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스웨덴

스웨덴의 공주들...(13)카타리나 : 칼 9세의 딸

엘아라 2012. 4. 10.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바사가입니다.

원래 지금 해야될 사람은 그 유명한 크리스티나 여왕이죠.

구스타프 2세 아돌프의 딸인 그녀는 스웨덴의 여왕이자 당대에 엄청난 스캔들 메이커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여왕 전기를 읽다가 중단했는데 여러 전기를 읽다가 크리스티나에 대해서 쓰고 있는데 엄청 분량이 많더라는...게다가 제가 몇번 쓴것도 있고 또 여왕이야기를 따로 쓰고 있어서 여기서는 넣어야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다가 나중에 쓰기로 했습니다.-0-;;;;;


했던 사람 또하고 또하더니 왜 이번은 다르냐구요..

ㅎㅎㅎ 크리스티나 여왕을 제가 좀 좋아합니다.-0-;;;;


어쨌든 그래서 이번에 할사람은 크리스티나 여왕의 고모인 카타리나부터 할까합니다.

그녀는 굉장히 현명하고 의지가 강한 인물로 동생인 구스타프 2세 아돌프가 무척이나 신뢰했던 누나였으며 구스타프 2세 아돌프의 딸인 크리스티나를 어릴때 돌봤었던 사람이죠. 카타리나의 아들인 팔츠-츠바이브뤽켄의 카를 구스타프는 후에 크리스티나 여왕의 뒤를 이어 스웨덴의 국왕이 되기도하죠.


스웨덴의 공주들...(13)카타리나 : 칼 9세의 딸





스웨덴의 카타리나 

Catherine of Sweden 

(Swedish: Katarina av Sverige

(10 November 1584 – 13 December 1638) 


스웨덴의 카타리나는 스웨덴의 국왕인 칼 9세와 그의 첫번째 부인인 팔츠-지메른의 마리아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카타리나의 아버지는 마리아와 결혼했을때 아직 국왕이 아니었으며 왕위계승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쇠데르만란드 공작이었으며, 그에게는 형들과 조카들이 있었죠. 하지만 불안정했든 스웨덴 정치 상황에서 그는 외국 왕족과 결혼하기로 했고 찾은 신부감이 팔츠-지메른의 마리아였습니다. 그는 마리아를 보러 지메른으로 간후 결혼을 결정했는데 이때문인지 정략결혼이었음에도 둘은 매우 행복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칼은 성격이 매우 엄격하고 강한 인물이었지만, 마리아는 매우 현명하고 부드러운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칼이 과하게 화를 낼때면 마리아가 나서서 그를 말리고는 했죠. 

카타리나는 칼과 마리아의 여섯명의 자녀중 네번째 자녀였습니다만 카타리나를 제외한 다른 아이들은 모두 어린시절 사망합니다. 그리고 카타리나가 다섯살 무렵 어머니 마리아가 사망하죠.



카타리나의 부모

스웨덴의 칼 9세와 그의 첫번째 부인인 팔츠-지메른의 마리아


 카타리나가 8살 무렵인 1592년 카타리나의 아버지 칼은 홀슈타인-고토로프의 크리스티나와 재혼합니다. 카타리나는 열한살정도밖에 차이 안나는 새어머니와 무척이나 잘 지냈으며 새어머니가 낳은 동생들과도 매우 잘 지냈습니다. 특히 남동생이자 후에 스웨덴의 국왕이 되는 구스타프 2세 아돌프는 카타리나를 매우 좋아했다고 합니다. 



카타리나의 새어머니 홀슈타인-고토로프의 크리스티나

크리스티나는 카타리나의 어머니인 마리아와 사촌관계입니다. 이때문에 마리아와 크리스티나는 외모가 매우 닮았습니다. 하지만 성격은 전혀 달랐는데 마리아가 부드러운 성격이었다면 크리스티나는 강한 성격으로 후에 남편이 죽고 미성년 아들인 구스타프 2세 아돌프의 섭정이 되었을때도 아들을 강하게 이끌어주는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1607년 카타리나의 아버지인 칼이 스웨덴의 국왕이 됩니다만 곧 덴마크와의 전쟁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1611년 전쟁와중에 칼9세가 사망합니다. 그리고 미성년인 동생 구스타프 2세 아돌프와 국왕이 되죠. 카타리나는 매우 현명했으며 정치적 감각도 있었기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던 구스타프 2세 아돌프에게 큰 힘이 됩니다. 그녀는 가끔씩 동생에게 충고와 위로를 했으며 구스타프 2세 아돌프는 이런 누나의 행동에 큰 힘을 얻기도 했었습니다.



