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룩셈부르크 대공가문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져있는 편은 아닐겁니다. 대공비가 평민출신이라 시집살이가 좀 심했다는것이 유명할까요..--;;사실 우리나라는 메이저 왕가(주로 영국쪽)이 유명하죠.
(사실 스웨덴에도 국왕이 있어요? 라는 이야기를 들은적도 있습니다.--;;)
어쨌든 저도 사실 룩셈부르크 대공가는 잘 모르는데 어떨결에 나사우 공작가문은 좀 안답니다.
왜냐구요.--;;스웨덴의 소피아 왕비(오스카르2세의 왕비)가 이 나사우 가문 출신이거든요. 아돌프 대공의 여동생입니다. 그래서 한동안 이집안 가계도를 열심히 팠었습니다.
[룩셈부르크의 기욤 결혼 특집]룩셈부르크 대공가...(2) 대공 아돌프
Adolphe I,
Grand Duke of Luxembourg
(Adolf Wilhelm August Karl Friedrich)
(24 July 1817 – 17 November 1905)
나사우 공작가문에서 첫번째로 대공이 된 인물은 아돌프였습니다. 그는 나사우 공작이었던 빌헬름의 아들이었습니다. 아돌프의 형제 자매들은 유럽의 여러 왕가와 통혼을 했고 이때문에 많은 유럽의 왕가가 아돌프와 친척관계가 됩니다.
아돌프의 누나인 테레제는 올덴부르크공작 페테르와 결혼합니다. 그의 어머니는 파벨 1세의 딸이었던 예카테리나 파브로브나였고 이때문에 테레제의 후손들은 러시아 황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니콜라샤"라는 애칭으로 불렸었으며 1차대전 당시 러시아 군 총 사령관이었던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 대공은 테레제의 외손자였죠. 여동생인 마리는 비트공과 결혼했는데 마리의 딸인 엘리자베트는 후에 루마니아의 카롤 1세와 결혼해서 루마니아의 왕비가 됩니다.("카르멘 실바"라는 필명으로 유명했었다고 합니다. 참고로 조카며느리인 에든버러의 마리를 힘들게했었다고 하죠.)
아돌프의 친누나 테레제와 친여동생 마리
올덴부르크 공작부인이 되는 테레제의 자녀들은 러시아 황실과 연결이 되는데 큰딸인 알렉산드라는 니콜라이 1세의 아들과 결혼했었습니다. 또 손자는 알렉산드르 3세의 딸인 올가 여대공이랑 결혼했었죠.
마리는 비트 공비가 되는데, 마리의 딸인 엘리자베트는 루마니아의 카롤 1세의 부인으로 "카르멘 실바:라는 필명으로 더 유명했던 엘리사베트 왕비였습니다.
이복 여동생인 헬레네는 발덱-피르몬트 공인 게오르그 빅토르와 결혼했습니다. 헬레네의 딸들은 유럽의 대가문으로 시집갔는데 헬레네의 딸인 엠마는 네덜란드의 빌렘 3세와 결혼해서 빌헬미나 여왕의 어머니가 되죠.또 다른 딸인 헬레나는 빅토리아 여왕의 아들인 알바니 공작 레오폴드와 결혼해서 알바니 공작부인이 됩니다.
이복 남동생인 니콜라우스는 귀천상혼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결혼한 여성도 굉장히 유명한 여성이었죠. 그는 러시아의 대문호인 푸슈킨의 딸인 나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푸슈키나와 결혼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인 나탈리야는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었고, 이런 어머니의 미모를 물려받은 나탈리야 역시 당대 최고의 미녀로 알려지게 됩니다. 니콜라우스와 결혼한 나탈리야는 "메렌베르크 백작부인"이라는 칭호를 받게 됩니다. 이 메렌베르크의 아이들중 큰딸인 조피 폰 메렌베르크는 러시아의 대공과 결혼하게 되는는데 이 자녀들 역시 꽤나 유명한 가문 사람들과 결혼했습니다. 메렌베르크 가문의 아들인 게오르그 니콜라우스는 알렉산드르 2세의 귀천상혼으로 태어난 딸인 올가 알렉산드로브나 유리예프스카야 공녀와 결혼하기도 습했습니다.
그리고 막내 동생인 소피아는 스웨덴의 오스카르 2세와 결혼해서 스웨덴 왕비가 됩니다. 현 스웨덴.벨기에,노르웨이,덴마크 왕가는 소피아의 후손이기도 합니다.
