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영국의 왕비들...(12) 모데나의 마리아 : 제임스 2세의 왕비 (첫번째)

엘아라 2013. 6. 6.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제임스 2세의 왕비인 모데나의 메리까지 왔습니다.

제임스 2세의 첫번째 부인인 앤 하이드에 대해서는 이미 했기 때문에 생략할까합니다.

지금 생각으로는 번외편으로 앤 여왕의 남편인 조지와 올드 프리텐더의 부인과 영 프리텐더의 부인정도만 넣을까합니다. 메리 2세의 남편인 윌리엄3세는 여왕의 남편이라기 보다는 스스로 국왕이 되어서 잉글랜드 국왕으로 넣어야할듯하거든요.(개인적으로 명예혁명에 대해서 "오라녜공의 잉글랜드 침공"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어쨌든 모데나의 메리에 대해서 할까합니다.

(흑..지금 다운튼애비보고 있는데 매튜가 청혼하고 있어요..-0-;;; 왜 계약을 안해가지고서는..ㅠ.ㅠ)


영국의 왕비들...(12) 모데나의 마리아 : 제임스 2세의 왕비(첫번째)






모데나의 마리아

마리아 베아트리체 안나 마르게리타 이사벨라 데스테

잉글랜드의 메리 왕비

Mary of Modena

(Maria Beatrice Anna Margherita Isabella d'Este)

( 5 October [O.S. 25 September] 1658 – 7 May [O.S. 26 April] 1718) 

요크 공작부인 시절

..참고로 전 이시기 잉글랜드 여성들은 초상화만 보고 구별 못합니다.

(하긴 프랑스도 구별 못함..ㅎㅎㅎ)



후에 잉글랜드의 메리 왕비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지게 되는 마리아 베아트리체 안나 마르게리타 이사벨라 데스테는 모데나 공작이었던 알폰소 4세와 그의 부인인 라우라 마르티노치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마리아의 어머니였던 라우라 마르티노치는 루이 14세때 수상이었던 추기경 마자랭의 조카였습니다. 마자랭의 두 누이의 딸들인 일곱명의 조카들은 마자리네트(Mazarinette)라고 불렸는데 모두 대가문으로 시집가게 되었죠. 라우라 마르티노치 역시 마자리네트중 한명으로 모데나를 통치하던 공작인 알폰소 데스테와 결혼했었습니다. (...귀천상혼 아닌가--;;; 이탈리아는 귀천상혼이 없던가-0-;;)

마리아의 아버지였던 알폰소 4세는 프랑스와 에스파냐 전쟁당시 프랑스의 지지를 얻기 원했고 이때문에 마자랭의 조카였던 라우라와 결혼한것이었습니다.하지만 그는 건강이 매우 안 좋았는데 마리아가 4살쯤 되던 1662년 사망했습니다. 아버지가 죽었고 남동생은 겨우 2살이었기에 모데나는 마리아의 어머니인 라우라가 섭정으로 통치했었습니다.  마리아의 어머니는 잘 교육받은 여성으로 딸의 교육에도 매우 신경을 썼으며 이때문에 마리아도 어린시절 훌륭한 교육을 받았다고 합니다.



마리아의 부모 알폰소4세 데스테와 라우라 마르티노치


1672년경 열네살의 마리아에게 혼담이 들어오게 됩니다. 바로 요크 공작이었던 제임스가 신부감을 구하러 온것이었죠. 제임스는 찰스 2세의 동생으로 찰스 2세에게 적자가 태어날 가능성이 희박해보였는데, 찰스 2세는 아이를 낳을수 없는 왕비와 이혼하길 거부했기에 결국 제임스는 잉글랜드의 왕위계승자나 다름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마리아보다 무려 25살이나 많았으며 아이가 딸린 홀아비였었습니다. 제임스의 장녀인 메리는 1662년생으로 마리아보다 겨우 네살정도밖에 어리지 않았을 정도였죠.

마리아의 어머니인 라우라는 처음에는 제임스 2세를 탐탁치 않아했습니다. 그녀는 딸을 에스파냐의 국왕인 카를로스 2세에게 시집보내고 싶어했었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제임스의 혼담을 선듯 승락하지 않았었습니다만, 결국 제임스와의 결혼을 승락하게 됩니다. 

아마 이 결혼이 성사 된것은 프랑스의 영향도 어느정도 있었을듯합니다. 라우라는 프랑스 출신이었으며, 모데나는 프랑스의 영향력을 강하게 받고 있었죠. 루이 14세는 잉글랜드 사촌들과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유지하길 바랬었는데 아마 이런 여러가지 복잡한 관계가 이 혼담을 성사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듯합니다.



요크 공작 제임스

후에 제임스 2세

그는 모데나의 마리아보다 23살 많았습니다.


혼담이 오갈 무렵의 마리아에 대해서 동시대 사람들은 "키가 크며 경탄할만한 인물이다"라고 언급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요크 공작과의 혼담이 성사되자 프랑스측에서는 마리아에게 매우 호의적으로 대했고 파리에서 환대를 받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잉글랜드의 분위기는 매우 달랐는데, 가톨릭에 대한 반감이 극심했던 잉글랜드에서 가톨릭을 믿는 여성이 중요한 왕위계승자의 부인이 된다는 사실에 매우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잉글랜드에서는 마리아에 대해서 "교황의 딸"이라고 비아냥댈정도였다고 합니다.  



모데나의 마리아

1673년

대리결혼할 무렵


1673년 9월 마리아는 제임스와 대리혼을 치뤘고,프랑스를 통해서 잉글랜드로 향했습니다. 루이 14세는 이제 사촌의 아내가 된 마리아를 환대했으며 매우 값비싼 브로치를 선물하기도 했었죠. 잉글랜드로 간 마리아는 1673년 11월 제임스와 가톨릭식으로 정식으로 결혼합니다. 의회는 이에 대해서 매우 강하게 반대했으며, 마리아와 제임스의 결혼을 무효로 돌릴려고 했었습니다. 제임스의 형이었던 찰스 2세는 조카들이자 추정왕위계승자들이었던 메리와 앤을 신교도로 키우기로 합의했으며, 대신 제임스와 마리아와의 결혼을 인정해주기로 했었죠. 결국 1674년 1월 의회는 마리아와 제임스의 결혼을 정식으로 인정하게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