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영국의 왕비들...(3)덴마크의 안나 : 제임스 1세의 왕비 (두번째)

엘아라 2013. 3. 21.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영국 왕비들은 자료가 넘쳐나는군요--;;;

간단하게 쓸려고 했는데 잘 안되네요.....아하하하...--;;;

그리고 생각해보니 스튜어트 가문에 대한 책들도 좀 읽었었다죠. 이런이런..ㅠ.ㅠ


영국의 왕비들...(3) 덴마크의 안나 : 제임스 1세의 왕비(두번째)




덴마크의 안나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앤 왕비

Anne of Denmark 

(12 December 1574 – 2 March 1619)



앤의 남편인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는 어린시절 매우 불우한 성장 배경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한살도 되기전 아버지 단리경이 사망했으며, 어머니 메리 스튜어트는 남편을 죽였다는 의심을 받았었죠. 그리고 한살정도 밖에 안된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는 거의 달아나다시피 잉글랜드로 가야했습니다. 그리고 잉글랜드에서 남은 여생을 유폐된채 지내다가 결국 사형당하게 되었죠.

당시에 왕위계승자자들은 어려서부터 어머니나 가족들과 떨어져지내던것이 일반적이었기에 사실상 제임스 6세가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고 하더라도 어머니를 오래 보거나 그러지는 못했을 가능성이 컸었습니다. 하지만 한살정도에 이미 국왕의 지위에 올랐지만, 직계가족은 아무도 없었고 또 엄격한 신교도로 자라나길 강요당했다고합니다. 이때문에 그의 성품에 대해서는 좀 말이 많은데 어린시절부터 그는 심하게 애정을 갈구했으며 특히 "남성"에게 애정을 품었다고 알려지게 됩니다. 


제임스 6세가 과연 동성연애자였는지는 알수 없지만, 그에 대한 이야기중 일부는 정치적으로 너무 과대해석되었다고 볼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앤은 결혼 3년만에 첫 임신을 했는데 이때문에 제임스 6세의 정적들은 그동안 제임스 6세가 동성연애자이며 이때문에 앤이 임신하지 못하는것이라 떠들고 다녔었다고 합니다. 또 잉글랜드에서 총신들에 대한 과도한 지위 부여 역시 그가 "개인적인 즐거움"때문에 그들을 등용했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잉글랜드내에서 임지가 약했던 제임스가 자신의 후원을 받는 이들을 귀족과 정치 권력자로 등용하므로써 그의 정치적 입지를 넓히려했었다는 점 역시 잊어서는 안되는것이겠죠. (개인적으로는 제임스 6세가 동성연애자였는가에 대해서 회의적으로 생각합니다.)



메리 스튜어트와 아들 제임스 6세


제임스 6세와 앤의 결혼생활은 곧 불행하게 됩니다. 매우 낭만적으로 결혼한 둘이지만, 결혼초부터 서로의 성격이 안 맞다는것을 알았습니다. 앤은 남편에게 지지 않는 성격이었고, 제임스 6세가 참는쪽이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는 자신이 나이가 더 많았기에 어린 아내에 대해서 자애로운 행동을 해야한다고 여겼을듯합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아내와 부딪히게 되면서 제임스 6세는 곧 아내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들게 되고,결혼생활에 넌덜머리를 냈으며, 다른 연애사건을 일으키게 됩니다. 앤 머레이와의 연애관계는 꽤나 널리 알려지게 되었는데 제임스 6세는 그녀를 "나의 연인이자 사랑"이라고 할 정도였고 심지어는 앤 왕비역시 앤 머레이와 남편과의 관계에 대해서 언급할정도였다고 합니다. 훗날 제임스 6세는 공식 기록에 결혼에 대해서 결혼이란 남자가 할수있는 가장 끔찍한 일이다라고 묘사할정도였다고합니다.



제임스 6세


앤은 결혼 초부터 후계자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습니다. 특히 결혼초에 임신의 징후가 없자 제임스 6세의 동성연애설이 파다했으며, 앤이 임신하지 못하는것이 그 증거라고 사람들이 쑤근댔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1594년 아들인 헨리 프레드릭이 태어나자 모두들 그에 대해서는 조용해졌습니다.

