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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속의 역사이야기...(5) 도니제티의 마리아 스투아르다와 메리 스튜어트

엘아라 2012. 3. 19.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어째 점점 사람이 맹해지는것이..ㅠ.ㅠ

놀면 이렇게 되는건가요..흑..

 

이번에 이야기할 오페라는 여왕 삼부작중 두번째 작품인 마리아 스투아르다입니다.

사실 제가 메리 스튜어트보다 엘리자베스를 더 좋아하는 관계로 이 오페라 내용이 좀 마음에 안듭니다.ㅎㅎ

 

오페라속의 역사이야기...(5) 도니제티의 마리아 스투아르다와 메리 스튜어트

 

 

 

도니제티

 

도니제티의 마리아 스투아르다는 실러가 쓴 희곡을 기반으로 작곡된 오페라입니다. 이름에서 알수 있듯이 메리 스튜어트와 엘리자베스 1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인물과 역사적 배경은 빌려왔지만 많은 부분이 작가의 상상에 의해 창작된것입니다.

 

도니제티가 이 오페라를 쓰고 나폴리에서 무대 의상 리허설까지 마친 시점에서 상연 금지 처분을 받습니다. 이것은 당시 나폴리를 다스리던 국왕인 페르디난도 2세가 이를 금지 처분했는데 그 이유는 그의 아내인 사보이의 마리아 크리스티나와 연관이 있습니다. 사보이의 마리아 크리스티나의 아버지인 사르데냐의 국왕인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1세는 자코바이츠들이 인정한 영국의 왕위계승자였습니다.(이에 대해서는 저의 앞쪽 포스트인  그림과 사진으로 보는 가게도 : 자코바이트들이 인정하는 영국의 왕위계승자는? http://blog.daum.net/elara1020/8464752 를 참조해주세요) 다시 말해서 스튜어트가문의 직계라고 주장할수 있는 사람이었죠. 이때문에 메리 스튜어트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민감했었습니다.

 

 

마리아 크리스티나 디 사보이아

양 시칠리의 왕비

마리아 크리스티나의 아버지인 비토리오 엠마누엘레1세는 자코바이츠가 주장하는 영국의 정당한 왕위계승자였습니다. 이때문에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스튜어트 가문의 권리를 주장하는 직계가문 출신이었기에 마리아 크리스티나의 남편인 페르디난도 2세가 민감하게 여겼을듯합니다.

 

도니제티는 이에 이 곡을 다른 오페라로 바꾸어서 1834년 무대에 올리지만 성공하지 못합니다. 이후 1835년 밀라노에서 마리아 스투아르다 원곡으로 겨우 무대에 올릴수 있었죠.

도니제티는 이 오페라가 나폴리에서 상연될수 없으리라 여겼고 영국에서 상연하려 합니다만 주연배우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영국에서의 상연계획은 취소됩니다. 이후 이 오페라는 거의 상연되지 않고 잊혀집니다. 그러다가 1960년대 이후 다시 재 조명받기 시작합니다.

 

 

초연때 마리아 스투아르다 역을 맡았던 오페라 가수

마리아 말리브란

그녀는 소프라노와 메조소프라노 두 영역 다 불렀던 가수입니다.

 

이 오페라는 두명의 소프라노(또는 메조 소프라노)에 의한 긴장감으로 유명한 오페라입니다. 두 여성이 서로에 대해서 팽팽한 대립이 볼만한 오페라라고 합니다.(하지만 전 바로크 오페라에 빠져 있는 관계로 그다지 제 취향은 아니라죠.)

 

오페라의 내용은 메리 스튜어트가 잉글랜드에 갇혀있는 상태로 시작합니다.

스코틀랜드의 여왕인 마리아 스투아르다는 잉글랜드의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이런 그녀를 사모하는 레스터 백작( 로버트 더들리)는 그녀를 가엾게 여깁니다. 그리고 엘리자베타 여왕에게 마리아의 자비를 부탁하죠. 레스터 백작을 사랑하는 엘리자베타는 이에 질투심에 휩쌓입니다.

