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이제 알베르 1세의 어머니이자 알베르 2세의 증조할머니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제가 한동안 호엔촐레른-지그마링겐 가문에 대해서 좀 봤었는데 의외로 마리에 대해서는 별로 안본듯하군요.-0-;;;;;;
[벨기에 국왕 양위 특집]벨기에 왕가의 여성들...(8)호엔촐레른-지그마링겐의 마리 : 플랑드르 백작부인
호엔촐레른-지그마링겐의 마리
플랑드르 백작부인
Marie of Hohenzollern-Sigmaringen
(Marie Luise Alexandrine Karoline)
(17 November 1845 – 26 November 1912)
호엔촐레른-지그마링겐의 마리 루이즈 알렉산드린 카롤린은 1845년 호엔촐레른-지그마링겐의 카를 안톤과 그의 부인인 바덴의 요제핀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호엔촐레른-지그마링겐 가문은 호엔촐레른 가문의 분가중 하나로 오래전에 분가한 가문이었습니다. 이 가문은 호엔촐레른 가문의 가톨릭 가문들중 하나였는데 다른 가톨릭 분가들이 다 단절된뒤 유일하게 이 가문만이 남았으며 가톨릭 분가의 영지들을 상속받게 됩니다. 하지만 이 가문은 본가뻐인 프로이센 왕가에 강하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카를 안톤의 어머니는 마리 앙투아네트 뮈라로 나폴레옹의 매제였던 뮈라의 조카이기도 했습니다. 뮈라는 이 조카를 무척이나 아꼈으며 나폴레옹이 자신의 측근이나 친척들과 유럽 왕족들과 통혼을 추진할때 마리 앙투아네트 뮈라도 호엔촐레른-지그마링겐 가문으로 시집간것이죠. 마리의 어머니인 바덴의 요제핀 역시 나폴레옹과 관련이 있습니다. 요제핀의 어머니는 바로 스테파니 드 보아르네로 외젠 드 보아르네와 오르탕스 드 보아르네의 친척이었습니다. 스테파니 드 보아르네는 조제핀 드 보아르네의 보호를 받았던 인물로, 역시 나폴레옹의 정책에 따라 바덴 대공의 후계자와 결혼한것이었죠.
마리의 부모
호엔촐레른-지그마링겐의 카를 안톤과 바덴의 요제피네
카를 안톤의 어머니는 뮈라의 조카이며, 요제피네의 어머니는 스테파니 드 보아르네였습니다.
마리의 언니인 스테파니는 후에 포르투갈의 페드루 5세와 결혼해서 포르투갈의 에스테파니아 왕비가 됐으며 오빠인 카를은 루마니아의 국왕 카롤 1세가 되죠. 카롤 1세는 매우 뛰어난 군주로 루마니아인들이 위대한 루마니아인을 뽑을때 꼭 들어간다고 합니다.
마리의 언니 오빠
포르투갈의 에스테파니아 왕비와 루마니아의 카롤 1세
마리는 가족들과 함께 아버지가 행정관으로 있던 뒤셀도르프에서 살았었습니다. 마리는 한때 빅토리아 여왕의 아들인 웨일즈공의 신부후보가 되기도 합니다.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은 이 가문에 대해서 매우 좋게 봣는데 마리의 언니인 스테파니와 페드루 5세와의 혼담을 주선한것고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이었다고 합니다. 특히 나폴레옹과 연결되는 가문이라는 이유로 탐탁치 않아하던 페드루 5세를 설득한 사람도 앨버트 공이었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마리에 대해서도 잠시 말이 나왔던듯합니다만, 결정적으로 마리는 가톨릭이었으며 영국 왕위계승자의 아내로 적합하지 않았죠.
마리
마리는 1867년 벨기에 국왕의 둘째아들인 플랑드르 백작 필립과 결혼합니다. 재미난것은 플랑드르 백작이 결혼 1년전 루마니아 국왕으로 선출되었지만 그 지위를 거절했다는 것입니다. 이후 루마니아 국왕은 마리의 오빠인 카를이 되었죠. 마리가 플랑드르 백작과 결혼하던 시기 벨기에 왕가에는 비극들이 일어나고 있었죠. 프랑드르 백작의 여동생인 카를로타 황후는 남편을 잃고 미쳤었으며, 둘의 결혼 2년후에는 벨기에 왕위계승자이자 플랑드르 백작의 조카인 브라반트 공작이 사고로 죽었고 이에 국왕 부부의 가족생활도 완전히 파탄나게 되었었죠.
플랑드르 백작 필리프
벨기에의 레오폴 1세의 둘째아들
플랑드르 백작은 형에게 후계자가 태어나지 않자 추정왕위계승자가 됩니다. 마리와 필리프 사이에는 다섯 아이가 태어났으며 그중 둘이 아들이었기에 벨기에의 왕위계승은 플랑드르 백작과 그 후손들에게 돌아갈것이라는것을 누구나 다 예상할수 있있다고 합니다.
마리는 매우 뛰어난 화가로 작품을 출품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또 문학살롱을 열어서 오래도록 작가들을 후원했으며 브뤼셀 사교계의 중심인물이 되었습니다. 또 음악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또 자선사업도 활발히 했었습니다. 또 마리는 남편의 조카였던 스테파니는 "훌륭한 어머니이자 훌륭한 아내"라고 묘사할만큼 가족에게도 충실했었다고 합니다.
마리
마리는 플랑드르 백작과의 사이에서 모두 다섯아이를 낳았으며 그중 네명이 성인으로 성장했습니다. 첫째 아들인 보두앵은 왕위계승자로 여겨졌었습니다만, 병으로 결혼전 사망합니다. 둘째는 앙리에트로 알랑송 공작의 아들인 방돔공작 엠마누엘 도를레앙과 결혼했습니다. 셋째는 조제핀 카롤린으로 외사촌이었던 호엔촐레른-지그마링겐의 카를 안톤과 결혼합니다. 그리고 막내는 아들인 알베르로 백부인 레오폴 2세가 죽은뒤 벨기에의 국왕이 되죠.
마리의 장남 보두앵
보두앵은 21살에 인플루엔자로 죽었는데 죽기 직전에 결투를 했었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벨기에 정부는 그가 사촌의 남편인 루돌프처럼 자살한것이 아닐까 걱정까지 했었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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