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합스부르크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17) 안나 : 황제 막시밀리안 2세의 딸

엘아라 2012. 11. 20.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페르디난트 1세 딸들 끝났군요. 하지만 이제 페르디난트 1세 손녀들 해야합니다.

합스부르크가문이 어찌나방대한지...ㅠ.ㅠ


이번에 할사람은 바로 합스부르크가문의 꼬인 족보를 만드는분중 한분이시죠.

막시밀리안 2세의 큰딸이었던 안나는 에스파냐 합스부르크가와의 유대를 위해 펠리페 2세와 결혼했습니다.

펠리페 2세는 엄청난 연상에 세번이나 홀아비가 되었던 사람으로 결정적으로 안나의 외삼촌이기도 했습니다.

(외삼촌이나 친삼촌이랑 결혼한 왕녀들 이야기도 좀 찾아볼까싶군요.-0-;; 왕위계승권때문에 이런결혼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물론 후대에가면 없어지지만요.)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17) 안나 : 황제 막시밀리안 2세의 딸






오스트리아의 안나

오스트리아의 여대공

에스파냐의 왕비

Anna of Austria 

(1 November 1549 – 26 October 1580)


오스트리아의 안나 여대공은 황제 막시밀리안 2세와 그의 부인인 에스파냐의 마리아의 큰딸로 태어났습니다. 막시밀리안 2세는 백부인 카를 5세 밑에서 일을 했었으며 사촌인 마리아와 결혼했기때문에 결혼초 에스파냐에서 머물렀으며, 이때문에 안나는 에스파냐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는 곧 오스트리아로 갔기때문에 안나 역시 부모와 함께 빈에서 살았습니다만, 독일어가 서툴렀다고 합니다. 대신 카탈루냐어는 매우 잘했는데 안나의 어머니인 마리아는 딸에게 주로 카탈루냐어를 썼다고 합니다. 안나는 막시밀리안 2세가 사랑하는 딸이었는데, 황제는 딸과 자주 놀아줬으며 한번은 안나가 아플때 중요한 회의가 있었음에도 국무를 제쳐놓고 딸옆에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막시밀리안 2세와 에스파냐의 마리아 

그리고 자녀들

마리아가 손을 얹고 있는 아이가 안나입니다.



안나는 황제의 장녀였으며 이때문에 여러 유럽의 왕가에서 그녀와의 혼담을 추진하려했습니다. 하지만 합스부르크가문에서는 에스파냐와 오스트리아 두개의 분가의 우의를 다지기 위해서 펠리페2세의 아들인 돈 카를로스와의 혼담이 진행됩니다.  1556년 이미 둘의 약혼이 진행되지만 펠리페 2세는 아들과 안나의 결혼을 미룹니다. 개인적으로는 돈 카를로스에게는 여러가지 장애가 있었으며 특히 성격적으로 문제가 심각했다고 알려져있는데 이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1568년 돈 카를로스는 결혼하기 전에 사망하죠.

이때쯤 프랑스의 카트린느 드 메디시스는 자신의 아들인 샤를 9세와 안나와의 혼담을 추진하려 했을듯합니다.(하지만 이 혼담은 이루어지지 않고 안나의 동생이 샤를 9세와 결혼합니다.)



돈 카를로스

아스투리아스 공

안나의 첫번째 약혼자


돈 카를로스가 죽은 뒤 얼마되지 않아서 임신했었던 펠리페 2세의 세번째 아내인 엘리자베트 드 발루아가 사망합니다. 펠리페 2세는 어린 두 딸과 함께 다시 홀아비가 되었죠. 결국 합스부르크 가문에서는 안나를 외삼촌인 펠리페 2세와 결혼시키기로 결정합니다. 

안나는 자신보다 20살이상 많으며 세번이나 결혼했었던 두 딸을 가진 홀아비였으며 결정적으로 외삼촌이었던 펠리페 2세와의 결혼을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펠리페와 안나의 결혼에는 난관이 많았으며 특히 교황이 오래도록 반대했었다고 합니다. 사실 이렇게 가톨릭 교회법상 팔촌끼리의 결혼도 허용하지 않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촌끼리 결혼할수 있었던것은 교회의 사면장덕분이었죠. 하지만 이 경우는 사촌도 아니고 외삼촌과의 결혼이었기에 교황이 심하게 반대했었던듯합니다. (솔직히 저 자신도 잘 이해가 안간다죠--;;;)



에스파냐의 펠리페 2세

안나의 외삼촌이자 전 약혼자의 아버지이자 남편

.....꼬인족보-0-;;;


1569년 안나와 펠리페의 약혼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었고,이듬해인 1570년 안나는 대리혼을 올린후 펠리페와 정식으로 결혼하기 위해 마드리드로 갑니다. 이때 그녀는 남동생인 알브레히트와 벤츠슬라우와 함께 동행했는데 이 두 남동생은 에스파냐 궁정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아마도 펠리페 2세에게 남성후계자가 없을 경우를 대비해서 펠리페 2세의 조카들이자 역시 합스부르크가문 출신의 대공들이 에스파냐 궁정에 남아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길 원해서였을듯합니다. (후에 알브레히트는 펠리페 2세의 딸인 이사벨 클라라 에우헤니아와 결혼합니다.)



안나와 펠리페 2세 

그리고 가족들

...왕실 인물들을 다 모아놓은 상상화 되겠습니다.

가운데 여성이 안나이고 그 오른쪽이 펠리페 2세입니다.

왼쪽의 남자는 안나의 동생인 알브레히트이고 그 옆은 펠리페 2세의 딸인 이사벨 클라라 입니다.

펠리페 2세 오른쪽의 앉아있는 두 사람은 펠리페 2세의 부모입니다.



안나는 펠리페 2세의 사랑받는 아내가 됩니다. 안나와 결혼한 동안 펠리페 2세는 정부를 두지 않았다고 합니다.(--;;딸같은 조카랑 결혼해놓고 정부를 두면 진짜 나쁜넘인거 아닙니까..--;;) 안나는 펠리페 2세와 개인적 취향이 굉장히 비슷했기에 펠리페 2세는 아내와 함께하는 시간을 즐거워했다고 합니다. 또 안나는 매우 활기차고, 딱딱한 궁정분위기를 풀어주는 역할을 잘했습니다. 게다가 정치에는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며 주로 바느질을 하면서 지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안나는 두명의 전처자식을 잘 길렀을뿐만 아니라 펠리페 2세에게 아들 여럿을 낳아주면서 왕위계승자 문제도 해결해줬습니다.안나는 펠리페에게 다섯아이를 낳아주었는데 그중 네명이 아들이었습니다.(하지만 성인으로 성장한 아이는 아들 펠리페 3세 밖에 없었습니다.) 



안나의 아들

펠리페 3세

..미화버전..--;;;;


1580년 펠리페2세는 포르투갈 왕위를 주장하기 위해 포르투갈로 갑니다만 그 와중에 인플루엔자에 걸리게 됩니다. 여섯번째 아이를 임신중이었던 안나는 남편을 간호하기 위해 달려잡니다만 그녀 역시 감염되죠. 그리고 임신으로 허약해졌던 안나는 심장마비로 사망합니다. 

펠리페 2세는 안나의 죽음에 매우 상심했는데 2년후에 딸에게 쓴 편지에서 안나가 죽던날 밤에 대해서 "나는  그날을 항상 기억할 거란다. 천년을 산다해도 말이다.'라고 쓸 정도였다고 합니다.



안나

오스트리아 여대공

에스파냐의 왕비

펠리페 3세의 어머니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독일어 + 구글 번역기 포함)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