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합스부르크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19) 마르가레타,마리아,엘레오노르 : 페르디난트 1세의 손녀들

엘아라 2012. 12. 4.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페르디난트 1세의 손녀들중 세명이 결혼하지 않고 수녀가 되었습니다. 막시밀리안 1세의 딸인 마르가레타와 페르디난트 대공의 딸인 마리아 그리고 카를 대공의 딸인 엘레오노르였습니다.

이 사람들을 각각 하려니 수녀원에 들어간 여대공들은 그다지 많은 자료가 없거든요. 그냥 수녀원에서 종교적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다지 큰 일이 없기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을 따로 할려니 분량이 얼마 없고 해서 그냥 한꺼번에 묶어버렸습니다.

나중에 카를 대공의 딸들하고 맨끝에 할려고 했는데 귀찮아서 그냥 먼저해볼까합니다.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19) 마르가레타,마리아,엘레오노르 : 페르디난트 1세의 손녀들


페르디난트 1세의 아들들이었던 막시밀리안 2세, 페르디난트 대공,카를 대공의 딸들 한명씩이 결혼하지 않고 수녀가 됩니다. 막시밀리안 2세의 막내딸인 마르가레타와 페르디난트 대공의 딸인 마리아 그리고 카를 대공의 딸인 엘레오노르가 그들입니다. 그래서 몰아서 이야기해볼까합니다.


먼저 이야기 할사람은 막시밀리안 2세의 막내딸인 마르가레타입니다.



오스트리아의 마르가레타

Archduchess Margaret of Austria 

(25 January 1567 – 5 July 1633),


마르가레타는 막시밀리안 2세와 그의 부인인 에스파냐의 마리아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마르가레타는 막시밀리안 2세의 성인으로 성장한 자녀들중 막내였습니다. 마르가레타와 큰언니인 안나와의 나이차는 무려 열여덟살이나 났으며, 마르가레타가 겨우 두살때 안나는 에스파냐로 시집갔기 때문에 언니를 거의 알지 못했었습니다.

9살때인 1576년 아버지인 막시밀리안 2세가 사망했으며 13살때인 1580년 큰언니인 안나가 사망합니다. 안나가 죽자 안나의 자녀들인 에스파냐 왕실 아이들이 문제가 됩니다.합스부르크 가문에서는 마르가레타의 언니이자 과부였던 엘리자베트를 시집보내려했다고 했지만 엘리자베트가 이를 거절했었죠.



마르가레타의 부모

막시밀리안 2세와 에스파냐의 마리아


결국 1582년 아이들의 외할머니이자 펠리페 2세의 누이인 마리아 황후가 에스파냐로 가게 됩니다. 이때 마리아는 막내딸이었던 마르가레타를 에스파냐로 데려갑니다. 마르가레타는 어머니와 함께 조카들을 돌봤었습니다. 어쩌면 마리아는 이 막내딸을 다시 에스파냐로 시집보내려했을수도 있었을듯합니다.

마르가레타는 어린시절부터 어머니에게서 엄격한 종교 교육을 받았으며 매우 신앙심이 깊었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그녀는 수녀가 되길 원했고  에스파냐에 도착한 다음해인 1583년 수녀회에 입회서원을 했었습니다.아마도 마르가레타는 어머니가 살아있을때는 어머니와 함께 살았을듯합니다. 하지만 남은 여생은 수녀원에서 조용한 삶을 살았었습니다.



다음으로 할 사람은 페르디난트 대공의 딸인 마리아입니다.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Archduchess Maria of Austria 

(Erzherzogin Maria von Österreich

(June 16, 1584 - March 2, 1649)



마리아 여대공은 황제 페르디난트 1세의 아들이자 Further Austria를 상속받았던 페르디난트 대공(퍼더 오스트리아의 페르디난트 2세)와 그의 부인이자 조카였던 안나 카타리나 곤자가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였던 페르디난트 대공은 처음에는 귀천상혼을 했었는데 후계자 문제로 조카와 재혼했었죠.

안나 카타리나 곤자가는 매우 신앙심이 깊었으며 특히 성모 마리아를 매우 공경했었습니다. 원래는 수녀가 되려했었지만 부모의 뜻에 따라 결혼했었는데 남편이 죽자 수녀원에 들어갔었죠. 이때문에 안나 카타리나의 두 딸들 역시 신앙심이 깊었는데 살아남은 아이들중 큰딸이었던 마리아는 어머니처럼 수녀가 됩니다.




마리아의 부모

Further Austria의 통치자였던 페르디난트 대공과 그의 부인이자 조카였던 안나 카타리나 곤자가




마지막으로 할 사람은 Inner Austria의 통치자였던 카를 대공의 딸인 엘레오노르입니다.





오스트리아의 엘레오노르

Eleanor of Austria 

(25 September 1582 – 28 January 1620),


엘레오노르는 페르디난트 1세의 아들이자 Inner Austria를 상속받았던 카를 대공(인어 오스트리아의 카를 2세)와 그의 조카이자 부인이었던 바이에른의 마리아 안나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카를 대공과 마리아 안나 사이에서 모두 열다섯명의 자녀가 태어났는데 엘레오노르의 오빠인 페르디난트는 후에 황제가 되었고 언니나 여동생들은 폴란드 왕비나 토스카나 대공비등 유럽의 여러 왕가와 혼인관계를 유지하게 되죠.

엘레오노르의 외모는 그다지 예쁘지 않았던듯한데 특유의 합스부르크 립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또 어린시절 중병을 앓은 결과 건강 역시 좋지 못했었습니다. 하지만 매우 지적인 여성이었다고 합니다.



어린시절의 엘레오노르


엘레오노르는 비슷한 또래의 자매들이었던 그레고리아나 막시밀리아나와 마르가레테와 함께 자라났으며 이 셋은 모두 에스파냐의 펠리페 3세의 신부후보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세 자매의 초상화가 에스파냐 궁정으로 보내졌는데, 이후 에스파냐에서는 엘레오노르를 신부후보에서 제외합니다. 또 이탈리아쪽 가문들과도 혼담이 오갔으나 그다지 큰 성과가 없었습니다.

결국 엘레오노르는 불행한 결혼생활끝에 고향으로 돌아온 언니 마리아 크리스티나와 함께 1607년 수녀가 됩니다. 엘레오노르는 점점 건강이 나빠졌는데 죽기 얼마전에는 눈이 거의 보이지 않았었다고 합니다.



엘레오노르의 부모

Inner Austria의 통치자였던 카를 대공과 그의 조카이자 부인인 바이에른의 마리아 안나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