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합스부르크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15) 엘레오노르 : 페르디난트 1세의 딸

엘아라 2012. 11. 6.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페르디난트 1세 딸들이 어찌나 많은지...

엘레오노르 말고도 딸이 더 있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평온하게 사셔서 그런지 별 말이 없군요.--;;;;;

그런데 이제껏 만투바로 읽었더니..만토바로 읽는군요-0-;; 이런이런...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15) 엘레오노르 : 페르디난트 1세의 딸

 

 

 

 

 

오스트리아의 엘레오노르 여대공

만토바 공작부인

Archduchess Eleanor of Austria

(2 November 1534 – 5 August 1594)

 

 

오스트리아의 엘레오노르 여대공은 황제 페르디난트 1세와 그의 부인인 헝가리와 보헤미아의 안나(안나 야겔로니카)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어린시절부터 매우 신앙심이 깊었으며 가톨릭에 매우 열성적이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2살때의 엘레오노르

 

엘레오노르는 합스부르크가의 전통대로 가톨릭으로 교육을 받았는데 이때문에 그녀는 신교도와의 결혼을 꺼리게 됩니다. 한때 덴마크 국왕의 왕위계승자(아마도 프레데릭 2세일듯)와 혼담이 오갔지만 엘레오노르는 그가 신교도라는 이유로 거절했다고 합니다. 또다른 혼처였던 작센의 요한 프리드리히 2세와의 혼담 역시 그가 신교도라는 이유로 거절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엘레오노르는 언니나 동생처럼 수녀원에 들어가고 싶었을 가능성도 있었을듯 합니다만 결국 그녀는 이탈리아로 시집가게 됩니다.

 

언니 카타리나의 첫번째 남편인 만토바 공작 프란체스코 3세가 죽은뒤, 만토바 공작령은 프란체스코의 동생인 굴리엘모가 공작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곤자가 가문은 합스부르크가문과 동맹을 맺길 원했는데 특히 굴리엘모의 어머니가 상속녀였던 몬테라토 후작령을 곤자가 가문의 것으로 하는데 합스부르크가의 원조가 필요했던것이죠.

결국 1561년 26살의 엘레오노르는 만토바 공작인 굴리엘모1세와 결혼합니다. 굴리엘모는 엘레오노르보다 네살이 어렸습니다. 이 때문에 결혼식때 엘레오노르가 너무 나이들어보인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만토바와 몬테라토의 공작

굴리엘모 곤자가

 

비록 정략결혼이었고 남편도 네살이나 어렸고, 굴리엘모는 평생 척추 측만증으로 고생했지만, 둘의 결혼은 행복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이 결혼 덕분에 굴리엘모는 몬테라토를  손에 넣었고 신성로마제국에 의해서 몬테라토는 "공작령"이 되기까지 합니다.

 

둘의 막내아이인 안나 카타리나는 후에 외삼촌이자 오스트리아의 대공이었던 페르디난트와 결혼했는데 그녀의 외삼촌이었던 페르디난트는 원래 귀천상혼했었다가 후계자를 얻기 위해 조카와 결혼했었습니다. 하지만 남성후계자는 태어나지 않았고, 대신 딸인 안나가 마티아스 황제의 황후가 되었죠.

이 안나 카타리나는 어린시절 무척이나 아파서 거의 죽을뻔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계속 아팠는데 엘레오노르와 굴리엘모는 성모 마리아에게 아이가 살아난다면 성모마리아의 자녀로 살게 하겠다고 맹세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아이는 씻은듯이 나았고, 이후 엘레오노르와 굴리엘모는 안나 카타리나에게 성모를 공경하도록 가르쳤습니다. (안나는 원래 수녀로 살고 싶어했지만 부모의 뜻에 따라 외삼촌과 결혼했다고 합니다.)

 

 

 

두딸과 함께 있는 안나 카타리나

 

엘레오노르는 남편이 죽은뒤 7년후에 사망했는데 엘레오노르가 사망할 당시 남아있던 형제 자매는 오빠이자 사위였던(이 무슨 꼬인 족보..ㅠ.ㅠ) 페르디난트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페르디난트 역시 엘레오노르가 죽은 다음해에 사망합니다.

 

 

엘레오노르

만토바 공작부인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