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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국왕 양위 특집]벨기에 왕가의 여성들...(7)스테파니 : 레오폴 2세의 딸(두번째)
벨기에의 스테파니
오스트리아의 황태자비
루냐이 백작부인
루냐이 공비
Stéphanie Clotilde Luise Hermine Marie Charlotte of Belgium
(21 May 1864 – 23 August 1945)
바람을 피우고 더이상 아이를 낳지 못하게 만든 남편에 대해서 스테파니는 무척이나 실망했을듯합니다. 게다가 루돌프는 연애사건을 멈추지도 않았었죠. 결국 스테파니와 루돌프는 점차 멀어져가게 됩니다. 또 궁정에서도 스테파니에 대해서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으며 그 중심에는 시어머니인 시씨황후가 있었습니다. 황후는 스테파니의 외모에 대해서 매우 신랄하게 평가했었으며 이런 황후의 의견은 궁정의 의견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죠.
스테파니
이런 상황에서 스테파니에 대한 소문이 돌게 됩니다. 루돌프의 바람기에 지친 스테파니가 다른 남자를 만난다는 이야기였죠. 1887년 여름 23살의 황태자비는 자신보다 14살 연상이며 두딸의 아버지이자 홀아비였던 아르투르 포토츠키 백작을 만났고 둘은 사랑에 빠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둘은 관계에 대해서 비밀로 했었는데, 스테파니는 빅토리아 여왕의 골든 주빌리에 참석하러 가야할때 이에 대해서 남편에게 말했고 이 때문에 루돌프 혼자 골든 주빌리에 참석했었다고 합니다.
곧 빈 궁정에서는 스테파니가 비밀리에 폴란드 백작을 만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상에 대해서 정확히 아는 사람은 스테파니의 언니인 루이즈와 루이즈의 남편인 작센-코부르크-코하리의 필립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루이즈와 스테파니
1889년 1월 30일 스테파니의 남편인 루돌프는 그의 정부인 마리 베체라와 함께 마이어링에서 죽은채 발견됩니다. 루돌프는 유서에서 자신이 유일하게 남겨둔 딸을 스테파니가 잘 돌볼것이기에 안심한다고 적고 있다고 합니다. 스테파니는 이제 과부가 되었고, 그녀와 그녀의 딸은 황제인 프란츠 요제프가 돌봐주게 되죠.
루돌프
1888년경
스테파니는 포토츠키와의 관계를 지속했습니다만, 포토츠키의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았으며 수술때문에 거의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스테파니와 포토츠키는 1890년 1월에 마지막으로 만났으며 그해 포토츠키는 요양중 사망했습니다. 스테파니는 점차 시어머니인 시씨황후처럼 궁정에 있는 것을 버거워합니다. 남편은 죽었지만 빈 궁정에서 황태자비로써 의무를 수행해야만했었고 이것은 스테파니에게 견딜수 없는 일이었죠. 그녀는 시어머니처럼 궁정을 떠나 여러곳을 여행햇으며 주로 언니 루이즈와 동생 클레망틴과 함께 지냈었다고 합니다. 후에 스테파니의 아버지인 레오폴 2세와 오스트리아 황실에서는 스테파니를 다음 황위계승자였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결혼시키려는 시도를 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은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죠.
스테파니
1900년경
스테파니는 헝가리 출신의 하급 귀족인 Elemér Edmund Lónyay 백작과 만나서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그는 헝가리 출신으로 외교관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1900년 스테파니는 백작과 정식으로 결혼합니다. 이 결혼으로 스테파니는 오스트리아 궁정에서 은퇴했으며, 황태자비라는 이전 지위를 포기하고 두번째 남편의 지위에 따르게 됩니다. 프란츠 요제프 황제는 며느리에게 동정심을 느꼈었으며 이 결혼에 대해 어느정도 용인해줘습니다만, 스테파니의 아버지인 레오폴2세는 딸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이 결혼으로 얻을수 잇는 이익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위까지 버려야했기 때문이죠. 게다가 스테파니의 외동딸인 에르치는 어머니의 재혼에 대해 매우 분노햇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재혼은 어머니가 아버지를 배신하는것이라고 느꼈으며 에르치는 어머니와의 관계를 단절했다고 합니다.
스테파니와 스테파니의 두번째 남편 루냐이 백작
스테파니는 두번째 남편과 함께 헝가리에서 거주했었습니다. 그곳에서 둘은 매우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는데 스테파니는 그곳에 수많은 온실을 짓고 꽃을 키우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둘을 자주 방문한 인물들 중에는 루돌프의 뒤를 이어 황태자가된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그의 귀천상혼한 아내인 호엔베르크 공작부인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스테파니는 프란츠 요제프 황제와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다고 합니다.
카를 황제가 즉위한뒤, 황제는 스테파니의 남편에게 prince 지위를 줬다고 합니다.
스테파니와 루냐이 백작
스테파니는 1935년 회고록을 썼는데 이것은 오스트리아에서 큰 스캔들이 되었으며 결국 오스트리아에서는 출판이 금지됩니다. 하지만 이 책은 꽤나 성공을 거뒀으며 몇개 언어로 번역되었다고 합니다.
스테파니는 2차대전이 끈난 직후인 1945년 8월에 헝가리에서 사망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니더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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