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영국의 왕비들...(1) 들어가면서

엘아라 2013. 3. 7.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아하하...영국 왕비들 이야기할려니까 머리가 살짝 아프군요.ㅠ.ㅠ


영국의 왕비들...(1) 들어가면서


이제 신성로마제국황후들 이야기가 끝나서 영국 왕비들 이야기를 시작할까합니다.

문제는 영국이 좀 복잡한 정치 상황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영국(United Kingdom)이 성립된 것은 앤 여왕때입니다.

이전에는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가 분리된 나라였죠. 그리고 엘리자베스 1세이전에는 아일랜드가 완전히 병합되지 않았었습니다. 결국 영국의 왕비들에 대해서 볼려면 일단 잉글랜드 역사와 스코틀랜드 역사가 합쳐지는 시점부터 시작해야하죠. 


하지만 이전에 스튜어트 왕가 시기에는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가 같은 군주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이를테면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는 스코틀랜드에서는 제임스 6세였죠. 이런식으로 생각하면 스튜어트가문의 왕비들부터 시작해야하는것이 더 맞는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비록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각기 다른 나라였지만 국왕은 동일했었으니까요.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


그래서 지금 생각으로는 영국의 왕비들..이라는 제목으로는 스튜어트 왕가 이야기부터 시작할까합니다.

그리고 영국의 왕비들 이야기까 끝난후에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왕비들 이야기를 따로 다룰예정이구요. 그리고 그 이전시대의 분열 국가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을 예정입니다. 왜냐구요 아무래도 자료가 적어서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 아일랜드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할지잘 모르겠습니다..아하하...


각기 다른 나라였던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를 같은 군주가 통치하기 시작했던것은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때부터입니다.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1세가 사망한뒤, 적법한 왕위계승자는 오직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밖에 없었습니다. 제임스 6세의 부모는 모두 잉글랜드의 공주였던 마거릿 튜더의 후손으로 마거릿 튜더는 잉글랜드의 헨리 7세와 그의 부인인 요크의 엘리자베스의 딸로 헨리 8세의 누나였습니다.


엘리자베스1세가 후계자 없이 사망할 무렵 모두들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가 국왕이 될것이라는것을 알았으며 제임스 역시 잉글랜드 왕위계승자로 자신이 유력한것을 알고 여러가지 정치적 행보를 보여습니다. 그리고 여왕이 죽은뒤 잉글랜드에서 "제임스1세"로 즉위하게 되죠.

하지만 스튜어트 왕가의 잉글랜드 통치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외국인 국왕이 겪는 많은 문제를 제임스1세와 그 후손들은 겪었으며, 결국 이런 상황은 귀족과 왕권과의 다툼으로 발전했고 결국 잉글랜드의 청교도 혁명이나 명예혁명등 이 모든것이 스튜어트 왕가시절에 일어나게 됩니다.



제임스 6세 & 1세의 가계도

그는 부계와 모계 모두 헨리 7세의 딸이자 헨리 8세의 누이였던 마거릿 튜더와 연결됩니다. 

이때문에 엘리자베스 1세는 단리경과 메리 스튜어트와의 결혼을 잉글랜드의 왕위계승권을 노린것으로 판단하고 매우 분노했었다고 합니다만, 이미 결혼한 상황이라고 단리경의 어머니인 레녹스 백작부인을 런던탑에 잠시 가두는것외에는 할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특히 명예혁명이후"가톨릭 교도의 왕위계승을 금지"라는 법률이 시행되게 됩니다. 물론 잉글랜드에서 시행되었던 이 법률에 대해 스코틀랜드는 그다지 탐탁치 않게 생각했는데, 명예혁명등이 모두 "잉글랜드 혁명"이었다는것을 생각해보면 스코틀랜드의 정서는 또다른 문제였음을 알수 있습니다. 어쨌든 잉글랜드는 압도적인 경제력을 바탕으로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통합"을 강요하게 되었고 결국 앤여왕때 "UK"가 형성되게 됩니다. 이런 통합은 결국 "잉글랜드가 정한 국왕"을 스코틀랜드도 인정하라는 압력이었던것이죠.



앤여왕

우리가 일반적으로 현재 알고 있는 영국의 첫번째 통치 군주


가톨릭 교도의 왕위계승 금지 조항은 영국의 국왕으로 낯선 인물이 국왕이 되게 만듭니다. 바로 하노버의 선제후였던 게오르그 루드비히로 그는 영국의 조지1세가 됩니다.그의 어머니인 조피 선제후비는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의 외손녀였습니다. 이때문에 게오르그 루드비히는 신교도로는 첫번째 왕위계승자였지만, 가톨릭을 포함한 왕위계승 서열에서는 50번 이상의 순서였습니다. 하지만 잉글랜드 인들은 게오르그 루드비히에 대해서 나이도 많고,독일인이고 촌스러웠지만, 가톨릭인 올드프리텐더보다는 낫다라고 여겼었죠.이후 영국의 왕위계승은 이 조지1세의 후손들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조지 2세,조지 3세,조지 4세,윌리엄4세그리고 빅토리아 여왕이 되죠.


빅토리아 여왕때가 되면서 조지1세의 원래 고향인 하노버가 영국의 군주와 분리됩니다. 이전까지는 영국의 국왕들은 하노버의 국왕이기도 했었습니다만, 하노버는 여성왕위계승자를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빅토리아 여왕은 하노버의 계승권을 가질수 없었기에 영국의 계승권만 가졌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사촌인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앨버트와 결혼했고,이 둘의 후손이 현 영국 여왕입니다.



빅토리아 여왕


빅토리아 여왕의 손자였던 조지 5세는 1차대전동안 반 독일감정 때문에 가문의 성을 바꾸게 됩니다. 이전에는 아버지의 영지명을 따라 "작센-코부르크-고타"가문이라고 불렸습니다만, 이후에는 "윈저가문"이라고 불리게 됩니다.


현 영국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는 결혼으로도 성이 바뀌지 않았습니다. 여왕의 남편인 필립공은 그리스의 왕자였지만, 사실상 덴마크 국왕의 손자였으며, 더 나아가서는 독일계였던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데르부르크-그뤽스부르크"가문 출신이었죠.이 때문에 필립공 역시 "독일인"이라는 시선으로 보게 되었고, 역시 반 독일감정이 강했던 2차대전 이후 왕가에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필립공은 결혼전 영국 시민으로 귀화해서 "필립 마운트배튼"이 됩니다. 여왕이나 후손들이 "마운트배튼"이라는 성을 써야하는가에 대해서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결국 공식적으로 여왕과 여왕의 직계 왕위계승자들은 여전히 "윈저"라는 성을 쓰기로 결정되었고, 여왕의 후손들중 왕위계승권에서 먼 인물들은 "윈저-마운트배튼"이라는 성을 쓰기로 합의 봤다고 합니다.


Queen Elizabeth Toronto 2010

엘리자베스 2세와 남편 필립 공

2010년



..어째 쓰다보니 왕가 이름에 대해서 썼군요.


하여튼 결국 첫번째 이야기는 제임스1세의 왕비인 덴마크의 안나입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