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스웨덴

스웨덴의 공주들...(11)헤드비그 소피아 : 칼 11세의 딸

엘아라 2012. 3. 27.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홀슈타인-고토포르 가문 공주들 다하고 팔츠-츠바이브뤽켄 가문으로 왔습니다.

팔츠-츠바이브뤽켄 가문이 스웨덴 왕위를 얻게 된것은 칼 10세 구스타프때였는데 칼 10세 구스타프의 어머니인 카타리나는 구스타프 2세 아돌프의 누나였고 이때문에 크리스티나 여왕을 제외하고 가장 가까운 왕위계승 후보중 한명이었습니다. 그후 크리스티나 여왕이 퇴위하면서 사촌에게 왕위를 물려줬죠.

 

팔츠-츠바이브뤽켄 가문은 "비텔스바흐"가문으로 팔츠 선제후가문의 방계가문입니다. 비텔스바흐 가문은 크게 바이에른 공작(후에 선제후)와 팔츠 선제후 가문 두개의 가문으로 나뉘어져있었고 팔츠 선제후가문은 좀더 작은 방계가문들로 다시 나뉘어져있었는데 여기에 팔츠 츠바이브뤽켄 가문이 있었죠.  훗날 바이에른의 국왕이 되는 막시밀리안 1세 요제프는 팔츠 가문 전체 영지와 바이에른 가문의 전체 영지를 상속받는 후계자가 되어서 바이에른 왕국을 세우게 되죠.

 

사실 이 팔츠-츠바이브뤽켄 가문의 공주들도 별로 없습니다.

칼 10세 구스타프는 외동아들인 칼 11세 뿐이었고 칼 11세에게는 두명의 공주가 있었죠. 그중 한명은 후에 스웨덴의 여왕이 됩니다. 그리고 칼 12세는 미혼으로 죽었죠. 결국 이 가문도 공주가 딸랑 둘이라는..-0-;;;;

 

스웨덴의 공주들...(11)헤드비그 소피아 : 칼 11세의 딸

 

 

 

스웨덴의 헤드비그 소피아

홀슈타인-고토로프 공작부인

스웨덴의 추정왕위 계승자

Princess Hedvig Sophia Augusta of Sweden

(26 June 1681 – 22 December 1708)

 

 헤드비그 소피아 아우구스타는 스웨덴의 칼 11세와 그의 부인인 덴마크의 울리카 엘레오노라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세례명은 헤드비그 소피아 아우구스타이며 첫번째 이름이 헤드비그이지만 많은 기록에서는 그냥 소피아라고 부르고 있다고 합니다. 소피아의 아버지 칼 11세는 칼 10세 구스타프의 외동아들이었는데 어려서 아버지가 죽었기에 어머니가 섭정으로 있었습니다. 칼 11세의 어머니인 헤드비그 엘레오노라는 홀슈타인-고토로프 출신으로 매우 강한 성격에 섭정으로써 스웨덴 정치에 강하게 개입했던 인물입니다. 그녀는 홀슈타인-고토로프가 덴마크에서 독립하길 원했고 이때문에 덴마크 공주를 며느리로 맞는것을 상당히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덴마크의 울리카 엘레오노라는 덴마크의 프레데릭 3세와 그의 부인인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의 소피아 아말리아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울리카 엘레오노라와 칼 11세의 결혼은 정략결혼이었는데 당시 사이가 좋지 않았던 덴마크와 스웨덴 사이의 평화 협정의 일환이었죠. 약혼기간중 스웨덴과 덴마크가 전쟁을 했기 때문에 둘의 약혼은 거의 깨진것이나 다름없었지만, 울리카 엘레오노라는 다른 혼담을 거부하고 자신의 보석들을 저당잡혀서 스웨덴 포로들을 돕기 위해쓰기도 했었는데 거기에는 자신의 약혼반지도 있었습니다.

소피아의 부모

칼 11세와 울리카 엘레오노라

 

열두살때 어머니 울리카 엘레오노라가 죽은뒤 소피아는 형제 자매들과 함께 할머니인 헤드비그 엘레오노라의 손에 키워집니다. 이때문에 소피아는 외가가 덴마크 왕실이었음에도 할머니의 강한 반-덴마크 정서를 물려받게 됩니다.

