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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속에 나타난 역사이야기...(3)베르디의 돈카를로스와 에스파냐의 카를로스(아스투리아 공)

엘아라 2012. 2. 27.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요즘 아직도 바로크 오페라(비발디 만세!!)를 듣느라 후대의 오페라가 익숙치 않습니다.

흑 베르디나 푸치니 오페라들이 왜 그리 낯설까요.

어릴땐 그래도 저기 나오는 아리아들을 무척 사랑했었는데 말입니다.-0-;;;

 

오페라속에 나타난 역사이야기...

(3)베르디의 돈 카를로스와 에스파냐의 카를로스(아스투리아 공)

 

 

 

베르디

 

베르디의 오페라 돈카를로는 스페인의 펠리페 2세의 아들인 돈 카를로스를 주인공으로 하는 오페라입니다. 펠리페 2세는 강력한 군주로 이름을 떨쳤지만 가정사는 그리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네명이나 되는 아내들은 모두 미리 죽었고, 그가 죽을때는 후계자였던 펠리페 3세는 어렸죠

돈 카를로스는 펠리페 2세의 장남으로 아버지가 왕위계승전에 사망합니다. 그는 아버지에 대해서 반란을 일으키려던 세력과 연결되어있었기 때문에 결국 펠리페 2세에 의해 체포되어 감금당한후 사망하죠. 재미난것은 펠리페 2세의 세번째 아내였던 엘리자베트 드 발루아가 처음에는 돈 카를로스의 약혼녀였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기반으로 쉴러가 희곡 "돈 카를로스"를 썼습니다. 이를 베르디가 오페라고 만든것이었죠.

 

 

돈 카를로스

 

그런데 처음에 베르디가 이 오페라를 작곡했을때 오페라가 너무 길었던것이 문제가 됩니다. 오밤중에 끝나는 오페라를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죠. 사실 첫 무대에 올려지기 전에도 이미 너무 길었기 때문에 베르디가 몇몇 아리아들을 삭제했습니다만 그래도 길었습니다.

 

프랑스어로 되어있던 이 오페라는 이탈리아어로 번역되어서 이탈리아에서 상영되기도 여기서도 역시나 여러가지 수정작업을 거칩니다. 결국 1884년 "돈 카를로"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이탈리아어로 번역된 대본으로 오페라가 상영됩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다시 수정을 거치게 되죠.

이 때문에 돈 카를로스는 현재도 다양한 판본으로 공연되고 있다고 합니다.

 

 

1866년판 돈 카를로의 대본

 

이 오페라의 내용은 스페인의 왕위계승자인 카를로스가 우연히 약혼녀인 엘리자베트를 만납니다. 그리고 둘은 사랑에 빠지죠. 하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엘리자베트는 카를로스의 아버지인 필립과 결혼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인이 새어머니가 된 상황을 괴로워하는 카를로스. 그는 여전히 엘리자베트를 사모하고 있었죠.

필립은 아들과 아내 사이를 의심하고 질투합니다.  이 와중에 카를로스에게 반한 에볼리는 왕에게 엘리자베트와 카를로스 사이를 왕에게 이야기합니다. 필립은 질투심이 폭발하지만 아들과 아내를 용서하려합니다.

하지만 플랑드르에서의 반란에 연결된 카를로스는 친구의 죽음으로 흥분하고,결국 카를로스는 할아버지의 무덤으로 끌려들어가고 뒤에는 엘리자베트와 필립이 남는것으로 끝납니다.

 

 

돈 카를로스

(프랑스어판)

 

돈 카를로스는 스페인의 펠리페2세와 그의 첫번째 부인인 포르투갈의 마리아 마누엘라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펠리페 2세와 마리아 마누엘라는 이중으로 사촌간이었는데 펠리페의 어머니인 포르투갈의 이사벨라는 마리아 마누엘라의 고모였으며, 마리아 마누엘라의 고모인 카스티야의 카타리나는 펠리페 2세의 고모이기도 했죠. 게다가 이베리아 반도의 왕가들은 지속적으로 혼인 관계를 유지해왔으며 펠리페의 증조할머니 중 한명 역시 포르투갈 출신이기도 했습니다.

