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합스부르크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21)안나 : 페르디난트 1세의 손녀

엘아라 2012. 12. 18.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카를 대공 딸들에 대해서 합니다.

페르디난트 1세의 아들인 카를 대공은 아버지로부터 Inner Austria를 상속받았습니다.

그는 조카인 바이에른의 마리아 안나와 결혼해서 자녀들을 무진장 많이 낳았는데 이때문에 형들의 가계가 단절된후 그의 아들인 페르디난트가 황제가 되었고 또다른 아들인 레오폴트는 합스부르크가문의 방계가문을 형성하게 됩니다.(...이거 난감한데 레오폴트네 가문 딸들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해봐야겠군요. --;;)


카를 대공의 큰딸인 안나는 스웨덴과 폴란드의 왕비가 됩니다.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21)안나 : 페르디난트 1세의 손녀




오스트리아의 안나

Inner Austria의 카를 2세의 딸

폴란드와 스웨덴의 왕비

Anne of Austria 

(16 August 1573 – 10 February 1598)


후에 폴란드와 스웨덴의 왕비가 되는 안나는 황제 페르디난트 1세의 아들이자 Inner Austria의 통치자였던 대공 카를 2세와 그의 조카이자 부인이었던 바이에른의 마리아 안나의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아버지의 궁정이 있던 슈타이어마르크에서 성장했는데, 카를 대공의 자녀들은 엄격한 가톨릭식 교육을 받았으며, 이때문에 안나 역시 다른 가족들처럼 가톨릭에 매우 열성이었습니다.



안나의 부모

Inner Austria의 통치자였던 카를 대공과 그의 조카이자 부인인 바이에른의 마리아 안나



안나는 1592년 스웨덴의 왕위계승자이자 당시 폴란드 국왕이었던 지그문트 3세(스웨덴의 시기스문드)와 결혼하게 됩니다. 둘의 결혼은 합스부르크와 폴란드 간의 유대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시기스문드는 스웨덴의 요한 3세와 그의 첫번째 부인인 안나 야겔로니카의 아들로 안나 야겔로니카는 폴란드 왕가인 야겔론 가문 출신이었고 이때문에 폴란드에서 야겔론 가문의 남성 직계가 단절 된후 시기스문드는 폴란드의 국왕으로 선출될수 있어습니다. 당시 폴란드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 왕국을 구성하고 있었는데 가톨릭 교도가 많았던 폴란드와 달리 리투아니아쪽에서는 신교도들이 더 많았고 이때문에 많은 신교 귀족들이 합스부르크가문 출신의 왕비를 맞는것을 반대했었습니다. 심지어 일부 귀족들은 그녀가 폴란드로 들어오는것을 막으려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후에 폴란드에서 안나는 꽤나 괜찮은 평가를 받게 됩니다.



안나의 남편

폴란드의 지그문트 3세

스웨덴의 시기스문드

그는 숙부인 칼9세에게 스웨덴 왕위를 뺏기게 됩니다.



결혼 2년후쯤 안나의 시아버지인 스웨덴의 요한 3세가 사망하고 안나의 남편은 스웨덴의 국왕을 겸하게 됩니다. 이때문에 안나와 시기스문드는 스웨덴으로 가야했죠. 당시 안나는 둘째아이를 임신중이었는데 폴란드에서는 첫아이인 공주를 폴란드에 두고 가길 요구했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국왕 부부가 폴란드로 돌아오지 않고 스웨덴에서 계속 머물것을 우려해서 그랬을듯합니다.

스웨덴으로 간 안나는 스웨덴의 왕비로 대관합니다만 스웨덴에서는 그다지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스웨덴의 왕가는 원래 신교도였으며 안나의 시어머니였던 구닐라 비엘케는 신교도였으며 신교측 이익을 강하게 대변하고 있었죠. 이때문에 가톨릭 교도인 안나와의 마찰은 어쩔수 없는것이었습니다. 게다가 구닐라 비엘케는 스웨덴 귀족 출신이었으며 안나는 합스부르크가문 출신이었기에 이런 차이 역시 고부간의 갈등에 한 몫했을듯합니다. 게다가 스웨덴에서는 가톨릭에 더 기우는 시기스문드에 대해서 매우 불만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것은 안나에게 스웨덴에 대해 그다지 좋은 기억을 남기지 못하게 합니다. 더불어 안나는 스웨덴어를 하지 못했기에 스웨덴 궁정에서 더 소외됐었을듯합니다.



안나


결국 안나는 1594년 여름 다시 폴란드로 돌아가게 됩니다. 안나와 시기스문드는 매우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둘은 서로를 잘 이해했으며,결국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더불어 안나는 폴란드에서 매우 소탈한 사람으로 알려졌으며 인기있는 왕비였습니다.안나와 지그문트 3세 사이에서는 모두 다섯명의 아이가 태어납니다만 성인으로 성장한 아이는 아들인 브와디스와프밖에 없었습니다.




안나는 1598년 막내아이를 낳다가 사망하게 됩니다. 그녀의 남편인 지그문트 3세는 아내의 죽음에 매우 슬퍼했으며 오래도록 홀아비로 지냈습니다만, 후에 합스부르크가와의 동맹과 아내에 대한 기억으로 처제인 콘스탄체와 재혼하게 되죠.


Monogramma R., sigismondo III di polonia e anna, oro, 1598

동전에 새겨진 폴란드의 지그문트 3세와 안나 왕비

.....저 리얼한 주걱턱이라니..ㅠ.ㅠ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