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도니제티의 여왕 삼부작을 할 차례군요.
사실 도니제티의 여왕 삼부작중 첫번째 Queen은 여왕이 아니라 왕비죠. 바로 헨리 8세의 두번째 부인인 앤 불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도니제티의 여왕 삼부작중 가장 역사적 사실에 근접한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 아닐까합니다.
앤 불린 이야기는 안꾸미고도 비극이니까 말입니다.--;;;;
오페라속의 역사이야기...(4) 도니제티의 안나 볼레나와 앤 불린
도니제티
도니제티의 오페라 안나 볼레나는 잉글랜드의 국왕인 헨리 8세의 두번째 부인인 앤 불린에 대한 이야기를 오페라로 만든 것입니다. 헨리 8세는 앤 불린과 결혼하기 위해 첫번째 아내였던 아라곤의 캐서린과 이혼하려고 엄청나게 노력했습니다만 무척이나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헨리 8세가 수장령을 반포하면서 잉글랜드는 가톨릭이 아닌 신교국가가 됩니다.
도니제티의 2막짜리 오페라인 안나 볼레나는 이렇게 힘들게 결혼했지만 결국 앤 불린이 헨리 8세에 의해 간통죄로 처형당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앤 불린
이 오페라는 1830년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처음 상영된 이래로, 19세기와 20세기초 매우 인기있는 오페라였습니다. 이후 잠시 인기가 주춤하다가 다시 1950년대 이후 다시 자주 무대에 올려지게 됩니다. 특히 많은 뛰어난 소프라노들이 안나 볼레나 역을 맡기도 했죠.
내용은 앤 불린의 몰락을 다루고 있습니다.
왕비 안나 볼레나는 남편인 엔리코가 자신과 멀어지고 있는데 상심합니다. 국왕은 이미 왕비의 시녀인 조바나와 사랑에 빠진 상태로 안나를 몰아낼 구실을 만들려하고 있었죠.
왕비의 시종은 왕비의 초상화가 든 로케를 몰래 훔치다가 우연히 왕비와 왕비의 첫사랑이 만나는 소리를 듣습니다. 하지만 왕비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죠.그러나 시종은 국왕에게 들키고, 국왕은 이를 구실로 안나와 시종 그리고 그의 첫사랑에게 모두 죄를 뒤집어씌웁니다.
궁정 조신들과 조바나는 국왕에게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부탁하지만, 국왕은 왕비를 처형하기로 마음을 굳힌 상태였습니다. 거의 미쳐버린 상태로 런던탑에 갇힌 안나는 멀리서 국왕이 조바나와 결혼 예포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안나는 처형되기 위해 끌려나가죠.
안나 볼레나 중 안나(소프라노)와 조바나(메조 소프라노)의 듀엣
Sul suo capo aggravi un Dio
안나 볼레나의 중심 인물인 앤 불린은 잉글랜드의 헨리 8세의 두번째 부인이자 엘리자베스 1세의 어머니였습니다. 그녀의 신분상승과 몰락, 비극적 최후는 딸 엘리자베스 1세의 업적과 맞물려서 더욱더 극적효과를 느끼게 되고 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준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앤 불린은 후에 윌트셔와 오르몬드의 백작이 되는 토마스 불린과 노퍽공작의 딸인 레이디 엘리자베스 하워드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앤의 형제 자매들로는 조지 불린과 메리 불린이 있습니다. 정확한 기록이 없기에 혼란스러워하지만 일단 메리 불린이 앤 불린의 언니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토마스 불린은 언어에 재능이 있었으며 이때문에 외교관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리고 헨리 8세의 총애 받는 신하기도 했죠. 그는 자신의 딸을 영향력있는 왕족들의 가솔로 들어가게 했습니다. 앤은 네덜란드에서는 오스트리아의 여대공이자 막시밀리안 1세와 마리 드 부르고뉴의 딸인 마르가레타의 시녀로 일했으며, 후에 헨리 8세의 여동생인 메리 튜더가 프랑스 왕비가 되자 딸을 메리 튜더의 시녀로 일합니다.
앤 불린의 아버지
토마스 불린
루이 12세가 죽고 메리 튜더가 영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앤은 프랑스에 남습니다. 그녀는 프랑수아 1세의 왕비였던 클로드 왕비의 시녀로 일했죠. 이곳에서 앤은 프랑스식 문화와 예법 그리고 막 피어오르던 르네상스의 인문주의를 배우게 됩니다. 아름다운 외모와 뛰어난 학식과 예법은 모두를 사로잡을만한 것들이었습니다. 이런 학식은 훗날 헨리 8세가 앤에게 매료당하는 요인중 하나가 됐을것입니다. 헨리의 할머니인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는 학식을 매우 중요시 여기던 사람이었으며, 헨리 8세의 아버지는 이런 어머니를 존중해줬고 헨리 8세 역시 할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리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젊은 시절의 앤 불린
1521년 앤의 아버지가 잉글랜드로 가면서 앤 역시 영국으로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궁정에서 지내게 됩니다.
이때 헨리 8세는 이미 앤의 언니인 메리 불린과 내연의 관계였습니다. 메리 불린은 프랑스 궁정에서의 스캔들때문에 미리 잉글랜드에 왔었고 이미 결혼한 상태였죠. 그리고 메리의 첫번째 결혼으로 태어난 두 아이들이 헨리의 아이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쟁이 있습니다.
