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프란츠 2세의 자녀들을 할텐데 마리아 테레지아와 달리 어려서 죽은 딸들에 대해서는 자료가 없군요.
그래서 그냥 성인이 된 자녀들만 하겠습니다. 그럼 맨 처음이 마리 테레즈죠. 그런데 예전에 한번했었는데 또하네요. 그냥하렵니다.
마리 테레즈랑 동생인 마리아 레오폴디나는 내용이 좀 많다죠..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61)마리아 루도비카 : 황제 프란츠 2세의 딸 (첫번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루도비카 여대공
프랑스의 마리 루이즈 황후
파르마 여공작
Marie Louise of Austria
(Maria Ludovica Leopoldina Franziska Therese Josepha Lucia von Habsburg-Lothringen)
(12 December 1791 – 17 December 1847)
1811년경
후에 마리 루이즈라는 프랑스 식이름으로 더 잘알려지게 되는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루도비카 레오폴디나 프란치스카 테레제 요제파 루치아 여대공은 1791년 빈의 호프부르크 궁전에서 황제 레오폴트 2세의 장남인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대공과 그의 두번째 부인인 양시칠리의 마리아 테레사의 큰딸로 태어났습니다. 부모는 사촌간으로 프란츠 대공의 아버지인 레오폴트 2세와 마리아 테레사의 어머니인 마리아 카롤리나가 남매간으로 모두 마리아 테레지아의 자녀들이었죠.
프란츠 2세와 그의 아내인 양시칠리의 마리아 테레사
그리고 둘의 아이들
오른쪽 맨끝의 소녀가 마리아 테레사입니다.
마리아 루도비카의 어린시절, 그녀의 가족들은 프랑스에 대한 반감을 키워가고 있었습니다. 특히 마리아 루도비카에게 영향을 준 사람은 외할머니였던 마리아 카롤리나였죠. 마리아 카롤리나는 가장 친했던 동생인 마리 앙투아네트를 죽게 만든 프랑스에 대해서 끔찍하게 생각했었습니다. 게다가 나폴레옹이 이탈리아를 침공해서 나폴리를 점령했으며 이때문에 마리아 카롤리나와 가족들은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녀야했기에 더욱더 강한 적개심을 보였었죠. 이런 외할머니의 영향과 더불어 국제 정세는 마리아 루도비카가 프랑스를 싫어하게 만듭니다. 1805년 프랑스와의 전쟁 때문에 마리아 루도비카는 가족들과 함께 빈에서 도망쳐서 헝가리와 폴란드에 가야만했었으며 1806년이 되어서야 다시 빈으로 돌아올수 있었죠.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는 나폴레옹에 의해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지위를 포기해야만했었죠.
마리아 루도비카는 비록 힘든 어린시절을 보냈지만, 황제의 딸이었으며 어느 왕실과 혼담이 들어와도 손색없을 만큼 교육을 받게 됩니다. 그녀는 여러가지 언어를 배웠는데 모국어인 독일어 뿐만 아니라,영어,이탈리아어,프랑스어,라틴어,에스파냐어 를 유창하게 했었습니다.
1807년 마리아 루도비카가 15살이 되던 해에 그녀의 어머니가 사망합니다. 그리고 마리아 루도비카의 아버지는 자신의 장녀보다 네살많은 사촌인 오스트리아-에스테의 마리아 루도비카 베아트릭스와 재혼하죠. 의붓딸보다 네살밖에 안 많았지만, 새황후는 마리아 루도비카에게 어머니 역할을 제대로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 역시 프랑스를 끔찍히 싫어했는데 나폴레옹에 의해서 오스트리아-에스테 가문의 영지인 모데나 공작령이 쪼갈라졌기 때문이었죠.
마리아 루도비카의 새어머니
오스트리아-데스테의 마리아 루도비카
1809년 프랑스와의 전쟁이 다시 시작되면서 황실 가족들은 다시 빈에서 도망쳐야만했었습니다.그리고 오스트리아는 다시 프랑스와의 조약을 체결해야만했죠. 이때 마리아 루도비카의 운명이 정해지게 됩니다.
나폴레옹은 새로 세운 자신의 제국이 굳건하길 원했습니다. 이를 위해 여러가지 정치적 작업을 햇는데 그중 하나가 자신과 관련된 사람들과 유럽의 여러 왕가와 통혼하는것이었죠. 막내동생인 제롬은 뷔르템베르크의 공주와 결혼시키기도 했었습니다만 그 자신이 직접 왕녀와 결혼해서 후계자를 얻기로 결심합니다.그는 먼저 저 조제핀 드 보아르네와 이혼했으며 적당한 유럽의 왕녀들을 찾고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이 처음에 바란것은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1세의 여동생인 안나 여대공이었다고 합니다. 오스트리아는 이 사실에 경악했는데 잘못하면 러시아와 프랑스 사이에서 끼인 신세가 될수 있었기 때문이죠. 메테르니히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나폴레옹에게 오스트리아 여대공과의 혼담을 주선하게 됩니다. 바로 마리아 루도비카와의 혼담이었죠.
나폴레옹은 처음에는 이에 대해서 러시아쪽 보다 관심을 덜 가졌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러시아쪽에서 혼담이 지연됐는데 황태후가 이 혼담을 알고는 딸을 나폴레옹에게 시집보낼수 없다고 반대했었기 때문이었죠. 결국 러시아쪽과의 혼담이 지지부진하자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와의 혼담을 수락하기로 하죠.
나폴레옹
1810년
1810년 1월 결혼 협상이 진행되었고 2월 결혼이 결정되었습니다. 마리아 루도비카의 새어머니는 이 결혼을 반대했지만 이런 정략결혼은 대부분 그냥 성사되는 것이었죠. 마리아 루도비카는 메테르니히로 부터 이 결혼에 대해서 전해듣게 됩니다. 그리고 합스부르크가문 왕녀답게 정략결혼을 받아들입니다.
동생들과 작별 인사를 하는 마리아 루도비카
왼쪽의 남자는 남동생인 페르디난트이고 오른쪽은 여동생인 마리아 레오폴디나입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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