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진짜 이름 읽는거 힘듭니다. ㅠ.ㅠ
도니제티의 오페라는 이탈리아어일테니 이탈리아어로 제목을 읽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다가 그냥 이탈리아어 비슷하게 읽었습니다.-0-;;
로버트 데버루는 잉글랜드 사람이니 그냥 영어식으면 되겠죠-0-;;;;
오페라속의 역사이야기...(6) 도니제티의 로베르토 데베레우스와 에섹스 백작 로버트 데버루
도니제티
1830년대
도니제티의 오페라 로베르토 데베레우스 (Roberto Devereux, ossia Il conte di Essex )는 도니제티의 여왕 삼부작의 마지막으로 알려진 오페라입니다. 이 오페라의 주인공인 로베르토 데베레우스는 2대 에섹스 백작인 로버트 데버루로 그는 엘리자베스 1세때 총신이자 반역죄로 처형된 인물입니다.
로베르토 데베레우스는 1837년 나폴리에서 초연된 이 오페라는 꽤나 성공적이었고 수년간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상연되게 됩니다. 하지만 1882년 이후 한동안 이 오페라는 잊혀져서 거의 상연된적이 없었죠. 그러다가 1964년경 부터 다시 연주되기 시작했죠.
1970년 뉴욕오페라단이 나중에 "여왕 삼부작"이라고 일컬어지게 되는 도니제티의 세 오페라들을 공연하기 시작했고 곧 인기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이런 구성으로 많은 나라에서 오페라가 상연되고 있습니다.
로버트 데버루
2대 에섹스 백작
내용은
노팅험 공작부인인 사라는 로버트 데버루를 사랑했으나 여왕 엘리자베스의 명으로 노섬벌랜드 공작과 결혼했죠. 여왕은 로버트 데버루를 사랑해서 그가 사라와 사귄것에 강한 질투심을 느껴서 다른 남자와 결혼시킨것이었죠. 로버트 데버루는 여왕의 곁에 돌아와서 총애를 얻지만 사라와의 감정을 잊지는 못합니다.
여왕의 신하중 한명인 세실경은 로버트 데버루를 처형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노팅험 공작은 로버트 데버루의 결백을 주장합니다,
여왕은 로버트 데버루에게 연적의 이름을 대면 자유를 주겠다고 하지만 그는 절대 연인의 이름을 발설하지 않고 결국 로버트 데버루는 사형을 언도받게 됩니다.
로버트 데버루가 죽을것을 안 사라는 자신의 연적이라고 자백하려하지만 노팅험 공작은 이를 알고 분노하면서 아내를 가지 못하게 막습니다. 사라가 여왕에게 달려갑니다. 여왕은 뒤늦게 그의 죽음을 막으려 했지만 결국 로버트 데버루는 처형당하고 말죠.
엘리자베스는 로버트 데버루의 죽음에 슬퍼하면서 자신도 함께 죽길 바랍니다. 그리고 후계자로 스코틀랜드의 제임스4세를 지목하면서 끝나죠.
2막에서 노팅험 공작부부의 대화
그는 아내가 로버트 데버루의 연인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복수를 다짐합니다.
엔딩
곡 전체
이 오페라의 내용은 앞의 다른 여왕 삼부작과달리 거의 대부분 허구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여기서는 에섹스 백작이 여왕의 총신이었다는 사실과 로버트 세실이 에섹스 백작을 견제햇다는 것 빼고는 모두 허구로 구성되어있습니다.
로버트 세실
그는 엘리자베스가 신뢰했던 윌리엄 세실의 아들로 아버지의 정치적 후계자였습니다.
2대 에섹스 백작인 로버트 데버루는 1대 에섹스 백작인 월터 데버루와 레티스 노울즈(Lettice Knollys)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레티스 노울즈의 어머니인 캐서린 캐리의 딸이었는데 캐서린 캐리는 엘리자베스 1세의 이모인 메리 불린의 딸로 학자들 사이에서는 캐서린 캐리가 헨리 8세의 딸인지 아닌지에 대해 논란이 좀 있었습니다.
로버트 데버루의 부모
1대 에섹스 백작 월터 데버루와 레티스 노울즈
레티스 노울즈는 엘리자베스 1세와 오촌관계였습니다.