그리고 두 여왕은 만나게 되죠. 둘은 서로에 대한 비방을 서슴치 않고 결국 팽팽한 대립이후 마리아는 죽음에 이르게 되죠. 이때 마리아는 비참한 죄인이 아닌 당당한 여왕으로 죽습니다.

 

1967년 공연

2시간짜리인거 보니 전체인듯 --;;;

 

사실 이 오페라의 내용은 상당부분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멉니다. 이를테면 한때 엘리자베스 여왕은 메리 스튜어트에게 남편감으로 레스터 백작인 로버트 더들리를 천거할 정도였습니다. 물론 메리는 기분나빠하면서 거절했죠. 그리고 메리가 처형될 당시 로버트 더들리나 엘리자베스는 50대 메리는 40대였다는것을 생각하면 비주얼이 안 어울리는 이야기입니다. 결정적으로 엘리자베스가 메리에 대해서 무척이나 관심을 많이 가졌지만 한번도 만난적이 없었습니다.

 

메리 스튜어트는 태어난지 며칠되지 않아서 아버지의 제임스 5세가 사망했기에 요람에 있을때부터 이미 여왕이었습니다. 헨리 8세는 스코틀랜드 왕위를 노려서 메리와 자신의 아들의 결혼을 추진했지만 메리의 어머니인 마리 드 기즈는 프랑스와의 우호를 원했고 딸을 프랑스의 왕태자비로 보냅니다. 다섯살의 메리는 스코틀랜드의 여왕이자 장래 프랑스의 왕비로 프랑스 궁정에서 우아한 삶을 보내게 되죠. 메리의 시어머니가 될 카트린 드 메디시스는 메리를 매우 예뻐했다고 합니다.

 

 

프랑스 궁정에서의 메리 스튜어트

 

한편 메리보다 10살 가량 많았던 엘리자베스는 어린시절 어머니 앤 불린이 처형된후 매우 곤궁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녀는 국왕의 딸로 인정을 받긴했지만 아버지 헨리 8세가 앤 불린과의 결혼을 무효화했기에 평생 "사생아"라는 꼬리가 따라다녔죠. 엘리자베스는 어린시절부터 공부에 열중했고 새어머니인 캐서린 파를 위해 채색성경을 만들어 선물할정도였습니다.

 

 

어린시절의 엘리자베스

엘리자베스는 어린시절 공주가 아닌 레이디 엘리자베스로 불렸습니다.

이것은 그녀의 아버지인 헨리 8세가 앤불린과의 결혼을 무효로 했기 때문이었죠.

 

어린시절 스코틀랜드 여왕이자 프랑스의 왕비로 궁정에서 떠받들려 살았던 메리와 어린시절부터 정치적인 문제로 늘 신변이 위험했던 엘리자베스는 훗날 여왕으로 각각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엘리자베스가 메리에 대해서 경계를 하게된 원인중 하나가 바로 메리의 시아버지인 앙리2세의 탓도 있습니다. 앙리 2세는 엘리자베스가 왕위를 계승한것에 대해서 엘리자베스가 "사생아"이기 때문에 정당한 잉글랜드의 왕위계승권리는 헨리 8세의 누나의 손녀이자 자신의 며느리인 메리 스튜어트에게 있다고 주장했죠. 이때문에 잉글랜드에서는 메리를 경계하게 되는 원인이 됩니다.

 

메리가 잉글랜드로 망명하게 된 원인은 스코틀랜드 국내 발란때문이었습니다. 첫번째 남편인 프랑수아2세가 죽은뒤 메리는 스코틀랜드로 귀국합니다. 그녀는 국내 상황에 익숙하지 않았고 이런것은 귀족 내부의 권력투쟁 양상을 일어나게 합니다. 메리 스튜어트가 선택한 남편인 단리경 헨리 스튜어트는 외할머니가 메리 스튜어트의 친할머니이자 헨리 8세의 누나인 마거릿 튜더였죠. 누가 봐도 둘의 결혼은 잉글랜드 왕위계승을 위한것이었습니다만 메리는 처음에는 단리경과 사랑에 빠졌었습니다. 하지만 결혼후 단리경과의 사이가 벌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단리경이 메리가 총애한 이탈리아인 비서를 눈앞에서 살해한 사건으로 둘사이는 완전히 벌어지게 됩니다. 이때 메리는 임신중이었는데 자신의 사람조차 지킬수 없는 상황에 큰 충격을 받게 되죠.