돈 카를로스의 어머니는 돈 카를로스를 낳고 바로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그후 친척인 잉글랜드의 메리 여왕과 결혼합니다. 하지만 왕가의 아이들은 어린시절부터 부모와 떨어져 키워지는것이 관례였기에 부모의 부재가 그에게 큰 영향을 끼쳤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돈 카를로스의 부모

스페인의 펠리페 2세와 포르투갈의 마리아 마누엘라

 

1559년 돈 카를로스는 앙리 2세의 장녀이자 동갑인 엘리자베트 드 발루아와 약혼합니다. 하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곧 돈 카를로스가 아닌 펠리페 2세와 엘리자베트의 혼담이 진행되고 1559년 엘리자베트와 펠리페 2세는 결혼을 하죠. 14살의 아름다운 신부에게 빠진 펠리페 2세는 정부를 버릴정도였는데, 나이차가 많이 났음에도 엘리자베트 역시 남편과 행복했다고 합니다.엘리자베트는 궁정에 있던 비슷한 또래의 세 왕자들 - 돈 카를로스, 돈후안(카를5세의 서자), 파르마 공작(펠리페 2세의 조카)-과 어울려 지냈습니다. 이때문에 그녀는 돈 카를로스와 친한 관계였다고 합니다. 돈 카를로스 역시 다른 사람에게는 몹시 폭력적으로 굴었지만 엘리자베트에게만은 따뜻하게 대했다고 합니다.

 

 

엘리자베트 드 발루아

스페인에서는 아마도 이사벨이라고 불렸을듯합니다.

 

 

1562년 돈 카를로스는 계단에서 떨어져 머리를 크게 다칩니다. 간신히 살아남기는 했지만 그의 행동은 난폭해졌고 걷잡을수 없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는 아버지에게 점점 반발을 하게 되는데 특히 반란을 획책하던 플랑드르 귀족들과 연락을 하기 시작합니다. 1567년 가을 그는 플랑드르로 도망가려 계획했지만, 돈 후안이 이사실을 펠리페 2세에게 고하면서 발각됩니다.

 

1568년 펠리페 2세는 돈 카를로스를 체포해서 가둡니다. 이때 엘리자베트는 돈 카를로스가 체포된것에 며칠이고 울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섯달 후에 돈 카를로스는 사망하죠. 펠리페가 아들을 독살했다는 설이 한때 퍼졌습니다. 이는 스페인에서 독립하려했던 침묵공 빌렘이 강하게 주장했었죠. 하지만 역사학자들은 자연사로 추정합니다.

 

 

돈 카를로스

1564년

 

펠리페 2세는 아내인 엘리자베트를 매우 아꼈는데 엘리자베트가 천연두에 걸렸을때도 아내곁을 떠나지 않고 간호할정도였습니다. 엘리자베트는 1566년 큰딸인 이사벨라 클라라를 낳았고 1567년에는 둘째딸인 카타리나 미카엘라를 낳습니다. 하지만 1568년 아이를 사산하면서 사망합니다.

 

 돈 카를로스가 1568년 여름에 죽었으며 엘리자베트는 1568년 가을에 사망하죠.

아내와 후계자 모두를 잃은 펠리페 2세는 1570년 조카인 오스트리아의안나와 재혼합니다.

 

 

펠리페 2세와 첫번째,세번째부인

그리고 돈 카를로스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Cenotafio_de_Felipe_II_y_su_familia.jpg

 

저기 나오는 에볼리 공비는 아마도 모델이 된 1대 에볼리 공이었던 루이 고메즈 데 실바의 부인인 에볼리 공비 안나일듯합니다. 그녀는 외눈이었지만 매우 활발한 성격에 당시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으로 알려져있었다고 합니다.

남편이 죽은후에도 궁정에 있었던 그녀는 1579년 음모에 연루되어 체포되었고,1592년 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안나 데 멘도사 데 라 크레다

에볼리 공비

루이 고메즈 데 실바의 부인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불멸의 오페라 (2005,박종호,시공사)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