 

어린시절의 소피아

 

1698년 소피아가 열일곱살이 채 안됐을때 그녀는 자신보다 10살 연상인 홀슈타인-고토로프의 공작인 프리드리히 4세와 결혼합니다. 이 결혼은 정략결혼으로 전통적으로 스웨덴은 덴마크를 견제하기 위해 덴마크와 마찰을 빚고 있는 홀슈타인-고토로프 가문과 혼인관계를 유지해왔었죠. 사실 이 결혼 전에 소피아의 동생인 칼 12세와  프리드리히 4세의 누이와의 혼담이 오갓습니다만 칼 12세가 혼담을 거부했었습니다.

소피아와 프리드리히는 친척관계였습니다. 프리드리히의 어머니와 소피아의 어머니는 덴마크 공주들로 자매간이었죠. 또 소피아의 할머니는 프리드리히의 아버지의 고모이기도 했습니다.

이 결혼은 소피아가 원치 않던 결혼이었고 결국 소피아는 남편과 행복하지 못합니다. 그녀는 스웨덴에 있는 것을 더 좋아했으며 스웨덴 정치에 강하게 개입하게 됩니다. 특히 동생이 즉위한후 미혼으로 계속 지내자 스웨덴의 추정왕위계승자로 스웨덴에 더 자주 머물게 되었죠.

 

소피아의 남편

홀슈타인-고토로프의 프리드리히 4세

그는 처남인 칼 12세와 죽이 잘 맞는 사이였다고 합니다.

 

 

1702년 소피아의 남편인 프리드리히 4세가 사망하자, 소피아는 겨우 두살인 아들 칼 프리드리히의 섭정이 됩니다. 하지만 그녀는 거의 대부분 스웨덴에서 지냈으며 홀슈타인-고토로프의 통치는 남편의 숙부인 크리스티안 아우구스트(후에 그의 아들인 아돌프 프리드리히가 칼 12세의 뒤를 이어 스웨덴 국왕이 됩니다.)에게 맡기게 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결정 사항에서는 꼭 소피아가 관여했다고 합니다.

소피아는 미혼인 동생이 후사 없이 죽을 경우에 대비해서 자신의 아들인 칼 프리드리히를 왕위계승자로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소피아

 

과부로써 소피아에게는 다시 혼담이 들어옵니다. 그 중에는 하노버 선제후의 후계자인 게오르그 아우구스투스(후에 영국의 조지 2세)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소피아는 혼담을 모두 거부하고 젊은 스웨덴 귀족인 울로프 길렌보리와 사랑에 빠집니다. 둘은 함께 살았고 궁정에서는 공식적으로 이를 인정해줬습니다 하지만 소피아의 할머니인 헤드비그 엘레오노라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죠.

 

소피아의 할머니

헤드비그 엘레오노라 왕비

 

소피아는 어린시절부터 매우 아름답고 패션에 관심이 많은 여성으로 알려져있었습니다. 그리고 남동생인 칼 12세와 매우 친했던것으로 알려져있었습니다. 1708년 소피아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칼 12세는 멀리 떠나 있었는데 누나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처음에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소식을 인정했을때 처음으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울음을 터트렸다고 합니다.

 

 

어린시절 남동생인 칼 12세와 함께 있는 소피아

 

소피아의 외동아들인 칼 프리드리히는 외삼촌인 칼 12세가 사망한 후 자신에게 스웨덴의 왕위계승권이 있다고 주장합니다만 이모인 울리카 엘레오노라가 스웨덴의 여왕이 되죠. 그는 이후 러시아와 가깝게 지내면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합니다. 이때문에 1724년 그는 표트르 대제와 그의 황후인 예카테리나 (후에 예카테리나 1세)의 딸인 안나 표트로브나 여대공과 결혼합니다. 그리고 둘의 아들인 페테르는 후에 이모 옐리자베타 여제에 의해서 러시아의 황위계승자로 지명받게 되죠.

표트르3세 이후 러시아를 통치했던 홀슈타인-고토로프-로마노프 가문은 소피아의 후손이기도 합니다.

 

홀슈타인-고토로프 공작 칼 프리드리히와 그의 아내인 러시아의 안나 표트로브나 여대공

소피아의 아들과 며느리

러시아의 표트르 3세의 부모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