아들이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부부사이가 좋아진것은 아니었습니다. 후계자를 낳았지만, 앤은 아들의 교육에서 배제당합니다. 제임스 6세는 아들이 스코틀랜드인으로 자라길 바랬기에 아내의 간섭을 배제한채 스코틀랜드인이 아들을 양육하게 합니다. 이런 처사는 어린시절 가족과 함께 즐겁게 자란 앤에게는 매우 부당한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녀는 어머니로써 아들의 양육에 대해 관여해야한다고 주장했지만 제임스 6세는 아내의 말을 무시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의 양육자에게 "자신의 명을 제외한 어떠한 명도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라고 할정도였죠. 앤과 제임스는 서로 아이의 양육문제에 대해서 한치도 양보를 하지 않으려했으며 결국 부부사이는 더 극악에 달하게 되죠. 앤은 의회에 호소하려고도 했지만, 제임스는 들은척도 하지 않았죠. 1603년 앤은 남편이 잉글랜드 왕위계승을 위해 잉글랜드로 떠나자 아들을 되찾으려했지만, 아들을 제대로 만날수조차 없었고, 이때문에 그녀는 분노로 또 아이를 유산할정도였다고 합니다.



앤 왕비


부부는 끊임없이 다툼을 벌였는데 수많은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1600년 고리 백작과 그의 동생은 제임스 6세를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몄다가 발각되어 국왕의 시종들에 의해서 살해당합니다. 이때 고리 백작의 누이들이었던 베아트리스 루스벤과 바바라 루스벤은 왕비의 시녀로 일하고 있었으며 총애받던 시녀들이었죠.앤은 이때 임신 6개월이었는데 국왕에게 자신의 시녀들을 구해주지 않는다면 먹지도 자지도 않겠다고 협박했다고 합니다. 제임스는 아내를 타일렀지만 소용없었으며 그후로도 오래도록 루스벤 가문을 위해 앤은 여러가지 일을 했었고 결국 제임스는 베아트릭스 루스벤을 위해 연금을 지급해야했다고 합니다.

1613년 앤은 남편이 가장 예뻐하는 애견을 사냥시즌에 총으로 쏴서 죽이죠. 이에 제임스는 "주얼"이라는 이름의 그 개를 기념하기 위해 일부러 2000파운드에 달하는 아름다운 다이아몬드를 선물했다고 합니다. 

또 앤은 사람들에게 남편인 제임스가 술을 많이 마신다고 마구 험담을 했었다고도합니다.


1603년 제임스는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로 즉위했고 앤은 곧 남편의 뒤를 따라 잉글랜드로 가게 됩니다. 이곳에서 앤은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게 되죠. 그녀의 남편은 런던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앤은 반대로 런던의 사교계를 매우 사랑했습니다. 이때문에 제임스는 자꾸 시골로 가려했고 반대로 앤은 화려한 도시에 남으려했었죠. 결국 둘은 점차 같이 지내는 시간이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1607년 앤은 일곱번째 아이인 소피아를 낳다가 거의 죽을뻔했습니다. 그리고 세번 유산한 경험도 있었죠. 결국 그녀는 더이상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했었고 부부사이는 더욱더 벌어지게 됩니다.



앤과 제임스 1세의 딸

엘리자베스 스튜어트

팔츠의 선제후비

보헤미아의 겨울 왕비


1612년 장남인 헨리 프레드릭이 사망하고,1613년 장녀인 엘리자베스가 팔츠의 선제후에게 시집가버리자 제임스와 앤의 유대관계는 더욱더 약해집니다. 특히 앤은 장남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했으며 건강마저 나빠지게 되었죠. 이런 상황은 앤이 궁정과 귀족사교계에서 동떨어지게 만들었으며 결국 제임스의 총신들이 권력을 차지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재미난것은 제임스의 두 총신이었던 서머셋 백작과 버킹엄 공작에 대해서 앤이 다른 반응을 보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앤은 서머셋 백작 로버트 카는  매우 싫어했던 반면 버킹엄 공작이 되는 조지 빌리어스에 대해서는 매우 호의적이었으며 공작과 친분관계를 유지할정도였다고 합니다.



조지 빌리어스

버킹엄 공작

삼총사에 나오는 버킹엄 공작이 이 사람입니다.

그는 찰스 1세와 죽이 잘맞아서 찰스 1세가 에스파냐에 청혼하러 갈때 따라갔었습니다.

뭐 대충 소설에서는 그때 안 왕비를 만난걸로 나오긴 하지만..실제로는 이미 안 왕비는 시집간뒤..-0-;;;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