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스웨덴

스웨덴의 공주들...(14) 마리아 엘리자벳 : 칼 9세의 딸

엘아라 2012. 4. 17.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칼 9세의 딸이 두명인걸 깜빡했습니다.-0-;;;;

마리아 엘리자벳은 구스타프 2세 아돌프의 여동생이었는데 훗날 악명이 좀 높습니다.

마녀사냥에 적극적이었다고 하더라구요.-0-;;;;;


..구스타프 2세 아돌프도 참 아내도 우울증....동생도 상태가 안 좋고..-0-;;;


스웨덴의 공주들...(14) 마리아 엘리자벳 : 칼 9세의 딸





스웨덴의 마리아 엘리자벳

외스테르예틀란드 공작부인

Princess Maria Elizabeth of Sweden

(March 10, 1596 – August 7, 1618)



마리아 엘리자벳은 스웨덴의 칼 9세와 그의 두번째 부인인 홀슈타인-고토로프의 크리스티나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어린시절 오빠인 구스타프 2세 아돌프와 사촌인 핀란드 공작이자 후에 외스테르예틀란드 공작인 요한과 함께 성장합니다.

마리아 엘리자벳은 어린시절부터 이미 "정신적 문제"가 있었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녀는 자주 경련이나 충동적인 행동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칼 9세와 크리스티나는 마리아 엘리자벳의 문제를 감추기에 급급했으며 부모는 아이의 모든것을 받아주게 됩니다. 이때문에 마리아 엘리자벳은 응석받이에 버릇없는 사람으로 성장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매우 교육을 잘 받았고 문학에 관심이 많았는데 10살때 자신의 주변사람들과 라틴어로 편지를 주고받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마리아 엘리자벳의 부모

스웨덴의 칼9세와 크리스티나 왕비


1610년 마리아 엘리자벳은 어린시절 함께 자랐던 사촌인 외스테르예틀란드 공작 요한과 약혼합니다. 당시 스웨덴의 정치적 상황은 복잡했는데 요한은 칼 9세의 형인 요한3세와 그의 두번째 부인인 구닐라 비엘케의 아들이었습니다. 칼 9세는 가톨릭이었던 조카 시기스문드(폴란드의 지그문트3세)를 몰아내고 스웨덴의 국왕이 되었는데 사실 왕위계승권은 칼9세보다 요한이 우선이었죠. 하지만 요한은 왕위에 관심이 없는 인물이었고 숙부가 왕위에 오르자 그를 국왕으로 인정했고 신하로써 맹세를 했습니다. 

이런 요한이 외국 공주와 결혼할경우 그 외국 공주의 영향력으로 요한이 스웨덴의 왕위계승을 요구하게 될지도 몰랐기에 칼9세는 자신의 딸을 조카에게 시집보내기로 한것이었습니다. 


1612년 열여섯살의 마리아 엘리자벳은 일곱살 많은 사촌인 외스테르예틀란드 공작 요한과 결혼해서 오스테르예틀란드 공작부인이 됩니다. 그리고 외스테르예틀란드에 있는 요한의 화려한 궁정에서 살게 되죠. 하지만 마리아 엘리자벳과 요한의 결혼생활을 매우 불행했는데 마리아 엘리자벳은 자신을 요한과 결혼시킨 어머니를 마구 비난했습니다. 그리고 1614년에는 정신적 문제가 다시 발병했고 이때 말을 못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구스타프 2세 아돌프는 자신의 주치의를 자주 동생에게 보냈다고 전해집니다.



스웨덴의 요한 

요한3세의 아들이자 시기스문드의 이복동생

그는 야심없는 인물로 숙부가 왕위에 오르자 그에게 충성을 맹세했으며 다섯살 어린 사촌인 구스타프 2세 아돌프가 왕위에 올랐을때도 숙부에게 했던것과 같이 똑같은 맹세를 했습니다.

그는 숙모인 크리스티나 왕비와 함께 똑같이 섭정의 권한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외스테르예틀란드에서 요한은 공작으로 외스테르예틀란드를 통치했는데 그는 그곳에서 스웨덴의 법률과는 별도로 자신의 법률로 통치합니다. 이때 마리아 엘리자벳은 마녀사냥에 열을 올리게 되었고 요한은 이런 아내의 영향을 받은 법률을 만들게 되죠. 마리아 엘리자벳이 외스테르예틀란드에서 거주했던 1612년에서 1618년까지 여성들이 마녀라는 죄목으로 처형됩니다. 이 문제는 후대에까지 영향력을 미치게 되는데 1680년대에도 스웨덴에서 이에 대해 언급될 정도였습니다.


1618년 마리아 엘리자벳의 남편인 요한이 사망했고, 마리아 엘리자벳은 과부로 궁정에서 은퇴하죠. 그리고 남편이 죽은 다섯달 후에 마리아 엘리자벳 역시 사망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