아돌프의 이복동생들
헬레네,니콜라우스,소피아
헬레네는 발덱-피르몬트 공비로 그녀의 딸들은 뷔르템베르크 왕위계승자의 부인,네덜란드 왕비,영국의 알바니 공작부인 등이 됩니다. 이때문에 유럽의 여러 왕가와도 연결이 됩니다.
니콜라우스는 푸슈킨의 딸과 귀천상혼했는데 그의 딸은 러시아 대공과 결혼하게 되죠. (이 가문은 결국 메렌베르크->데 토르비 가문 으로 연결되는 귀천상혼하는 가문이 됩니다. )
소피아는 스웨덴의 왕비가 되죠. 그녀의 손녀들은 덴마크 왕자비,노르웨이 왕태자비,벨기에 왕비가 됩니다.
아돌프는 1844년 상트페테스부르크에서 니콜라이 1세의 조카인 옐리자베타 미하일로브나 여대공과 결혼합니다. 아돌프의 새어머니가 여대공의 이모였는데 이때문에 아돌프는 상트페테스부르크에서 옐리자베타 여대공과 만날 기회가 있었죠. 둘은 만나서 사랑에 빠졌고 열일곱살의 여대공은 스물여섯살의 나사우 공작과 결혼했죠. 둘의 결혼생활은 매우 행복했었습니다. 그리고 옐리자베타가 임신했다는것이 알려지게 되자 행복은 절정에 다다릅니다. 하지만 옐리자베타는 아이를 낳다가 사망했고, 태어난 딸 역시 오래 살지 못했습니다. 아돌프는 아내를 잃고 크게 슬퍼했으며 자신의 거주지가 잘보이는곳에 죽은 아내를 기념하기 위해 러시아 정교회 교회를 세웠습니다.
러시아의 옐리자베타 미하일로브나 여대공
파벨 1세의 손녀, 니콜라이1세의 조카, 미하일 파블로비치 대공의 큰딸
18살에 첫아이를 낳다가 사망합니다.
첫아내가 죽은지 7년후에 그는 안할트-데사우의 아델라이드 마리 공녀와 결혼합니다. 아델라이드-마리는 결혼할때 열여덟살이었고 아돌프는 서른네살이었죠. 둘사이에서는 다섯명의 아이가 태어납니다만 성인으로 성장한 아이는 두명밖에 없었습니다. 장남인 기욤과 막내인 힐다로 힐다는 후에 바덴의 대공과 결혼했었습니다. (힐다의 시누이인 바덴의 빅토리아는 아돌프의 조카인 스웨덴의 구스타프 5세와 결혼했었습니다.)
안할트 데사우의 아델라이드 마리
룩셈부르크의 대공비
아돌프의 두번째부인
독일이 통일하던 당시 아돌프는 프로이센이 아니라 오스트리아 제국을 지지했습니다. 이때문에 오스트리아-프로이센전쟁이 끝난후, 나사우는 프로이센왕국에 편입당하고 1866년 그는 나사우 공작 지위를 잃게 됩니다. 그후 1890년 네덜란드의 빌렘 3세가 사망하고, 빌헬미나가 여왕으로 즉위하게 되자 그는 나사우 가문의 협약에 따라 룩셈부르크 대공이 됩니다. (빌헬미나 여왕의 어머니인 엠마 왕비는 아돌프의 조카였죠.)
대공이 되기전 아돌프
대공이 된후 그는 자유주의가 강했던 룩셈부르크 정치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으며, 이후 1902년에는 아들에게 거의 전권을 위임하고 주로 예술작품등을 모으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노년의 대공
자료출처
위키 미디어(독일어,네덜란드 어 + 구글 번역 포함)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역사이야기 > 베네룩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룩셈부르크의 기욤 결혼 특집] 룩셈부르크 대공가...(6) 조제핀-샤를로트 대공비 (0) | 2012.10.22 |
---|---|
[룩셈부르크의 기욤 결혼 특집] 룩셈부르크 대공가...(5) 여대공 샤를로트 (0) | 2012.10.19 |
[룩셈부르크의 기욤 결혼 특집] 룩셈부르크 대공가...(4) 여대공 마리-아델라이드 (0) | 2012.10.18 |
[룩셈부르크의 기욤 결혼 특집]룩셈부르크 대공가...(3) 대공 기욤 4세 (0) | 2012.10.17 |
[룩셈부르크의 기욤 결혼 특집] 룩셈부르크 대공가 (1) : 전반적 내용 (0) | 2012.1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