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합스부르크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요제프 황제 : 불행했지만 존경받던 황제

엘아라 2013. 1. 7. 22:53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제 블로그를 냉정하게 평가하시는 지인께서는 "너의 블로그는 희소성이 있긴 하지만 대중성은 부족해"라고 명확하게 이야기하시거든요. 친구님 한분은 "드라마에 나오는 역사이야기를 해라. 사람들이 그런건 관심있지 아니면 별로다"라고 이야기한다죠.

사실 저도 느끼는데...."MBC서프라이즈"에서 제 블로그에 있는 이야기와 연결된 이야기가 나오는 날 방문자 수가 급증하긴해요..ㅠ.ㅠ


하여튼 평소 일요일보다 두배는 더 많은 방문자수에 첫번째 든 생각이 "누가 결혼하나?"이고 두번째는 "서프라이즈에서 뭐했군"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안그래도 방송 프로그램을 봤더니 "프란츠 요제프 황제"이야기가 나오는군요.


늘 그렇지만 서프라이즈는 원래 AS안하는데 요즘 합스부르크가문을 너무 과하게 봐서 살짝 이야기해볼까합니다. 서프라이즈 내용은 그냥 흥미를 위해 좀더 과대했다고 여기시면 됩니다.

 전 텔레비전을 거의 안봐서 이번에도 안봤는데 프로그램 내용이 나온 뉴스를 보니 대충 프란츠 요제프의 불행을 "저주"때문이라고 이야기하는듯하군요.


하지만 저주가 사실이건 아니건 프란츠 요제프는 제가 생각해도 가정적으로 진짜 불행했던 사람은 맞아요.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요제프 황제 : 불행했지만 존경받던 황제


프란츠 요제프 황제는 오스트리아의 황제로 후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제가 됩니다. 프란츠 요제프의 불행은 사실상 그가 몰락해가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였고 몰락해가는 제국을 마지막으로 지탱하고 있었던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불행하게 된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란츠 요제프 

1910년경


프란츠 요제프 황제가 즉위할 무렵에 오스트리아는 매우 혼란한 상황이었습니다. 제국은 혁명의 위기에 몰렸고, 프란츠 요제프의 백부였던 페르디난트 1세는 통치 능력이 없는 인물로 알려져있었죠. 제국의 위기에서 사실상 황실을 이끌어가던 조피 대공비는 결단을 내리게 됩니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을 설득해서 제위를 포기하게 만들었으며 장남이었던 열여덟살의 프란츠 요제프를 즉위시키게 됩니다. 젊은 황제가 즉위하므로써 개혁을 할수 있다는 희망을 불어넣어 줘서 혁명의 기운을 어느정도 차단하려는 노력이었죠. 실제로 그의 이름중 요제프는 마리아 테레지아의 아들이자 앞서간 개혁군주로 평가되는 요제프 2세의 이름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죠.


프란츠 요제프는 늘 성실한 군주였으며 최선을 다했지만, 기울어가던 오스트리아의 몰락을 막을수는 없었습니다. 오스트리아는 서서히 몰락했으며, 특히 프로이센과의 패권다툼에서 패배하므로써 독일에서의 우월권을 잃었으며, 결국 독일 제국의 성립에서 제외되고 독일 외 다른 통치지역(동유럽쪽)을 아우르는 제국을 성립하게 되죠. 하지만 다 민족 국가를 형성하게 되므로써 민족주의가 강해지던 시기 제국은 분열은 언제나 있었죠.



젊은 시절의 프란츠 요제프 황제


사실 헝가리는 프란츠 요제프가 즉위한 직후 독립을 위한 무장 투쟁을 합니다만 곧 오스트리아에 진압됩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궁정에서는 이런 헝가리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특히 프란츠 요제프의 어머니이자 실질적인 가장이었던 조피 대공비가 안 좋게 봤다고 합니다. 이시기 오스트리아군에 의한 헝가리 사람들의 학살이 곳곳에서 자행되기도 했었습니다. (아마도 저주에 대한 이야기라는것은 이시기 헝가리 사람들의 심정을 반영한것이 아닐까합니다.)


이후 헝가리 정치가들은 다른 방향으로 선회합니다.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오스트리아 제국내에서 지위를 확보하기로 한것이죠. 이를 주도한 사람은 아무래도 줄리언 안드라시 였을듯합니다. 그는 황후였던 엘리자베트와 친분을 쌓았으며 헝가리에 편안함을 느끼던 황후는 헝가리에 든든한 지원이 되었죠. 결국 오스트리아는 프로이센과의 패권다툼에서 패배한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형성하게 됩니다. 헝가리가 이런 특별한 지위를 얻게 된것은 엘리자베트 황후의 공이 엄청 컸다고 합니다. 재미난것은 이후 헝가리는 항상 합스부르크 가문에 우호적이었으며,현재 오스트리아보다도 더 우호적이라고합니다.



프란츠 요제프의 부인

엘리자베트 황후 

"시씨"


사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하나의 국가로 뭉쳐야할 당위성이 별로 없었습니다. 다양한 민족들이 자신들의 영역에서 살고 있었으며 민족주의에 영향을 받아 독립하는것을 더 선호했었죠. 이런 제국을 하나로 유지하는것이 바로 중심인 황제 프란츠 요제프였죠.


