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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왕비들...(10) 포르투갈의 카타리나 : 찰스 2세의 왕비(두번째)
카타리나 데 브라간사
잉글랜드의 캐서린 왕비
Catherine of Braganza
Catarina Henriqueta de Bragança;
(25 November 1638 – 31 December 1705)
이제 영국에서 캐서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그녀는 1662년 9월 30일 남편과 함께 런던으로 입성합니다. 런던으로 들어올때 캐서린은 화려하게 영접받았었죠. 하지만 이런 화려함은 그녀가 잉글랜드 왕비임을 인식시켜주는 것일뿐 그녀의 삶이 행복하게 될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캐서린은 어린시절부터 수녀원에서 성장했으며 이때문에 매우 조용하고 온화하며 순진한 처녀로 자라났습니다.결혼할때 이미 23살이었지만 그녀는 남편과 어떻게 즐겁게 보내는지를 잘 몰랐다고 합니다. 반면 찰스 2세는 정부가 여럿있었으며 그는 다른 수많은 여자들과의 관계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이때문에 캐서린은 남편의 정부들에 매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특히 찰스 2세의 정부중 가장 악명 높았던 캐슬마인 백작부인 바바라 빌리어스는 궁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길 바랬으며 이때문에 왕비의 수석시녀자리를 원하게 됩니다. 캐서린은 당연히 남편의 정부를 자신의 시녀로 들일 마음이 없었습니다만 찰스 2세는 바바라의 청을 받아들였으며 캐서린에게 이를 수락하지 않으면 그녀의 포르투갈 시녀들을 다 돌려보내겠다고 협박했다고 합니다. 늘 포르투갈에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캐서린에게는 참을수 없는 일이었으며 결국 그녀는 바바라를 받아들여야했죠.
바바라 빌리어스
캐슬마인 백작부인
찰스 2세의 정부
드센 성격의 그녀는 루이 14세(찰스 2세의 사촌)의 정부였던 마담 드 퐁테스팡이랑 비교될만한 여성이었다고 합니다.
이후 캐서린은 늘 다른 여자를 만나는 남편에 대해 인내심을 가지고 남편을 기다렸으며 결국 그녀는 남편의 애정과 존경을 얻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찰스 2세는 캐서린에게 점차적으로 호의를 가지기 시작했으며 결국 캐서린에게 왕비로써의 예우를 갖췄으며 캐서린에게 잘 대해줍니다. 이때문헤 후에 신하들은 국왕이 왕비라는 새로운 정부를 들였다라고 할정도였는데, 찰스2세는 자신의 정부들이 다른 남자를 만나도 신경쓰지 않았지만 캐서린이 젊은 시종무관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취한것에도 질투를 할정도였다고 합니다.
캐서린은 세번의 유산을 했으며 1663년에는 큰병을 앓았다고 합니다. 이때 그녀는 아픈와중에 자신이 아이를 낳았다고 믿었는데 찰스 2세는 아내를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두명의 아들과 함명의 딸을 낳았다고 이야기해줄정도였다고 합니다. 어쨌든 이후 캐서린은 후계자를 낳을수 없는것처럼 보였고, 의회는 국왕에게 캐서린과 이혼하고 신교도 공주를 왕비로 맞아들이라고 요구할정도가 됩니다. 하지만 찰스 2세는 캐서린과의 이혼을 거부하죠.
캐서린
캐서린은 왕비로써 인기있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가장 큰 문제점은 그녀가 가톨릭을 믿었기 때문이죠. 또 남편과의 관계 역시 처음에는 매우 불편했는데 찰스 2세는 늘 가톨릭과 국교회간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었는데 가톨릭교도인 아내와의 관계 역시 미묘한것이었죠. 또 캐서린이 영어를 못하는것 역시 찰스와 가까워지는데 힘들었던 중요한 원인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캐서린은 언제나 남편에 대해 변함없는 애정과 신뢰를 보냈으며 늘 조용히 참고 살았고, 찰스 2세는 캐서린을 점차 아내로 인정하게 되었죠.
캐서린은 영어를 잘 못했고 이때문에 잉글랜드 귀족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이때문에 그녀는 포르투갈에서의 삶을 잉글랜드에서도 그대로 이어가게 되었죠. 캐서린은 카드놀이를 즐겼는데, 일요일에도 카드놀이를 해서 잉글랜드 귀족들을 충격에 빠뜨리기도 했습니다. 잉글랜드 궁정에서는 일요일에 카드 놀이하는것을 금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가면극을 무척이나 좋아해서 가면극에서 춤추는 것을 즐겼으며 근교 외곽으로 나가는것도 좋아했는데 특히 낚시와 활쏘기를 즐겼다고 합니다. 또 캐서린은 수녀원에서 지냈던 포르투갈에서와 달리 자유로운 잉글랜드에서 마음대로 다니는것을 즐겼는데 특히 남장을 하는것을 좋아했으며 특히 예쁜 다리를 내놓고 다니는것을 즐겼다고도 합니다.
캐서린
캐서린은 잉글랜드 정치에는 거의 영향력을 행사할수 없었습니다. 대신 그녀는 자신의 사랑하는 모국인 포르투갈의 이익을 위해서 여러가지로 노력했었다고 합니다. 교황과의 관계를 개선했고 해외에서의 포르투갈의 이익을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남편에게 도움을 구하기도 했었습니다.
어쨌든 캐서린은 바람둥이 남편을 참고 이해하고 살았으며, 더욱이 그에게 무한한 애정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런 아내에게 찰스 2세 역시 점차 아내로 인정하고 자신의 아내로써 알맞는 대우를 해줬습니다. 하지만 잉글랜드의 정치적 상황은 캐서린에게 호의적인것이 아니었습니다.
찰스 2세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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