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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59) 마리아 테레지아 : 황제 레오폴트 2세의 딸

엘아라 2013. 11. 12.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ㅎㅎㅎ 마리아 테레지아 손녀들은 첫째는 모두 마리아 테레지아라서 말입니다.

갑자기 빅토리아 여왕이 자기 손녀들 이름에 빅토리아 안쓴다고 삐졌던 이야기가 떠오르는군요.

어쨌든 요제프 2세의 동생인 레오폴트 2세의 첫째딸도 마리아 테레지아입니다.

그러고 보니 마리아 테레지아 이름 안 쓴 사람은 엄마한테 제일 삐졌었던 파르마 공작부인 마리아 아말리아 여대공뿐이네요.(뭐 세례명에는 마리아 테레지아가 들어가긴 했지만 말입니다.) 동생들인 마리아 카롤리나나 마리 앙투아네트는 모두 큰딸이름을 엄마이름 땄는데 말입니다.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랑 갈라놓으면 안된다니까요-0-;;;;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59) 마리아 테레지아 : 황제 레오폴트 2세의 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 여대공

작센의 왕비

Maria Theresa of Austria 

Maria Theresia Josepha Charlotte Johanna

(14 January 1767 – 7 November 1827)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 요제파 샤를로테 요한나는 당시 토스카나 대공이었던 페테르 레오폴트와 그의 부인인 에스파냐의 마리아 루이사의 첫째아이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할머니인 마리아 테레지아는 살아남은 둘째아들인 레오폴트가 남편이 얻은 투스카니 대공령을 물려받길 바랬고 이를 굳건히 하기 위해 에스파냐와의 혼담을 추진했었죠. 마리아 루이사와 레오폴트가 결혼한 직후 레오폴트의 아버지인 황제 프란츠 슈테판이 사망했기에 레오폴트는 토스카나 대공으로 아내와 함께 피렌체로 갔으며 그곳에서 20년 이상 살게 됩니다. 이때문에 아이들이 모두 이탈리아에서 태어났습니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이름은 다른 사촌들처럼 할머니 마리아 테레지아의 이름을 딴것이었죠.

 

마리아 테레지아의 할머니인 마리아 테레지아는 토스카나 손자손녀들에게 매우 관심을 많이 보냈다고 합니다. 특히 마리아 테레지아의 동생인 프란츠가 태어났을때는 확고한 후계자가 생긴것에 매우 기뻐했으며 손자 손녀들의 초상활르 그려보내게 할 정도였었죠.

마리아 테레지아는 부모와 함께 이탈리아에서 평온한 삶을 살았을듯합니다. 물론 백부인 요제프 2세에게 후계자가 없었기에 언젠가는 아버지나 남동생이 황제가 될것이라고 생각했을겁니다. 하지만 요제프 2세는 정정했으며 마리아 테레지아가 결혼할때까지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죠.

 

 

할머니 마리아 테레지아와 부모와 함께 있는 마리아 테레지아

상복을 입은 마리아 테레지아가 손을 잡고 있는 아이가 마리아 테레지아 여대공입니다.

 


1787년 9월 마리아 테레지아는 작센의 선제후의 아들이었던 작센의 안톤과 대리혼을 치루고 1787년 10월 드레스덴에서 정식 결혼식을 합니다. 안톤은 이전에 사보이의 카롤리네와 결혼했었는데 그의 아내는 결혼 1년만에 천연두로 죽었었습니다. 드레스덴으로 가기 직전 안톤과 마리아 테레지아는 프라하를 방문했는데 둘을 기념하기 위해 모차르트는 "돈 지오바니"를 공연할 예정이었다고 합니다.하지만 시간이 촉박했고, 황제인 요제프 2세는 "피가로의 결혼"을 상영하게 합니다. 하지만 새신부에게 이 공연은 어울리지 않는 공연으로 여겨졌으며 결국 마리아 테레지아와 안톤은 공연을 보지도 않고 떠났다고 합니다.

 

 

작센의 안톤

후에 작센의 국왕

 

마리아 테레지아의 삶은 그리 평온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네명의 아이를 낳았지만 이 네명의 아이들 모두가 2개월을 넘지 못하고 사망했다고 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프랑스 대혁명과 이후 이어진 전쟁은 그녀의 친정인 오스트리아는 물론 작센등에도 혼란을 가져왔습니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시아주버니였던 작센의 군주는 프랑스와의 전쟁을 반대햇고 적극적으로 나폴레옹에게 협력합니다. 이런 상황은 나폴레옹과 적대적이었던 친정을 둔 마리아 테레지아에게는 불편한 상황이었을듯합니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남편인 안톤은 형에게 남성 후계자가 없자 작센의 후계자가 됩니다. 하지만 그가 즉위한것은 1827년으로 71살의 나이였을때죠. 그는 고령으로 정치나 외교에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다고 합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남편이 즉위했을때 60살로 왕비가 됩니다. 하지만 남편이 즉위한 그해 사망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