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불운한 빌렘 3세의 첫번째 왕비 이야기를 할차례이군요.
빌렘 3세와 조피는 뭐랄까 극렬하게 안맞는 부부라고 생각한다죠.-0-;;
부모의 불화는 아들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는....
[네덜란드 여왕 양위 특집]네덜란드의 왕비들...(3) 뷔르템베르크의 조피
뷔르템베르크의 조피
네덜란드의 소피아 왕비
Sophie of Württemberg
Sophia Frederika Mathilde von Württemberg
(17 June 1818 – 3 June 1877)
빈터할터 그림
뷔르템베르크의 조피는 뷔르템베르크의 빌헬름 1세와 그의 두번째 아내인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파블로브나 여대공의 둘째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어머니인 예카테리나 여대공은 러시아의 파벨 1세의 딸로 알렉산드르 1세가 가장 예뻐한 여동생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예카테리나 여대공은 빌헬름과 결혼하기전 사촌이었던 올덴부르크 공작과 결혼했었는데 남편을 사별했었죠. 그리고 오빠인 알렉산드르 1세를 따라 영국에 갔다가 역시 사촌이었던 빌헬름과 사랑에 빠집니다. 빌헬름은 정략결혼이었던 아내와 결혼을 무효로한뒤 예카테리나와 결혼했었죠.
조피의 부모
뷔르템베르크의 빌헬름 1세와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파블로브나 여대공
조피가 태어난지 1년도 되지 않아서 조피의 어머니 예카테리나가 사망했으며, 조피는 고모이자 제롬 보나파르트의 아내였던 뷔르템베르크의 카타리나가 키웠다고 합니다.
조피는 결혼전 여러곳의 혼담이 있었는데 그중에는 그리스의 국왕이었던 오톤과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인 빌헬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피의 아버지인 빌헬름 1세는 조피를 다른곳으로 시집보내기로 결정하죠.바로 조피의 사촌이었던 네덜란드의 왕위계승자인 오라녜공 빌렘과의 결혼을 추진했습니다. 조피는 1838년 빌렘을 처음 만났는데 이미 결혼이 결정된 뒤였다고 합니다.
빌렘 3세
사실 조피의 이모이자 시어머니가 될 네덜란드의 왕비는 이 결혼을 극렬하게 반대했었습니다. 안나는 언니인 예카테리나를 싫어했었는데, 싫어했었던 언니의 딸을 며느리로 맞는것을 원치 않았었죠. 게다가 조피는 빌렘을 보고 아무감정을 못느꼈으며 그와의 결혼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힙니다.하지만 조피의 아버지는 딸이 네덜란드의 왕비가 되길 바랫으며, 빌렘 역시 조피를 마음에 들어했다고 합니다. 네덜란드의 빌렘 2세 역시 영국의 샬럿공주와 약혼했다가 파혼당했엇기에 더이상 오라녜공이 공주들에게 파혼당하는것을 원치 않았기에 결혼을 강행하게 됩니다.
빌렘 3세의 어머니이자 조피의 이모였던 안나 파블로브나 여대공
..그런데 보면 안나의 초상화랑 조피의 사진이랑 많이 닮았다는...
조피와 빌렘은 매우 안맞는 사이였습니다. 둘은 취향이 서로 달랐는데 빌렘은 예술과 음악을 사랑했었던 반면 조피는 역사를 더 좋아했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조피는 빌렘보다 지적능력이 뛰어났는데, 그녀는 남편이 국왕감이 아니라고 여겼으며, 남편과 정반대의 정치성향을 가졌고 그걸 대놓고 이야기했었습니다. 이런 조피에 대해 빌렘은 무척 싫어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자존심이 상했을듯합니다. 게다가 빌렘은 수많은 연애사건을 일으켰으며 이때문에 조피는 싫어했던 남편을 더욱더 지긋지긋하게 여기게 되었죠.
급기야 조피는 남편과 이혼을 요구합니다만, 네덜란드 정부는 이를 거부합니다. 대신 조피와 빌렘은 공식적으로 별거하는데 합의를 봤으며 둘은 1855년 이후 별거상태로 살았습니다. 조피는 네덜란드 대신 자주 친정에서 머물렀으며, 네덜란드에 있을때도 남편를 피해서 다른 궁전들에서 거주했다고 합니다.
조피
조피는 다양한 학자들과 교류를 했으며, 강한 정치적 견해를 보이기도 했었습니다. 또 여러 예술가들의 후원자노릇을 하기도 했었죠.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지적 능력을 너무 과시했으며 남편인 빌렘을 대놓고 무시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빌렘은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었습니다.
조피는 죽은후 웨딩드레스를 입고 묻혔는데, 왜냐면 조피의 입장에서는 그녀가 결혼한 날은 그녀의 삶이 끝난 날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조피의 마지막 모습
조피는 빌렘 3세와의 사이에서 세명의 아들을 낳았습니다만, 셋다 아버지보다 오래살지 못했습니다.
장남인 빌렘은 30년간 오라녜공으로 있었습니다. 그는 부모의 불화에 영향을 받았으며 오래도록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미혼으로 사망했었습니다. 차남인 마우리츠는 어린시절 사망합니다. 막내인 알렉산더는 마우리츠가 죽은뒤 태어났는데 왕위계승자가 필요했기 때문에 낳은 아들이었죠. 알렉산더는 형이 죽은뒤 오라녜공이 되었습니다. 그는 병약햇기에 어머니의 과도한 애정을 받았지만 반면 아버지에게서는 그다지 큰 애정을 받지 못합니다. 알렉산더 매우 지적이었지만 그 역시 부모의 불화에 영향을 받았고 어머니가 죽은뒤 거의 은둔생활을 했었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1.위키피디어
2.다음카페 로얄하우스(http://cafe.daum.net/yulia0818)의 boccacio님의 글 "네덜란드 여인 천하"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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