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영국의 왕비들...(5)프랑스의 앙리에트 마리 : 찰스 1세의 왕비(첫번째)

엘아라 2013. 4. 4.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아하하..드디어 헨리에타 마리아입니다.

책을 찾았는데 읽다가 지쳤습니다.-0-;;

그런데 안 왕비와 버킹엄 공작사이에 섬씽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오네요.

헨리에타 마리아의 대리혼때 버킹엄 공작이 짜잔 하고 나타나서는 안 왕비랑 "유쾌하게 지냈고"이건 소문이 확 퍼질까 말까하는 바람에 모후인 마리 드 메디시스가 걱정할 정도였다고 하네요.

(이 이야기가 더 재미있습니다..ㅠ.ㅠ)


영국의 왕비들...(5)프랑스의 앙리에트 마리 : 찰스 1세의 왕비(첫번째)





프랑스의 앙리에트 마리

헨리에타 마리아 

찰스 1세의 왕비

Henrietta Maria of France 

(Henriette Marie de France;) 

(25 November 1609 – 10 September 1669) 

1638년 

반다이크

...개인적으로는 이시기 영국 여성들 초상화로 누가 누군지 구별 못합니다.--;;;



후에 잉글랜드의 왕비인 헨리에타 마리아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는 앙리에트 마리는 1609년 11월 25일 루브르 궁전에서 앙리 4세와 그의 두번째 부인인 마리 드 메디시스의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가 태어났을때 앙리 4세는 지참금만 많이 드는 딸이 태어났다고 투덜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하지만 앙리에트 마리는 이런 아버지를 잘 알지 못하는데 왜냐면 그녀가 태어난지 육개월정도 지나서 앙리 4세는 암살당하기 때문입니다.



앙리에트 마리의 부모

앙리 4세와 마리 드 메디시스

그리고 네명의 자녀들

1607년 그림으로 아직 앙리에트 마리와 바로위의 오빠인 오를레앙 공작 가스통은 태어나기 전입니다.


앙리에트 마리는 어머니인 마리 드 메디시스에 의해 양육되는데, 어머니 마리가 궁정에서 쫓겨나있던 시절에도 어머니와 함께 있었다고 여겨진다고 합니다. 앙리에트 마리의 어린시절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지만, 앙리에트 마리는 어린시절 형제 자매들과 매우 행복한 시간을 보냈을것이라고 추정합니다. 큰언니인 엘리자베트는 앙리에트 마리가 다섯살때 에스파냐로 시집갔기 때문에 그다지 큰 교류가 남아있지 않습니다만, 다른 언니인 크리스틴과는 평생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지냈고, 크리스틴은 늘 막내 여동생에 대해서 애정어린 시선으로 봤다고 합니다. 또 앙리에트 마리의 오빠들인 루이 13세와 오를레앙 공작 가스통 역시 여동생을 무척이나 예뻐했다고 합니다. 앙리에트 마리는 한살밖에 차이 나지 않는 오빠 가스통가 제일 친했으며 또 루이 13세가 제일 예뻐한 여동생이기도 했었구요.

앙리에트 마리는 올케인 안 왕비와도 잘 지냈다고 합니다. 남편과 결혼했을때 어린아이였기에 남편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시작하지도 이끌어나가지도 못했으며. 프랑스에서 늘 고립되어서 살았던 안 왕비 역시 어린 막내 시누이에게 무척이나 다정하게 대했습니다.



앙리에트 마리

1611년


앙리에트 마리는 프랑스의 공주로 다양한 교육을 받게 됩니다. 비록 그녀가 뛰어난 학생이었다는 기록은 없지만, 읽고 쓰는것은 물론,춤과 노래 승마등을 배웠습니다. 아마도 앙리에트 마리는 프랑스 궁정에서 사랑받던 행복한 공주가 아니었을까합니다.



1615년


이런 앙리에트 마리가 중요한 인물로 인식된것은 1623년경입니다. 당시 잉글랜드의 왕위계승자였던 웨일즈 공 찰스는 버킹엄 공작과 함께 신부감을 물색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잉글랜드 상황은 좀 복잡했는데, 신교와 구교간의 대립은 여전했으며, 찰스의 아버지인 제임스 1세는 잉글랜드내 가톨릭 세력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웨일즈 공의 아내를 가톨릭 교를 믿는 공주를 얻고자 했습니다. 이에 찰스와 버킹엄 공작은 우호관계가 강했던 에스파냐로 가게 됩니다. 에스파냐의 펠리페 3세의 딸인 마리아 안나를 신부감으로 원했지만, 마리아 안나와의 혼담은 성사되지 않습니다. 에스파냐와의 연합이 실패하자 찰스와 버킹엄 공작은 프랑스로 눈길을 돌립니다. 프랑스의 국왕 루이 13세의 막내 여동생인 앙리에트 마리가 미혼으로 있었으며 가톨릭을 믿는 공주를 얻고자 했던 웨일즈공의 목적에 부합되는 여성이었죠.



웨일즈 공 찰스

제임스 1세의 아들


결혼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여러가지 문제에 부딪힙니다만 결국 결혼협상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으며, 1625년 3월 결혼 협상이 끝났고 결혼식일정만 남게 됩니다. 하지만 그달에 잉글랜드에서는 매우 중요한 일이 일어납니다. 찰스의 아버지이자 잉글랜드의 국왕인 제임스 1세가 사망한것이었죠. 애도 기간때문에 결혼식 문제가 복잡하게 흘러갔지만 결국 5월 8일 이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아일랜드 국왕이 된 찰스 1세와 프랑스 국왕의 막내 여동생의 약혼이 발표되었죠. 그리고 앙리에타 마리는 파리에서 대리결혼을 치룬후, 남편이 기다리는 잉글랜드로 가게 됩니다.




자료출처

1.Henrietta Maria(H.Haynes.Methuen&co.LTD.1912)

2.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