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사실 이게 샤를로트 엄마글과 비교해서 두개로 자르기 좀 애매한데...그냥 자릅니다.-0-;;;
한개라도 더 늘릴려는 저의 얄팍한 술수라는....--;;;
[벨기에 국왕 양위 특집] 벨기에 왕가의 여성들...(3) 샤를로트 : 레오폴 1세의 딸(두번째)
벨기에의 샤를로트
오스트리아 대공비
멕시코의 카를로타 황후
Charlotte of Belgium
Carlota of Mexico
(Marie Charlotte Amélie Augustine Victoire Clémentine Léopoldine)
(7 June 1840 – 19 January 1927)
빈터할터!!
샤를로트와 막시밀리안은 이탈리아의 총독 부부로 머물렀지만 사실상 실권은 거의 없었으며 이때문에 둘다 좀더 실권을 가지는 지위를 원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기회가 찾아오게 되죠.
막시밀리안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는 멕시코를 프랑스 영향력 아래 두고 싶어했으며 이에 적당한 멕시코 통치자를 찾게 됩니다. 그리고 찾은 인물이 바로 샤를로트의 남편인 막시밀리안이었죠. 막시밀리안은 나폴레옹 3세의 제안을 수락하는데, 여기에는 샤를로트가 더 적극적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왜냐면 그녀는 겨우 "대공비"였기에 늘 경쟁상대로 여기던 동서인 시씨황후보다 지위가 떨어졌기 때문이죠. 남편이 멕시코 황제가 되면서 그녀 역시 동등한 황후지위에 오를수 있었기에 더 열성적이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둘은 멕시코로 갔으며샤를로트는 멕시코에서 "카를로타"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이후 멕시코에서 카를로타는 황후로써 자신의 의무를 아주 열성적으로 수행했다고 합니다.
막시밀리아노 1세와 카를로타 황후
하지만 즉위식 직후, 나폴레옹 3세는 멕시코를 포기하려했고 프랑스군은 철수하기 시작합니다.이렇게 되자 새로운 황제와 황후는 정치적으로 위험해지게 됐는데 미국에서 프랑스의 개입을 막으면서 않으면서 문제는 더 복잡하게 됩니다 카를로타는 남편과 지위를 구하기 위해 유럽으로 돌아가서 빈과 파리 로마등을 다니면서 남편을 도와달라고 부탁합니다만 모두 헛된 일이었죠. 카를로타는 자신의 노력이 실패하자 정서적으로 불안정해졌으며 매우 위축되어서 정상적 생활을 할수 없을정도가 됩니다. 이때문에 카를로타는 다시 멕시코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죠.
카를로타
1867년 막시밀리안은 멕시코에서 처형당하게 됩니다. 그의 마지막 말은 "poor Carlota"였다고 합니다. 이후 카를로타의 정신 상태는 매우 나빠졌으며 카를로타의 오빠인 플랑드르 백작은 동생을 정신과 의사에게 보였으며, 카를로타는 편집증등의 증세를 보이게 됩니다. 이후 카를로타는 벨기에에 있는 성에 유폐되게 됩니다. 병이 진행되면서 카를로타는 편집증은 어느정도 완화되었으며 대신에 죽은 남편을 더욱더 깊이 사랑했으며 그와의 추억에 빠져서 그와 했었던 모든 것들을 수집하기에 이르게 되죠.
카를로타는 개인재산이 상당했는데 그녀가 유폐된뒤 재산은 레오폴 2세가 관리했으며 그는 이 돈을 콩고에 투자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처형 직전의 막시밀리안
카를로타와 막시밀리안 사이에서는 자녀가 없었으며 대신 멕시코의 황제였던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의 두 손자를 입양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주로 정치적 의도였으며 막시밀리안이 죽고 나서는 이 둘과의 인연도 끊어지게 됩니다. 카를로타가 성에 오래 유폐되었기에 몇몇 소문이 돌았는데 특히 1866년에는 카를로타가 벨기에 장교의 아이를 낳았다는 소문이 파다했다고 합니다. 특히 후에 프랑스 장군이 되는 막심 베강(Maxime Weygand)이 카를로타와 장교의 아이거나 아니면 오빠인 플랑드르 백작과의 아이라는 소문이 돌았다고 합니다. 막심 베강은 그의 출생이 불분명했기에 논란이 많았는데, 최근 연구자는 그가 카를로타의 아이가 아니라 카를로타의 시녀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카를로타는 처음에는 오스트리아령이었던 트리에스테에 있는 성에 있다가 나중에는 벨기에의 부슈성으로 옮겨가서 살게 됩니다. 그녀의 편집증은 나아졌지만,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는 힘들었죠. 카를로타는 이때문에 계속 부슈성에 유폐되다시피 살았다고 합니다. 1차 세계대전때도 카를로타는 부슈성에 거주했는데, 독일과 벨기에는 전쟁을 했지만, 카를로타가 있던 성은 무사했다고 합니다. 왜냐면 카를로타는 오스트리아 대공비이자 오스트리아 황제(프란츠 요제프)의 제수였기 때문이었죠.
카를로타는 1927년 부슈성에서 인플루엔자로 사망합니다.
카를로타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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