프란츠 요제프의 개인적 삶이 불행했던것은 다른 많은 몰락하는 왕실에 나타나는 일반적 경향이었습니다. 사실상 황제의 불행한 삶의 중심에는 그의 아내인 엘리자베트가 있었습니다. 시씨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그녀는 궁정을 거부하고 자유 간절히 원했다고 알려져있죠. 하지만 그녀의 행동은 기울어져가는 제국을 떠받히고 있던 프란츠 요제프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황후로써의 의무를 싫어했었고 궁정에 있는것 조차 싫어했습니다. 이런 그녀의 삶은 사실상 결혼초의 불행한 사건들 -특히 큰딸인 조피의 죽음과 그 죽음에 대한 시어머니 조피 대공비의 비난이 주요했을듯합니다. 궁정에서 적응하는것을 힘들어하던 시씨는 딸의 죽음이후 거의 히스테리적으로 변했고, 아이들마저 뺏기게 되면서 더욱더 궁정을 기피하게 된것이죠.


하지만 조피의 죽음은 저주 때문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당시 영유아 사망율은 매우 높았으며 이것은 왕실가족들이라고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시씨의 큰딸 조피

조피의 죽음은 시씨가 궁정에서 더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 몰리게 만드는 계기가 됩니다.



아들 루돌프의 죽음에 대해서는 말이 많죠. 사실 그의 성격이 복잡하게 된것은 부모와 할머니의 영향이 컸다고 합니다. 루돌프는 할머니 손에 키워졌었고 그의 어머니는 양육에 대해서 처음에는 발언권이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시씨는 점점 궁정에서 영향력이 커졌고, 아들의 교육에 대해서 남편에 영향력을 가지게 되죠. 특히 보수적 군사 훈련 위주의 교육을 반대했었죠. 루돌프는 이런 어머니를 무척이나 좋아했고 잘 보이려고 했지만 시씨는 자신이 키우지 않은 아이들인 기젤라와 루돌프에 대해서는 어머니로써 관심을 거의 주지 않았습니다. 이런 복잡한 상황은 루돌프를 힘들게 했으며 그는 아버지인 황제와 달리 자유주의자였기에 아버지와의 마찰도 있었을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프로이센에서도 나타나는데 프리드리히 3세와 빌헬름 2세는 서로 정치적 견해가 달랐으며 아들인 빌헬름 2세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거의 정적처럼 봤었을정도입니다.

어쨌든 루돌프의 죽음 역시 다양한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이었습니다.



부인인 스테파니와 함께 있는 루돌프

시씨는 스테파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녀는 시씨와는 달리 궁정에 적응을 잘했는데 아마 싫어한 가장 큰 이유는 이렇게 적응 잘하는 스테파니를 보면서 스테파니의 고모이자 동서였던 멕시코의 카를로타 황후가 떠올라서였을듯합니다. 시어머니 조피 대공비는 늘 카를로타와 시씨를 비교했다고 합니다. 카를로타 역시 자신이 시씨보다 못한것이 없다고 여겼구요. 이때문에 시씨는 동서에게 그다지 좋은 감정을 가질수가 없었죠.


동생인 막시밀리안의 경우는 사실상 나폴레옹 3세의 실패와 연결이 됩니다. 멕시코 황위는 나폴레옹 3세의 프랑스 군에 의해서 주로 유지되었으며 나폴레옹 3세가 물러나면서 막시밀리안 역시 물러나야했죠. 하지만 막시밀리안은 이미 자신을 따르고 있던 멕시코인들을 위해 멕시코에 남았으며 이런 막시밀리안을 위해 멕시코 왕당파들은 그를 위해 싸우기도 했었습니다. 많은 멕시코 정치인들도 개인적으로는 막시밀리안을 좋아하기도 했었지만, 황제를 살려두는것은 공화국에 이롭지 않은것이라는 정치적 문제로 막시밀리안은 총살당하게 되죠.



죽기 직전의 막시밀리안



아내인 엘리자베트 역시 당시 불안정하던 유럽 정세때문에 죽은것입니다. 그녀는 그냥 정치적 목적으로 즉흥적 타켓이 되었고 스위스에서 칼에찔려 사망했죠.



시씨 황후


조카인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그의 아내인 조피 호테크는 그야말로 기울어져가던 오스트리아 문제때문이었습니다. 늙은 황제를 중심으로 제국을 형성하던 많은 곳에서 점점 독립을 위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는 여전히 구식 정책을 쓰고 있었으며 이것은 불만을 증대시키고 있었죠. 그리고 황태자 부부가 암살당하게 됩니다.



두아이와 함께 있는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조피 호테크(호엔베르크 공작부인)


프란츠 요제프는 오래 살았고 개인적으로 많은 불행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제국이 몰락하는것을 겪지는 않았죠.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매우 복잡한 정치 문제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런 정치적 문제가 있는 다른 나라들처럼 많은 사건들이 있었씁니다.결국 이런 불행은 여러가지 복잡한 일을이 겹쳐져서 생긴 결과인것이죠.


늘 그렇듯이 결론은 MBC서프라이즈는 믿거나 말거나입니다..ㅎㅎㅎ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