카타리나의 남동생

구스타프 2세 아돌프


1615년 카타리나는 팔츠-츠바이브뤽켄의 요한 카시미르와 결혼합니다. 그녀는 결혼후 바로 독일로 가지 않고 잠시 스웨덴에서 살았는데 아마도 카타리나를 좋아했었던 동생 구스타프 2세 아돌프와 새어머니인 크리스티나가 원해서였을듯합니다.

1617년 남편과 함께 독일영지로 가지만 1622년 30년전쟁이 터지자 구스타프 2세 아돌프는 누나를 걱정해서 가족과 함께 스웨덴으로 옮겨와서 살길 원했고 카타리나의 가족들은 이를 승락하죠. 카타리나는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외스테르예틀란드에 있는 스테게보리 성에서 살게 됩니다. 이때 카타리나는 "스테게보리 여백작"칭호를 얻게 되죠.



카타리나의 남편

팔츠-츠바이브뤽켄의 요한 카시미르

팔츠-츠비아브뤽켄 가문은 "비텔스바흐"가문의 분가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그는 아내와 함께 스웨덴에서 주로 살았습니다.


구스타프 2세 아돌프는 독일로 출정하면서 자신의 외동딸이자 후계자인 크리스티나의 양육을 이 누나인 카타리나에게 맡깁니다. 아내인 마리아 엘레오노라는 우울증으로 인해 딸을 양육할수 없었기에 가장 신뢰하는 누나인 카타리나에게 아이를 맡긴것이죠. 

그리고 구스타프 2세 아돌프가 전사한 후에도 섭정단역시 카타리나가 여왕을 양육하는것을 승인합니다. 그리고 카타리나는 사망할때까지 크리스티나 여왕의 양어머니 역할을 합니다. 후에 크리스티나 여왕은 고모와 살았던 어린시절에 대해 매우 행복했었다고 회상합니다.



카타리나의 조카인 크리스티나 여왕

크리스티나는 아버지가 독일로 가면서 고모에게 보내졌지만 아버지가 전사하자마자 다시 어머니손에 이끌려서 어머니 곁에서 2년간 지냅니다. 그동안 그녀는 어머니의 나약함과 우울함을 싫어했으며 섭정단들이 카타리나가 고모에게 돌아가도록 결정했을때 무척 행복해했습니다.



카타리나와 요한 카시미르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중 성인으로 성장한 아이들은 모두 다섯명이었습니다. 첫째인 크리스티나 마그달레나는 바덴의 마르크그라프와 결혼했고 그녀의 증손자인 아돌프 프레드릭은 스웨덴의 국왕이 되죠. 둘째인 칼 구스타프는 사촌인 크리스티나 여왕의 뒤를 이어 스웨덴의 칼 10세 구스타프가 됩니다. 셋째인 엘레오노라 유프로시네는 스웨덴의 귀족인 마그누스 가브리엘 드 라 가르디와 결혼합니다. 그는 스웨덴의 뛰어난 장군중 하나였던 야곱 드 라 가르디와 한때 구스타프 2세 아돌프가 사랑했었던 여성인 에바 브라헤의 아들이었죠. 넷째인 엘레오노라 카타리나는 헤센-에슈베게의 란트그라프와 결혼합니다. 그녀의 딸인 헤센-에슈베게의 율리아나는 스웨덴 궁정에 스캔들 메이커가 되기도 합니다. 막내인 아돌프 요한은 팔츠-키르부르크 백작이자 형이 국왕이 된후에는 스테게보리 공작이 됩니다. 그는 브라헤 가문의 딸들과 결혼했습니다.



카타리나의 아들 칼 10세 구스타프

어린시절 크리스티나 여왕과 함께 자란 그는 크리스티나가 좋아한 친척중 한명이었습니다.

스웨덴 내에서는 여왕이 그와 결혼하길 원했지만 여왕은 여왕자릴 버릴려고 계획하고 실행에 옮깁니다.

그녀는 이 계획을 실행하기전 자신이 가장 좋아한 사촌인 칼 구스타프를 왕위계승자로 만들었고 왕위를 물려준 후에는 그에게 덴마크를 견제하기 위해 "홀슈타인-고토로프"가문에서 신부를 맞으라고 충고하기도 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