뒤 궁정에서 일했었다고 합니다.)



마담 메르

나폴레옹의 어머니

레티치아 보나파르트

1802년경


프랑스에서 마리 루이즈의 개인적 삶은 빈에서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수와 바느질에 관심이 많았으며, 하프나 하프시코드,피아노 같은 악기를 자주 연주하고는 했었죠. 또 미술에도 관심이 많았으며 독서도 많이 했습니다. 음식등에도 관심이 많았으며 정원에도 관심이 많았죠. 특히 그녀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지은 쁘티 트리아농을 매우 좋아했는데 이곳은 그녀가 어린시절 자랐던 락센부르크 성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입니다. 또 빈에서 종교를 중요시하면서 성장했던 마리 루이즈는 일요일이나 다른 종교적 절기를 매우 신실하게 지켰습니다. 그리고 자선사업에 참여하기도 했었죠.


그리고 마리 루이즈는 자신이 나폴레옹과 결혼한 의무를 수행합니다. 1810년 7월 마리 루이즈는 임신했으며 나폴레옹에게 기다리던 후계자를 낳아주게 됩니다.



새로태어난 아들과 함께 있는 나폴레옹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