앤은 잉글랜드로 돌아온후 두번의 혼담이 진행됩니다. 첫번째 혼담은 가문의 영지 상속문제때문에 진행된것으로 오르몬드 백작령의 상속때문에 사촌인 제임스 버틀러와의 혼담이 진행되었죠. 하지만 이 혼담은 성사되지 못합니다. 두번째는 노섬벌랜드 백작의 아들인 헨리 퍼시와의 비밀약혼이었습니다. 둘은 사랑에 빠져서 비밀리에 약혼했지만 헨리 퍼시의 아버지는 아들의 비밀 약혼을 용서하지 않았고 파혼시킵니다.
앤의 sister(언니라고 추정됨)
메리 불린
메리 불린의 관점에서 앤을 본 소설이 the other Bolyen girl입니다.
BBC드라마와 미국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천일의 스캔들"이라는 이름으로 나옵니다. 재미난것은 BBC판과 영화판이 좀 다르다죠. 개인적으로는 BBC판을 더 선호합니다.
이후 앤은 국왕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앤은 헨리의 정부가 되는것을 원치 않았죠. 헨리 8세 역시 후계자 문제때문에 고민하고 있었기에 캐서린과 이혼하고 앤과 결혼하기로 결심합니다. 당시 헨리 8세에게는 유일한 자녀일 딸 메리 밖에 없었습니다. 헨리는 후계자가 될 아들을 원했지만, 자신보다 여섯살이나 더 많았던 캐서린에게 후계자를 얻을 기회는 더이상없었죠. 그는 결국 아들을 낳아줄 새 왕비를 원하게 됩니다. 그녀가 바로 앤이었죠. 하지만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카를 5세는 이모가 이혼당하는것을 원치 않았기에 이혼이 허락될 일이 만무했죠. 헨리는 레위기를 들면서 캐서린과의 결혼 무효를 주장합니다만, 이것도 문제였던것이 이미 헨리와 캐서린이 결혼할때 이 문제에 대해서 교황의 승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형수"였던 캐서린과의 결혼이 문제가 될수 있어서 그 문제를 해결하고 결혼한것이었는데 이제와서 다시 "형수"였다는 사실을 들먹이는것은 문제가 있었죠.
결국 헨리는 캐서린과의 결혼을 무효로 만들고 캐서린을 궁정에서 추방하고 앤과 결혼합니다. 그리고 1533년 앤은 정식으로 왕비로 대관까지 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헨리가 정당한 왕비를 버리고 "창녀"와 결혼했다고 여기게 되죠.
후대에 그려진 앤과 헨리 8세의 그림
둘이 사냥하고 있는 이 그림의 의미는 "앤이 국왕을 사냥했다"라는 의미라고 하더군요.-0-;;
아들을 바래서 앤과 결혼했지만 앤이 딸 엘리자베트만을 낳고 계속 아이를 사산하자 헨리는 무척이나 걱정을 하기 시작합니다. 1536년 1월 캐서린이 죽자 더이상 둘의 결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만한 사람이 없게 됩니다. 하지만 헨리는 앤이 아이들을 사산하는것에 대해 앤이 자신에게 아들을 낳아줄수 없을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앤의 시녀였던 제인 시무어가 헨리의 새로운 정부가 되면서 헨리는 앤에 대해 점점 거리를 두게 됩니다.
제인 시무어
제인 시무어는 앤이 아니라 캐서린 왕비의 시녀였으며 늘 캐서린을 존경했습니다.
이때문에 앤에 대해서 그다지 좋은 감정은 아니었던듯합니다. 제인은 캐서린의 딸인 메리가 적자로 인정받게 하기위해 무척 노력했었습니다. (헨리 8세가 캐서린과의 결혼을 무효로 선언하는 바람에 메리는 국왕의 딸로 인정받았지만 Princess가 아닌 Lady로 불렸고, 이것은 메리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주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1536년 4월 앤은 간통혐의로 체포되어 런던탑으로 갑니다. 앤이 자신의 형제인 조지 불린을 비롯해 다양한 남자들과 간통했다는 혐의였죠. 그리고 5월에는 앤과 헨리의 결혼이 무효로 선포되고, 앤이 간통했다는 남자들이 모두 처형당합니다. 그리고 1536년 5월 19일 앤 역시 목이 잘립니다. 그리고 앤이 죽은 직후 헨리 8세는 제인 시무어와 재혼합니다.
모든일의 원흉인 헨리 8세
...앤과 결혼했을때쯤..
사실 드라마 "튜더스"보고 여러가지 좌절이었는데 그중 하나가 헨리 8세가 너무 잘생긴것이 좌절이었다죠.
비록 헨리 8세가 젊은 시절에는 꽃미남이긴했지만 앤과 결혼할 무렵에는 이미 중년 아저씨 삘이 났는데 말입니다.ㅎㅎㅎ
앤의 죽음은 아마도 아라곤의 캐서린과 헨리가 헤어질때 순탄하게 헤어지지 않았으며,캐서린이 끝까지 자신이 잉글랜드의 왕비라고 주장한것과 무관하지 않을듯합니다. 이런 상황은 앤이 "왕비를 쫓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탐욕스러운 여자"로 비춰졌을것이며, 앤의 등장으로 앤의 가족들이 고위직에 오른것 역시 많은 궁정조신들의 질시를 받을만한 일이었기도 하죠. 이런 복합적 문제가 결국 앤을 죽음에 이르게한것이 아닐까 생각된답니다.
앤 불린
앤의 이미지는 상당히 "요부"이미지인 경우가 많습니다. 언니 메리가 사랑하는 남자를 뺏앗는 모습으로 비춰지기도 하고, 국왕을 사로잡아 왕비를 쫓아내게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게 하기도 하죠. 하지만 당대에 많은 사람들은 앤이 학식이 뛰어나고 똑똑했으며 아름다웠던 여성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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