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영국의 왕비들...(4)덴마크의 안나 :제임스 1세의 왕비(세번째)

엘아라 2013. 3. 28.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아하하..앤 왕비로 한달을 떼우는군요.

헨리에타 마리아는 전기도 읽다 말았는데 말입니다.-0-;;;;;


영국의 왕비들...(4)덴마크의 안나 :제임스 1세의 왕비(세번째)




덴마크의 안나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앤 왕비

Anne of Denmark 

(12 December 1574 – 2 March 1619)


스코틀랜드 왕비로써의 앤은 남편에게 그다지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었습니다. 부부관계는 극도로 악화되어있었을뿐만 아니라, 제임스가 신임했던 마 백작(Earl of Mar)를 정적으로 생각했었기 때문이죠. 이런 관계는 제임스가 장남의 양육을 마 백작가문에 맡겼으며, 마 백작가문은 왕자의 양육에서 왕비를 철저하게 배제했었던 국왕의 명을 충실히 수행하기도 합니다.결국 이런 관계로 인해서 앤은 남편에게 신임을 얻지 못했고 결국 스코틀랜드에서 정치적입지가 그다지 넓지 않았었습니다.


앤의 정치적 입지는 제임스가 잉글랜드의 국왕이 되면서 바뀌게 됩니다. 제임스는 런던 사교계를 좋아하지 않았고, 잉글랜드 귀족들보다는 조용한 삶을 원했었습니다. 이런 이면에는 잉글랜드 귀족들의 스튜어트 가문에 대한 반발도 무시할수 없었을듯합니다. 왜냐면, 잉글랜드 귀족들은 스튜어트 왕가에 대해서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으며 이런 반발은 이전 시대인 튜더가문 시대. 특히 엘리자베스 1세에 대한 호의적 평가를 지속하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했었습니다.

앤은 남편과 달리 잉글랜드 귀족사회의 중심인물이 되었고, 결국 그녀는 정치적 영향력을 갖게 됩니다. 재미난것은 앤이 제임스와 매우 사이가 나빴었지만 그녀는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남편의 의견을 대부분 존중했고 그를 따랐다고 합니다. 앤은 대중에게 신중하고 상냥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녀의 남편에 대한 대중의 반감을 줄이는데 노력했으며 또 외교 관계에 있어서도 친정인 덴마크 왕가와의 연결관계를 통해 남편에게 이익을 주려했다고 합니다.


앤 왕비



앤에 대해서는 학자들간에 매우 부정적 의견이 많았다고 합니다. 제임스 1세는 학식이 높았던 인물로 그는 아내를 늘 참는 스타일이었으며, 앤의 경우에는 늘 남편에게 화를 내고 닥달하는 존재로 비춰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녀의 행동에 대해 오래도록 어리석거나 잘못된 행동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습니다만, 이에 대해서 반대하는 이야기도 차츰 형성되고 있다고 합니다. 앤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주로 "자코바이트"의 난 이후 형성된 스튜어트 가문에 대한 부정적 평가때문에 잉글랜드의 스튜어트 가문의 어머니인 앤을 평가절하한다는것이죠. 


앤은 제임스와 마찬가지로 낭비벽이 있었다고 합니다. 또 그녀는 춤추는것과 야외극,가면극을 매우 사랑했었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가면극이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에서 매우 활성화 되었으며, 왕비 자신과 시녀들이 직접 가면극에 출연하기도 했었는데 앤은 임신 6개월째였을때도 가면극에 시녀와 함께 출연했었다고 합니다. 또 앤은 예술을 적극적으로 후원해서 수많은 예술가들을 후원했으며, 또 로열 콜렉션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앤 왕비


앤은 태어났을때 루터파였으며, 결혼식때는 영국 국교회식으로 대관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후에 가톨릭으로 개종했다는 의심을 받았습니다. 여러 정황상 그녀가 가톨릭으로 개종했을 가능성은 충분했지만, 이에 대한 공식적 언급은 없었다고 합니다. 앤은 1603년 교황으로부터 묵주를 선물받았고, 잉글랜드 귀족이 이를 알아차리자 제임스 1세는 그를 10개월간이나 런던탑에 가두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 앤은 남편처럼 아들들을 가톨릭 교도인 공주와 결혼시키길 원했었다고 합니다. 


1617년 앤은 크게 앓은뒤 쇠약해지게 됩니다. 그리고 건강이 점점 쇠약해졌는데 다양한 처방도 별 소용이 없었죠. 앤이 앓고 있는동안 남편 제임스는 아내를 겨우 세번정도밖에 방문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들인 찰스는 어머니곁에 자주 머물렀고 어머니의 임종을 지켰다고 합니다. 앤은 1619년 3월 2일 44살의 나이로 사망합니다.

제임스는 아내를 무시하고 살았지만, 아내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그는 아내가 죽어갈때도 거의 방문하지 않았고 아내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았지만, 앤이 죽은뒤 그 역시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습니다. 

앤은 1619년 5월 13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습니다만, 청교도 혁명기간에 그녀의 묘는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앤의 남편 

제임스1세


앤과 제임스1세 사이에는 모두 일곱명의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중 성인으로 성장해서 결혼한 자녀는 장녀이자 "보헤미아의 겨울 왕비"로 알려지게 되는 엘리자베스 스튜어트와 차남이자 청교도 혁명기간에 죽음을 맞이했던 찰스1세 둘밖에 없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