 

 

두번째 남편인 단리경과 함께 있는 메리 스튜어트

 

아들이 태어난후 메리는 남편과 화해를 시도합니다. 하지만 단리경이 갑작스럽게 죽었고 이 죽음에 여왕이 관계되었다는 이야기가 퍼집니다. 그리고 과부가 된 메리는 보스웰 백작인 제임스 햅번과 갑작스럽게 결혼합니다. 그와의 결혼은 추문과 연결되었는데 보스웰 백작이 여왕을 납치했고 여왕과 결혼했다는것이었죠.

이런 갑작스러운 상황은 보스웰 백작이 단리경을 죽였다는 소문을 부채질했고 보스웰 백작에 대한 귀족들의 반란을 부추기게 됩니다.

 

결국 보스웰은 국외로 도망갔고, 쌍둥이를 임신했던 메리는 아이를 사산한후 왕위를 아들 제임스에게 물려줘야했습니다. 그리고 잉글랜드로 도망갈수 밖에 없었죠.

 

 

메리의 세번째 남편

보스웰 백작 제임스 헵번

 

잉글랜드에서도 메리의 문제는 간단한것이 아니었습니다. 왜냐면 메리의 남편인 단리경은 스코틀랜드 여왕과 결혼했지만 잉글랜드 귀족의 아들로 잉글랜드 여왕의 신하였죠. 이런 단리경의 죽음에 대해 처벌해달라는 청원을 받은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에 대해 매우 난감해합니다. 결국 여왕은 메리를 유폐시킵니다만 이것은 곧 잉글랜드의 반란과 연관됩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한 여러 반란계획이 있었는데 여기에는 메리가 연류된것들이 있었습니다. 메리 스튜어트는 잉글랜드 왕위계승권도 가지고 있었기에 반란 계획의 중심인물로 알려지게 되죠. 결국 이런 반란 계획들 때문에 엘리자베스는 메리를 처형하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엘리자베스 1세

 

오페라에서 메리를 사모한것으로 나온 레스터 백작은 로버트 더들리입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그를 사랑했고 그와 결혼하고 싶어했었습니다. 둘이 처음 만난것은 런던탑에서 였는데 로버트 더들리는 아버지의 반란때문에 갇혀있었고, 엘리자베스는 언니 블러디 메리의 명으로 런던탑에 갇혀있어야했죠.

여왕이 된후 엘리자베스는 로버트 더들리에게 레스터 백작 지위를 줬으며 많은 부와 지위를 부여합니다.하지만 그녀는 로버트 더들리와 결혼할수는 없었죠. 로버트 더들리와 여왕의 연애가 알려질 무렵 로버트 더들리는 이미 아내가 있었던 몸이었는데 그의 아내가 갑작스럽게 죽게 됩니다. 비록 현재에는 그의 아내가 병사했다고 추정하지만 당시에는 "로버트 더들리가 여왕과 결혼하기 위해 아내를 죽였다"라는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이때문에 엘리자베스 여왕은 로버트 더들리와 결혼할수 없을거라는 것을 알아차렸고 결국 여왕은 그와의 결혼을 포기했고 자신의 결혼 역시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하게 되죠.

 

 

로버트 더들리

레스터 백작

 

엘리자베스 여왕은 보스웰과 결혼하려는 메리 스튜어트에게 같은 여왕으로써 결혼하지 말라고 충고를 했습니다. 전 이 충고가 굉장히 진실되게 느껴졌는데 왜냐면 엘리자베스 스스로도 로버트 더들리와의 결혼을 포기했었기 때문이죠.

 

자료출처

1.위키피디어

2.제국의 태양 : 엘리자베스 (앤서머싯/남경태,2005,들녁)

3.불멸의 오페라 (2005,박종호,시공사)

그림출처

위키 피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