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합스부르크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23) 카타리나 레나타와 그레고리아나 막시밀리아나 : 페르디난트 1세의 손녀들

엘아라 2013. 1. 15.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카를 2세의 딸들중 혼담이 오갈 나이까지 성장했다가 결혼하지 못하고 사망한 딸은 두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둘을 묶어서 해볼까합니다.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23) 카타리나 레나타와 그레고리아나 막시밀리아나 : 페르디난트 1세의 손녀들




오스트리아의 카타리나 레나타

Archduchess Catherine Renata of Austria 

(4 January 1576 - 29 June 1599)


카타리나 레나타 여대공은 Inner Austria의 통치자였던 카를 2세와 그의 조카이자 부인이었던 바이에른의 마리아 안나의 셋째딸로 태어났습니다. 남동생인 페르디난트는 후에 사촌의 뒤를 이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페르디난트 2세가 되는 사람입니다.

그녀는 다른 형제 자매들처럼 가톨릭으로 키워졌으며 매우 엄격한 교육을 받았을듯합니다. 카를 2세의 자녀들은 모두 "합스부르크 립"을 가지고 있었으며, 카타리나 레나타 역시 합스부르크 립이 심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카타리나 레나타는 23살이 되던 1599년 파르마 공작이었던 라누치오 1세 파르네세(Ranuccio I Farnese)와 혼담이 오가게 됩니다만, 협상이 성사되기전 갑작스럽게 사망했다고 합니다.





오스트리아의 그레고리아나 막시밀리아나

Archduchess Gregoria Maximiliana of Austria 

(22 May 1581–20 September 1597) 


그레고리아나 막시밀리아나는 카타리나 레나타의 여동생입니다. 그녀는 두명의 대부모 이름을 땄는데 그레고리아나라는 이름은 대부였던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의 이름을 딴것이었고 막시밀리아나는 이모인 바이에른의 막시밀리아나 마리아의 이름을 딴것이었습니다. 바이에른의 막시밀리아나 마리아는 카를 2세의 부인이었던 언니 마리아 안나와 가장 친한 자매사이였으며 외할아버지였던 페르디난트 1세와도 매우 가깝게 지냈다고 합니다. 평생 홀로 살았지만 늘 궁정에서 지냈었던 그녀는 조카들과도 매우 가까웠는데 그레고리아나 막시밀리아나의 오빠인 황제 페르디난트 2세가 사촌인 바이에른의 마리아 안나와 결혼했던것도 다 이 이모의 영향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레고리아나 막시밀리아나의 대부와 대모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와 이모인 바이에른의 막시밀리아나 마리아



그레고리아나 막시밀리아나는 다른 형제자매들처럼 합스부르크 립을 가졌을뿐만 아니라 어깨쪽도 기형이었으며 얼굴에는 흉터도 있었다고 합니다.

1596년 에스파냐의 펠리페 2세는 아들 아스투리아스 공(후에 펠리페 3세)의 신부감을 구하기 위해 사절을 보내게 됩니다. 이때  카를 2세의 세딸들이 그레고리아나 막시밀리아나,엘레오노르.마르가레타 이렇게 세명이 후보가 됩니다. 아스투리아스 공은 초상화를 본후 마르가레타를 신부감으로 선택합니다만 그의 아버지인 펠리페 2세는 그레고리아나 막시밀리아나를 아내감으로 선택합니다.펠리페 2세가 그레고리아나 막시밀리아나를 선택한 이유는 나이가 가장 많았기에 바로 후계자를 얻을수 있는 며느리감을 원해서 그녀를 선택했을듯합니다. 


1597년 아스투리아스공은 신부감을 만나기위해 그라츠로 오게 됩니다. 하지만 그때쯤 그레고리아나 막시밀리아나는 매우 심하게 아팠으며 이때문에 사망합니다. 그녀가 죽은후 펠리페 3세는 그레고리아나 막시밀리아나의 여동생인 마르가레타와 결혼하죠.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