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엠마 왕비까지 왔군요.
제가 한때 발덱-피르몬트 가문의 자매들에 대해서 좀 봤었습니다.
그 이유는 자매들의 어머니인 나사우의 헬레나가 나사우 공작의 딸로 스웨덴의 소피아 왕비의 언니였거든요.
게다가 엠마 왕비의 막내동생은 에르바흐-쇤베르크 공비로 막내여동생의 시어머니가 바텐베르크 가문 출신이기도 했었거든요.
그래서 좀 팠었다죠.-0-;;;;
게다가 엠마 왕비에 대한 글도 카페에서 읽었었구요..ㅎㅎㅎ
[네덜란드 여왕 양위 특집]네덜란드의 왕비들...(4) 발덱-피르몬트의 엠마
발덱-피르몬트의 엠마
네덜란드의 엠마 왕비
Emma of Waldeck and Pyrmont
(2 August 1858 – 20 March 1934)
발덱-피르몬트의 엠마는 발덱-피르몬트의 게오르그 빅토르와 그의 부인인 나사우의 헬레나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발덱-피르몬트는 독일의 작은 공국으로 크지는 않았지만 통치가문과 통혼이 가능한 가문이기도 했었습니다. 나사우의 헬레나는 나사우 공작인 빌헬름과 그의 두번째 부인인 파울리네의 딸로 헬레나의 막내 여동생은 스웨덴의 소피아 왕비였습니다.
게오르그 빅토르와 헬레나 사이에서는 여섯명의 딸이 태어났는데 이 딸들은 매우 교육을 잘 받았다고 알려지게 됩니다. 특히 헬레나 공비는 딸들을 대가문에 시집보내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했습니다.
엠마의 부모
발덱-피르몬트의 게오르그-빅토르와 나사우의 헬레나
헬레나의 오빠인 나사우 공작 아돌프는 후에 룩셈부르크의 대공이 되죠.
엠마가 주목받게 된것은 빌렘 3세가 그녀에게 청혼을 하면서였습니다. 빌렘3세는 1877년 아내가 사망한뒤 재혼할 여성을 찾고 있었는데 이것은 단순히 왕비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후계자가 필요해서였습니다. 그는 첫번째 아내사이에 세명의 아들을뒀고 아내가 죽었을때 두명의 아들이 살아있었습니다. 하지만 장남인 오라녜공 빌렘은 아버지와 사이가 멀었으며, 사랑하는 여자와의 결혼이 거부된뒤에는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고 파리에서 정부와 함께 살았었죠. 그리고 막내아들인 알렉산더 역시 우울증으로 결혼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여겨졌기에 결국 아들들이 있어도 왕위계승자는 없는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때문에 아내가 죽은후 정부였던 오페라 가수인 에밀리 암브레와 귀천상혼하려했었지만 네덜란드정부는 이를 거부했었죠.
빌렘 3세는 신부후보로 덴마크의 티라(크리스티안 9세의 막내딸)이나 사촌이었던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의 엘리자베스등을 고려합니다만, 그는 이 여성들보다 엄청나게 나이가 많았고 이들은 빌렘 3세를 거부했습니다. 하지만 빌렘 3세는 신부감을 계속 찾았고 결국 발덱-피르몬트 가문에서 신부후보를 찾게 됩니다. 처음에 빌렘 3세와 혼담이 오간것은 엠마의 언니인 파울리네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빌렘 3세를 거절했고 이때문에 파울리네보다 세살어린 엠마가 결국 빌렘 3세와 1879년 1월 결혼하게 됩니다.
빌렘 3세와 엠마 왕비
거의 할아버지뻘 되는 빌렘 3세와 결혼한 엠마는 남편을 돌보는데 집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편과 전처자식들과의 관계를 잘 풀어나가길 바라기도 했었구요. 하지만 이것은 엠마의 마음대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결혼한지 1년이 지난후에 엠마는 아이를 낳습니다. 그녀의 외동딸인 빌헬미나로 빌헬미나가 태어났을때 빌렘은 63살이었습니다.
빌렘 3세의 아들들중 빌렘은 엠마와 빌렘 3세가 결혼하던해에 사망했으며, 알렉산더는 1882년 사망했기에 결국 빌렘 3세의 후계자는 엠마의 딸인 빌헬미나밖에 남지 않게 됩니다. 빌헬미나는 어렸으며, 빌렘 3세는 연로했기 때문에 네덜란드 의회는 빌헬미나가 성인이 되기전 빌렘 3세가 죽을 경우 엠마에게 섭정지위를 부여하기로 하죠
딸 빌헬미나와 함께 있는 엠마 왕비
1885년
1890년 빌렘 3세가 위독하게 되자, 엠마는 섭정지위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남편이 사망한뒤 그녀는 딸인 빌헬미나의 섭정이 되죠. 엠마 왕비는 10살인 딸의 섭정이 되었는데 빌헬미나가 18살이 되는 1898년까지 섭정지위에 있게 됩니다. 엠마 왕비는 섭정으로써 딸을 대신해서 통치했는데 그녀는 정부 각료들과 많은 대화를 했으며 "입헌군주제"를 확립하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습니다. 이때문에 엠마는 정치가들에게 존경받게 되죠. 또 엠마는 딸인 빌헬미나의 교육에도 매우 신경을 썼는데, 그녀는 딸이 18살이 되기 2년전인 16살까지 국정을 수행할 능력을 키우길 바랬고 그렇게 교육시켰습니다. 그리고 딸 주변에 나이 많고 현명한 사람들을 많이 두었습니다. 엠마는 많은 일을 해야했고 이때문에 30살이 될때쯤에는 나이보다 훨씬더 늙어보였다고 합니다.
빌헬미나 여왕과 엠마 왕비
1897년
빌헬미나가 성인이 되어 통치하기 시작한뒤에 엠마 왕비는 정치에서 물러나게 됩니다만 여전히 딸의 조언자로 남았었습니다. 하지만 딸이 결혼한 뒤에는 공적인 생활은 거의 은퇴합니다. 엠마는 공적 생활을 즐기는 편이 아니었지만 늘 정치에 대한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였다고 합니다.
엠마 왕비는 은퇴한뒤 주로 자선사업에 전념했는데 특히 결핵 퇴치에 노력햇다고 합니다. 엠마 왕비의 언니인 조피가 열다섯살에 결핵으로 사망했기 때문에 더욱더 결핵 퇴치에 힘썼다고 합니다.
엠마 왕비는 외손녀이자 왕위계승자였던 율리아나가 태어났을때 다시 한번 섭정으로 거론됩니다. 네덜란드 의회는 빌헬미나 여왕의 남편이었던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하인리히가 섭정이 되는것에 동의하지 않았으며 엠마 왕비에 대해 늘 존경심을 가져왔던 네덜란드 정치인들은 차라리 엠마 왕비가 섭정으로 훨씬더 적임자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이에 대해 빌헬미나 여왕 역시 동의했습니다. 이에 외손녀인 율리아나 여왕이 성인이 된 1927년까지 법적으로 엠마 왕비는 여왕을 대신할 섭정후보였다고 합니다.
엠마 왕비는 1934년 75살의 나이로 헤이그에서 사망했습니다.
엠마 왕비
1918년
자료출처
1.위키 피디어
2.다음카페 로얄하우스(http://cafe.daum.net/yulia0818)의 boccacio님의 글 "네덜란드 여인 천하"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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