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우울한 분위기의 마리아 헨리에테까지 오는군요.
그러고 보니 클레망틴도 했다는...-0-;;;;;;이런이런...
[벨기에 국왕 양위 특집]벨기에 왕가의 여성들...(4)오스트리아의 마리 헨리에테 : 레오폴 2세의 왕비
오스트리아의 마리 헨리에테
벨기에의 마리 앙리에트 왕비
Marie Henriette of Austria
(Marie Henriette Anne)
(23 August 1836 – 19 September 1902)
오스트리아의 마리 헨리에테는 헝가리의 팔라틴이었던 오스트리아의 요제프 대공과 그의 세번째 부인인 뷔르템베르크의 마리아 도로테아의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요제프 대공은 황제 레오폴트 2세의 아들로 그는 헝가리에서 자리잡았으며 헝가리를 위해 매우 많은 노력을 했기에 헝가리에서 매우 인기있었으며 합스부르크 가문의 헝가리 분가의 시조가 됩니다. 마리 헨리에테의 어머니는 뷔르템베르크 공작의 손녀로 마리아 도로테아의 남동생은 테크 공작 가문의 시조가 되는 뷔르템베르크의 알렉산더입니다. 마리 헨리에테의 언니였던 엘리자베트 프란치스카 여대공은 오스트리아-데스테 가문으로 시집갔다가 남편이 죽은뒤,오스트리아-테센 공작과 재혼했던 인물로 그녀의 딸이 바로 에스파냐의 알폰소 12세의 왕비이자 알폰소 13세의 어머니가 되는 마리아 크리스티나 여대공이었습니다.
마리아 헨리에테의 부모
오스트리아의 요제프 대공과 그의 세번째 아내인 뷔르템베르크의 마리 도로테아
마리 헨리에테는 형제 자매들과 함께 헝가리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녀는 말을 너무나 사랑해서 말에 관한 모든것에 열성을 보였다고 합니다. 또 운동하는것도 매우 즐겼었습니다. 또 음악과 미술에 관심이 많았는데 훗날 오페라를 작곡할 정도로 음악적 소양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1853년 16살의 마리 헨리에테는 벨기에의 제1왕위계승자였던 18살의 브라반트 공작 레오폴과 결혼하게 됩니다. 둘의 결혼은 완벽하게 정치적 목적으로, 벨기에 왕가와 합스부르크 가문과의 유대를 강화하기 위한것이었죠. 게다가 마리 헨리에테가 가톨릭이라는 점도 크게 한몫했는데, 브라반트 공작의 아버지는 신교도였기 때문에 비록 브라반트 공작이 가톨릭을 믿고 있다고 하더라도 가톨릭 국가를 통치하기 위해서는 가톨릭교도인 왕비가 필요했었습니다.
브라반트 공작 레오폴
1854년
벨기에에서 "마리 앙리에트"로 불렸을 그녀와 브라반트 공작의 결혼은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둘의 성격이 정반대였기 때문입니다. 폴린 메테르니히는 이 결혼에 대해서 "활기찬 소년과 수녀의 결혼과 같다. 여기서 수녀는 브라반트 공작이다."라고 할정도였다고 합니다. 활달한 마리 헨리에테와 수줍음 많고 정적이던 브라반트 공작은 서로 맞지 않았으며,결혼생활은 매우 불행했었으며 둘은 후계자를 얻기 위해서만 함께있었고 자주 떨어져지내게 됩니다.
둘사이에서는 모두 네명의 자녀가 태어나는데 둘째인 아들이 어려서 죽자 다른 아들을 얻기 위해 마지못해서 함께 지내게 됩니다만 그결과 태어난 자녀가 딸인 클레망틴이었습니다. 이후 둘은 완전히 별거했으며 그녀는 스파등에서 지내게 됩니다. 특히 레오폴 2세는 아들의 죽음이 아내탓이라고 이야기했었다고 합니다.
레오폴 2세와 마리 앙리에트 왕비
마리 앙리에트와 레오폴 둘다 딸들에게는 정이 없었습니다. 레오폴은 왕위계승자가 될 아들에게만 관심이 있었으며 딸들에게는 무관심했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아들이 죽고 막내인 클레망틴이 태어나자 그는 완전히 가족에 대해서 미련을 버리고 오직 정부들과 지내며 돈버는 일에 집중했다고 합니다. 마리 앙리에트 역시 자녀들에게 무관심했으며 예법에 따라 매우 엄격하게 대했는데 아이들에 대해서 그녀가 사랑했던 말들보다 더 정을 주지 않았다고 이야기될 정도라고 합니다. 이것은 정없던 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에 대해서 역시 정을 붙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합니다. 마리 앙리에트는 말과 음악등에 헌신하고 자선사업등을 하면서 불행한 결혼생활에서 도망갔었습니다. 하지만 벨기에 국민들은 왕비의 불행을 동정했으며 호의적으로 대했다고 합니다.
아들 브라반트 공작 레오폴과 함께 있는 마리 앙리에트
마리 앙리에트는 딸들을 좋은 혼처로 시집보낼려고 햇다고 합니다. 첫째인 루이즈는 사촌이자 당대 유럽 최고 부자중 하나였던 작센-코부르크-코하리의 필립과 결혼합니다만, 둘은 결국 이혼하게 되죠. 둘째인 스테파니는 오스트리아의 황태자인 루돌프와 결혼하게 됩니다. 이때문에 부모의 자랑이었지만 역시 스테파니도 불행하게 되죠. 막내딸인 클레망틴은 어머니의 무관심속에서 성장합니다만 그녀 역시 처음에는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남편감으로 여겨지던 사촌인 보두앵 왕자가 갑작스럽게 죽었으며 이후에 오래도록 결혼허락을 받지 못했었죠. 하지만 결국 클레망틴은 행복한 결혼을 하게 됩니다.
마리 앙리에트
자신에게 잔인하고 무관심한 남편에게 지친 마리 앙리에트는 1895년 궁정에서 은퇴했으며, 막내딸인 클레망틴이 궁정에서 가장 높은 지위의 여성이 되게 됩니다. 마리 앙리에트는 파리에 있는 호텔에 거처를 정했고 그곳에서 남은 여생을 혼자 보냈다고 합니다.
마리 앙리에트 왕비
빈터할터 그림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역사이야기 > 베네룩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벨기에 국왕 양위 특집]벨기에 왕가의 여성들...(6)스테파니 : 레오폴 2세의 딸(첫번째) (0) | 2013.07.14 |
---|---|
[벨기에 국왕 양위 특집]벨기에 왕가의 여성들...(5)루이즈 : 레오폴 2세의 딸 (0) | 2013.07.13 |
[벨기에 국왕 양위 특집] 벨기에 왕가의 여성들...(3) 샤를로트 : 레오폴 1세의 딸(두번째) (0) | 2013.07.11 |
[벨기에 국왕 양위 특집] 벨기에 왕가의 여성들...(2) 샤를로트 : 레오폴 1세의 딸(첫번째) (0) | 2013.07.10 |
[벨기에 국왕 양위 특집] 벨기에의 왕가의 여성들...(1)루이즈 마리 도를레앙 : 레오폴 1세의 왕비 (0) | 2013.07.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