레티스 노울즈는 엘리자베스 1세가 즉위한후 그녀의 시녀가 되었으며 여왕이 총애했던 궁정 신하중 하나인 월터 데버루와 결혼했습니다. 에섹스 백작 사이에서는 세명의 아이가 태어났는데 그중 장남이 로버트 데버루였습니다. 레티스는 매우 아름다운 여성이었으며 여왕과 친척관계였는데 꽤나 오랫동안 여왕의 최고 측근이었던 로버트 더들리와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그녀는 큰아들을 임신 했을때 이미 로버트 더들리와 염문을 뿌리고 다니고 있었으며 이 소문은 오래도록 지속됐습니다. 심지어 그녀의 남편인 월터 데버루가 아일랜드에서 병으로 사망했을때 레스터 백작이 독살했다는 소문마저 돌 정도였습니다.
월터 데버루가 죽은 2년뒤 레티스는 레스터 백작과 재혼합니다. 이 재혼은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큰 충격을 줬는데 여왕은 이 결혼을 절대 인정하지 않았으며 레티스는 다시는 궁정 출입을 할수 없게 됩니다.
로버트 더들리
레스터 백작
엘리자베스 1세는 그를 무척 사랑했는데 정치적인 이유로 그와 결혼할수 없었죠.
여왕은 그를 매우 총애해서 과한 지위(레스터 백작)과 과도한 재산(와인 징세권)을 부여해줬습니다.
그녀는 로버트 더들리와 결혼하지 않았지만 그가 다른 여자와 눈맞는데는 무척이나 질투심을 느꼈다고 합니다. 레티스와의 결혼을 절대 인정안한것은 질투심도 포함되지만 일단 여왕의 허락을 받지 않고 결혼해서 더할듯합니다. (하지만 미리 알렸다고 하더라도 과연 여왕이 로버트 더들리의 결혼을 승인해줬을지는...)
로버트 데버루는 아버지가 죽은뒤 2대 에섹스 백작이 됩니다. 로버트 더들리는 자신의 의붓자녀들을 무척이나 사랑했습니다. 이때문에 레스터 백작이 자신의 의붓딸을 스코틀랜드 왕비로 만들려 한다는 소문까지 돌정도였습니다. 그는 의붓아들을 궁정으로 데려왔는데 로버트 데버루는 곧 엘리자베스 여왕의 총신이 됩니다. 레스터 백작이 죽기 1년전쯤 에섹스 백작은 궁정에서의 의붓아버지의 지위를 이어받을 정도였죠. 그리고 레스터 백작이 죽자 여왕은 레스터 백작을 부유하게 만들었던 와인에 대한 징세권리를 에섹스 백작에게 부여해줍니다.
에섹스 백작
로버트 데버루
하지만 에섹스 백작은 여왕의 총애를 믿고 교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대해 윌리엄 세실의 아들인 로버트 세실은 그를 경계합니다. 여왕은 믿고 따랐던 윌리엄 세실의 아들인 로버트 세실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고 에섹스 백작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합니다. 특히 아일랜드에서의 실패는 에섹스 백작의 지위를 흔들정도였습니다. 그는 여왕이 금지했음에도 멋대로 아일랜드에서 돌아와버려서 여왕의 진노를 사게 됩니다. 여왕은 그를 용서하긴 했지만 와인 징세권리를 연장해주지 않게 되죠.
이렇게 되자 에섹스 백작은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반란을 도모합니다. 하지만 런던 시민들은 에섹스 백작에 호응하지 않았고 결국 그는 체포되어서 처형됩니다.
로버트 데버루
엘리자베스 여왕은 살아 생전 절대 후계자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왕이 죽을때쯤 많은 이들이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가 왕위계승자가 될거라고 여겼습니다. 왜냐면 튜더가의 후손중에 적법한 결혼으로 태어난 사람으로 유일하게 남은 사람이 제임스 6세였기 때문입니다. (제임스 6세는 부계와 모계 모두 헨리 7세의 딸인 마거릿 튜더의 후손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
후에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
참고로 에섹스 백작이 죽을때는 36살, 엘리자베스 여왕은 68살이었습니다.-0-;;;
저 개인적으로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에섹스 백작을 "아들"같이 여겼으리라 생각됩니다. 왜냐면 가장 사랑했었던 로버트 더들리의 의붓아들인데다가 그가 자신의 정치적 후계자로 키운 인물이었으니까요.
엘리자베스 1세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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