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합스부르크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63)마리아 루도비카 : 황제 프란츠 2세의 딸 (세번째)

엘아라 2013. 12. 10.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63)마리아 루도비카 : 황제 프란츠 2세의 딸 (세번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루도비카 여대공

프랑스의 마리 루이즈 황후

파르마 여공작

Marie Louise of Austria

(Maria Ludovica Leopoldina Franziska Therese Josepha Lucia von Habsburg-Lothringen)

(12 December 1791 – 17 December 1847) 

1812년



마리 루이즈는 1811년 3월 19일 오후 9시 진통을 시작합니다. 출산중 그녀의 상태가 위험해지자 나폴레옹은 아이보다 마리 루이즈를 먼저 구하라고 이야기할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1811년 3월 20일 오전 9시경에 마리 루이즈는 아들을 낳았죠. 이 이아는 나폴레옹 프랑수아 조제프 샤를 보나파르트로 바로 후에 나폴레옹 2세로 알려지게 되는 아이였습니다. 아이의 이름중 프랑수아는 외할아버지인 프란츠 2세의 이름을 딴것이고 조제프는 백부인 조제프 보나파르트의 이름을 샤를은 친할아버지인 카를로 보나파르트의 이름을 딴것이었죠. 이 아이는 나폴레옹의 후계자로 "로마왕"이라는 칭호를 부여받습니다.

마리 루이즈는 아들에게 매우 헌신적이었는데 매일 아침 아들을 데려와 봤으며, 또 오후에는 아들을 보러 늘 갔었다고 합니다.



아들 로마왕과 함께 있는 마리 루이즈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이 시작되자 마리 루이즈는 5월 남편과 함께 드레스덴으로 갔으며 그곳에서 아버지와 새어머니를 만났었습니다. 이곳에서 마리 루이즈는 후에 자신의 두번째 남편이 될 나이페르크 백작을 여기서 처음 만났었습니다. 드레스덴에서 나폴레옹은 러시아를 향해 떠났으며 마리 루이즈는 프라하를 거쳐 가족들을 만나러 갑니다. 그리고 파리로 되돌아오죠. 전쟁동안 마리 루이즈는 나폴레옹과 지속적으로 편지를 주고 받았었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은 대 실패였으며 나폴레옹은 간신히 프랑스로 돌아올수 있었습니다.


1813년 나폴레옹은 독일 전선으로 갔으며 이때 마리 루이즈는 남편을 대신해서 섭정의 지위에 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이 지위는 명목상이었으며 실제로 모든 결정은 여전히 나폴레옹과 그의 참모들이 했었죠. 마리 루이즈는 아버지를 설득해서 오스트리아가 프랑스 측에 서도록 하려 했습니다만 성공하지 못합니다.나폴레옹은 결국 라이프니츠에서 결정적 패배를 당했으며 1813년 11월 프랑스로 돌아옵니다.

1814년 1월 23일 마리 루이즈는 두번째로 섭정으로 임명되었으며, 25일 새벽 세시에 나폴레옹은 마지막으로 방어를 위해 떠나게 됩니다. 이것은 나폴레옹이 아들과 마리 루이즈를 본 마지막이었죠.



아들 로마왕과 함께 있는 마리 루이즈

1812년


대프랑스 동맹군들이 파리로 접근하자, 마리 루이즈는 파리를 떠나는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녀는 동맹군 군주의 딸이었으며 이때문에 동맹군이 자신을 해치지 않으리라 여겼으며 나폴레옹이 퇴위할경우 자신의 아들이 그의 뒤를 잇는것에 대해서도 고려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자신이 떠난다면 부르봉 가문이 프랑스로 돌아올 확률이 높아질거라 여겼었죠. 하지만 나폴레옹은 아내와 아들이 외국인 손에 넘어가느니 센강에 빠져 죽는 편이 낫다고 이야기했고 결국 마리 루이즈는 안전한 곳으로 이동합니다.

마리 루이즈는 그녀의 아버지가 남편을 폐위하거나 자신의 아들의 계승권을 박탈하지 않으리라 기대했었습니다만, 탈레랑의 주도로 4월 3일 프랑스에서 황제의 퇴위가 결정되었죠. 마리 루이즈는 이사실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가 4월 7일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녀는 파리로 돌아가려 했지만 주변 사람들의 만류로 가지 못하죠.



나폴레옹

1814년


나폴레옹은 1814년 4월 11일 퇴위했으며, 엘바섬으로 유배를 가야했습니다. 마리 루이즈는 오스트리아로 돌아가며 그녀에게는 파르마 공작령이 주어지고 그녀의 아들은 이 공작령의 후계자가 되도록 결정되죠.

마리 루이즈는 아버지를 만나기전 남편과 함께 가라는 조언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아버지를 만난뒤 아들과 함께 고향인 빈으로 돌아갑니다. 마리 루이즈는 쇤부르크 궁전에 머물렀는데 마리 루이즈의 형제 자매들은 자주 그녀를 찾아왔지만 아버지와 새어머니는 거의 그녀를 만나러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의외로 마리 루이즈의 외할머니이자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이었던 마리아 카롤리나는 자기 자신은 나폴레옹을 너무나도 싫어했지만,. 외손녀가 남편을 버리고 친정에 와있는것을 못마땅해했다고 합니다. 


마리 루이즈는 이런 상황에 매우 난감해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무정한 아내이자 무관심한 어머니로 보여지는것에 매우 힘들어했으며 "죽는것만이 최선이다"라고 쓸정도로 힘들어했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