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안나 파블로브나 여대공을 하는군요.
파벨 1세의 딸들을 보면 뭐랄까 복잡하더라구요.-0-;;
[네덜란드 여왕 양위 특집]네덜란드의 왕비들...(2)러시아의 안나 파블로브나
러시아의 안나 파블로브나
네덜란드의 안나 왕비
Anna Pavlovna of Russia
Анна Павловна
(18 January 1795 – 1 March 1865)
안나 파블로브나 여대공은 러시아의 파벨 1세와 그의 두번째 부인인 마리야 표도로브나 (뷔르템베르크의 조피 도로테아)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안나는 막내딸로, 밑으로는 두동생들인 니콜라이와 미하일 남동생들이 있었습니다. 안나는 언니들과 남동생들과 함께 부모인 파벨 1세와 마리야 표도로브나와 함께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반면 안나의 두오빠들인 알렉산드르와 콘스탄틴은 할머니인 예카테리나 2세에 의해 키워졌었죠.
안나는 매우 교육을 잘 받았는데 그녀의 부모는 아이들에게 매우 열성을 다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다양한 외국어와 춤이나 노래 그림등을 배웠다고 합니다.
안나는 막내딸이었지만 언니 예카테리나에 대해서 무척이나 질투심이 많았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예카테리나는 가족 모두에게 사랑받던 딸로 특히 아버지만큼 나이차가 컸던 큰오빠인 알렉산드르 1세가 가장 예뻐한 여동생이었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안나는 언니에게 경쟁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사이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러시아의 파벨 1세의 가족들
파벨 1세 옆의 소녀가 안나일듯합니다.
나폴레옹이 재혼상대를 구할때 그는 제일 우선적으로 러시아 여대공들을 고려했었습니다. 알렉산드르 1세도 여기에 어느정도 관심을 보였지만, 황태후는 딸들을 나폴레옹에게 시집보낼려는 계획을 극렬하게 반대했었습니다. 제일 우선 대상이었던 예카테리나를 사촌에게 시집보낼정도였죠.(러시아 정교회는 원칙적으로 사촌간의 결혼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교회의 수장인 짜르가 허용하면 결혼이 허용되기도 합니다.) 이때문에 예카테리나가 결혼한뒤 나폴레옹은 안나와의 결혼을 고려했습니다만, 역시 러시아측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결국 나폴레옹은 메테르니히의 제안대로 오스트리아 여대공과 결혼하죠.
나폴레옹이 몰락한뒤 안나는 매우 훌륭한 결혼상대로 여겨지게 됩니다. 유럽을 구한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1세의 여동생이었기 때문이었죠. 1814년경 이미 프랑스의 샤를 10세는 자신의 둘째아들과 안나를 결혼시키려 고려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럴경우 안나가 개종해야해서 이 혼담은 없었던것이 되었다고 합니다.
대신 안나는 네덜란드 국왕의 장남이었던 오라녜공 빌렘과 결혼하게 됩니다. 사실 빌렘은 이미 영국의 왕위계승자였던 웨일즈의 샬럿 공주와 결혼협정이 거의 다 체결상태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샬럿 공주는 이 결혼을 일방적으로 깨버렸죠. 이에 안나의 오빠였던 알렉산드르 1세는 빌렘와 안나와의 혼담을 제의합니다. 둘의 결혼협정에서 아이들은 신교도로 키우는 대신 안나는 러시아 정교회를 유지하는것으로 합의를 봤었습니다.
젊은 시절의 빌렘 2세
1816년 2월 상트 페테스부르크에서 안나는 오라녜공인 빌렘과 결혼했으며 일년간 러시아에서 지낸뒤 네덜란드로 가게 됩니다. 여기서 안나는 매우 큰 충격을 받는데 네덜란드 궁정은 러시아 궁정에 비해서 너무나 소박했었죠. 또 네덜란드가 러시아에 비해 신분제도가 느슨한것 역시 경악스러운 일이었다고 합니다. 안나는 북부인 네덜란드 지방보다는 남부인 벨기에 지방을 더 좋아했으며, 벨기에에 가난한 이들을 위한 학교나 병원등의 시설등을 세우기도 했었습니다.
안나와 빌렘과의 사이는 그다지 편안하지 않았는데 안나는 HIH Grand duchess로 겨우 HRH Prince인 남편보다 자신의 지위가 훨씬더 높다고 여겼습니다. 또 남편의 주변 인물들에 대해서 못마땅하게 여겼었죠. 또 빌렘이 연애사건을 일으키면서 안나와 빌렘 사이는 훨씬더 멀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과 시아버지가 정치적 문제로 멀어지게 되자 둘을 중재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1830년대 안나
1840년 시아버지인 빌렘 1세가 가톨릭 교도와의 귀천상혼으로 퇴위하고, 안나의 남편인 빌렘이 네덜란드 국왕으로 즉위하자 안나도 네덜란드의 왕비가 되죠. 왕비가 된후 안나는 그다지 인기있는 왕비는 아니었는데 그녀는 에티켓을 매우 중시했기에 일반 백성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하는것을 꺼렸으며 러시아에서처럼 행동하려했습니다. 또 그녀는 비록 네덜란드어를 배우긴 했지만 그다지 잘 말하지 못했고 대신 프랑스어를 주로 썼는데 이때문에 벨기에쪽에 더 편안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죠.
1849년 남편인 빌렘2세가 위독해지자 안나는 남편곁을 한시도 떠나지않고 간호하게 됩니다. 하지만 남편이 심장마비로 죽었으며 그 모습을 목격한 안나는 심한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몇일간 남편의 시신에서 오래도록 무릎꿇고 기도하곤 했다고 합니다.
1840년대 안나
남편이 죽은뒤 안나는 궁정에서 은퇴했으며 외롭게 지내게 됩니다. 그녀는 며느리이자 이제 네덜란드 왕비가 된 뷔르템베르크의 조피와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그녀는 조피와 아들의 결혼을 가장 극렬하게 반대했었기 때문입니다. 조피는 안나의 조카로 정교회에서 사촌간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대긴 했지만, 사실상 조피의 어머니인 예카테리나와 안나의 사이는 평생 좋지 않았으며 안나는 싫은 언니의 딸을 며느리로 맞고 싶지 않았던것이었죠. 단순히 사촌간의 결혼이 문제가 되었다면 안나의 딸인 소피아가 언니 마리야의 아들인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과 결혼하는것 역시 반대했어야해쓴데 이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후에 안나와 조피와의 문제는 빌렘3세와 조피와의 문제와도 연결되기도 합니다.
또 안나는 빚이 많았는데, 빚을 갚아주기 위해 안나의 남동생인 니콜라이 1세는 누나에게서 많은 예술작품을 사들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1850년대 안나
안나와 빌렘 2세사이에서는 모두 다섯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장남인 빌렘은 후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빌렘 3세가 됩니다. 둘째아들인 알렉산더는 군인으로 미혼으로 사망했습니다.셋째아들인 헨드릭은 룩셈부르크 총독을 역임했었죠. 넷째아들은 영아시절 사망합니다. 그리고 막내는 딸인 소피아로 사촌인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과 결혼했습니다.
빌렘 2세와 안나 파블로브나 그리고 아이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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