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

보퍼트 가문 사람들...(2) 캐서린 스윈포드 : 랭카스터 공작의 정부이자 후에 부인

엘아라 2013. 11. 20.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누굴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아는 사람 먼저 하기로 했습니다.

캐서린 스윈포드...ㅠ.ㅠ

제가 사실 전기를 앞쪽 밖에 안 읽어서--;; 겨우 블랜치가 죽은 곳까지 읽었습니다.

 

앨리슨 위어의 전기가 캐서린 스윈포드에 대한 유일한 전기인데 더 중요한것은 자료가 없어서 앨리슨 위어가 머리 깨지게 추론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덕분에 대부분 추정글이고 주변인물들 이야기가 더 많다죠.-0-;;;

 

어쨌든 캐서린에 대해서 살짝 해봅니다.

 

보퍼트 가문 사람들...(2) 캐서린 스윈포드 : 랭카스터 공작의 정부이자 후에 부인

 

 

 

캐서린 드 로애

캐서린 스윈포드

랭카스터 공작부인

Katherine Swynford

Duchess of Lancaster

(1350?-1403)

캐서린의 문장

저 바퀴는 "성 캐서린의 바퀴"라고 합니다만 이 바퀴는 그녀의 출신 지역과도 연결된다고 합니다.

 

 

캐서린 스윈포드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그녀는 원래 캐서린 드 로애라는 이름으로 에노지방에서 태어났으리라 추정됩니다. 그녀의 아버지인 "파옹 드 로애"는 에노의 기사로 에드워드 3세의 아내였던 필리파 왕비가 잉글랜드로 왔을때 함께 온 가신중 한명이었다고 합니다. 파옹은 왕실 문장관으로 일했었는데 아마도 파옹은 필리파 왕비와 친척관계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캐서린 드 로애는 동생인 필리파 드 로애와 함께 어린시절부터 필리파 왕비의 보살핌을 받았으며 그녀의 식솔중 한명이 됩니다. 필리파 드 로애는 후에 유명한 제프리 초서와 결혼했었습니다. 캐서린은 어린시절부터 필리파 왕비의 식솔로 있었기에 에드워드 3세의 자녀들은 물론 후에 랭카스터 공작부인이 되는 랭카스터의 블랜치도 잘 아는 사이였을것이라고 합니다.

 

 

 

초서

 

1360년대 초 캐서린 드 로애는 링컨셔의 지주였던 기사 휴 스윈포드와 결혼하게 됩니다. 링컨셔는 랭카스터의 블랜치의 상속 영지였으며 아마도 스윈포드 가문은 랭카스터 공작 가문과 연관이 깊었을듯합니다. 휴 스윈포드와의 사이에서 블랜치,토마스,마거릿이렇게 세명의 아이가 태어났다고 합니다.

 

캐서린은 결혼후 랭카스터 공작의 식솔로 랭카스터 공작부인의 궁정에 출입하게 됩니다. 캐서린은 랭카스터 공작의 두 딸인 필리파와 엘리자베스의 가정교사였었죠. 아마 이때문에 캐서린의 딸인 블랜치는 랭카스터 공작부인인 블랜치의 이름을 땄으며 랭카스터 공작이 대부가 되어줬을듯 합니다. (중세시대 아이의 대부가 되는것은 아이의 부모와 같은 의무를 지는 것으로 아이의 양육이나 결혼등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랭카스터 공작부부는 매우 행복한 사이였지만 랭카스터 공작 부인인 블랜치는 결혼한지 10년도 되지 않아서 사망했습니다. 공작은 매우 슬퍼했는데 에드워드 3세는 아들이 슬픔때문에 죽을까봐 걱정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후 랭카스터 공작은 캐서린 스윈포드를 정부로 두게 됩니다. 캐서린은 아름다웠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것은 랭카스터 공작에게 매우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되어있는 공작부인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었을듯합니다. 실제로 랭카스터 공작은 1371년 카스티야의 콘스탄스와 재혼하는데 두번째 부인과는 정치적 야망을 공유했었지만 그 외에는 그다지 삶에서 공유할수 있는 부분이 적었다고 합니다. 앨리스 위어는 이에 대해 랭카스터 공작이 두번째 부인과 정치적 문제를 공유했으며 나머지 사생활 부분은 캐서린 스윈포드와 삶을 고유했다고 이야기 할정도입니다.  문제는 랭카스터 공작과 캐서린과의 관계가 캐서린의 남편이 살아있었을때 진행된 일이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때문에 랭카스터 공작과 캐서린의 장남인 존 보퍼트의 출생에 대해서 후에 문제가 되기도 하죠.

 

 

랭카스터 공작 곤트의 존

존은 첫번째 아내인 랭카스터의 블랜치를 무척이나 사랑했었는데 그는 아내가 죽은뒤 매우 상심했으며 초서에게 블랜치에 대한 찬양시인 "The Duchess"를 쓰게 했다고 합니다.

 

 

 

캐서린 스윈포드는 랭카스터 공작의 오랜 정부로 살았습니다. 그녀는 랭카스터 공작과의 사이에서 모두 네명의 아이를 낳습니다. 캐서린의 남편인 휴 스윈포드경은 1372년 사망했었고  캐서린과 랭카스터 공작의 장남인 존은 1373년에 태어나죠. 이후 태어나는 아이들은 랭카스터 공작의 사생아였기에 아이들의 신분은 애매했고 랭카스터 공작은 아이들에게 "보퍼트"라는 성을 부여합니다.

 

1394년 랭카스터 공작부인인 콘스탄스가 사망했고 랭카스터 공작은 1396년 오랜 정부였던 캐서린 스윈포드와 정식으로 결혼합니다. 아마도 랭카스터 공작이 캐서린 스윈포드와 결혼한것은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보퍼트 가문 아이들은 사생아였고 중세시대 사생아들은 신분에 크게 제약을 받았었죠. 이후 둘의 아이들은 의회와 교황에게서 "적자"로 인정받게 됩니다.

 

랭카스터 공작과 결혼한뒤 캐서린은 이제 랭카스터 공작부인이 됩니다. 당시 그녀의 지위는 매우 높은 신분이었으며 리처드 2세 시절에도 국왕의 숙모로써 주요 행사에 참여했었다고 합니다.그리고 남편이 죽은뒤 의붓아들인 헨리 4세가 즉위한뒤에는 국왕의 어머니로 대접받았었다고 합니다.

 

랭카스터 공작과 캐서린 스윈포드의 장남인 존 보퍼트는 서머셋 백작으로 리처드 2세에게 충성을 했었으며 리처드에 의해서 후작이 됩니다. 이때문에 헨리 4세가 즉위한뒤 후작 지위를 뺏기기도 하죠. 하지만 헨리 4세는 이 이복동생을 다시 중용하게 됩니다. 둘째아들인 헨리 보퍼트는 후에 추기경이 됩니다. 셋째아들인 토마스는 이복형인 헨리 4세에게 충성했으며 헨리 4세에 의해서 엑서터 공작이 되죠. 막내인 조앤은 두번 결혼하는데 두번째 결혼한 웨스트모어랜드 백작 랄프 네빌과의 사이에서 여러명의 아이를 낳았고 이 아이들과 그 후손들이 장미전쟁때 요크가문쪽 핵심 인물들이 됩니다.

 

 

캐서린 스윈포드와 그녀의 딸인 조앤 보퍼트의 묘

더 큰쪽이 캐서린 스윈포드의 묘라고 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앨리슨 위어 전기인데 기억 나는 부분만..-0-;;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