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유세니는 예전에 했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연재를 하는 새마음 새기분으로 또하기로 했습니다.--;;
아는거 쓰면 편하거든요..ㅠ.ㅠ
스웨덴의 공주들...(6) 유셰니 : 오스카르 1세의 딸
스웨덴의 유셰니
Princess Eugenie of Sweden and Norway
(Swedish: Charlotta Eugenia Augusta Amalia Albertina)
(Stockholm Palace, 24 April 1830 – 23 April 1889 in Stockholm)
스웨덴의 유셰니 공주는 스웨덴의 오스카르 1세와 그의 부인인 로이히텐베르크의 조제핀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오스카르 1세의 부모인 칼 14세 요한과 데시데리아 왕비는 프랑스 출신으로 둘다 나폴레옹과 매우 인연이 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칼 14세 요한은 장 바티스트 베르나도트 장군으로 그는 프랑스 육군 원수 출신이었으며 나폴레옹의 오랜 정적이기도 했습니다. 1 유셰니의 할머니인 데시데리아 왕비는 나폴레옹의 첫번째 약혼녀로 유명했던 데지레 클라리였죠.
유셰니의 조부모
스웨덴의 칼 14세 요한과 데시데리아 왕비
칼 14세 요한은 프랑스 장군일때는 그래도 장군 같더니 어째 스웨덴 국왕되니까 옆집 아저씨 스타일로..--;;
유셰니의 아버지
오스카르 1세
슈틸러 작품
반면 유셰니의 외할아버지는 나폴레옹의 양자였던 외젠 드 보아르네였고 외할머니는 바이에른 공주였던 아우구스테였습니다. 유셰니의 어머니인 조제핀은 나폴레옹이 황제일때 태어났는데 나폴레옹은 이 양손녀에게 매우 다양한 호칭과 영지를 부여했습니다. 나폴레옹이 몰락한후 외젠은 처가인 바이에른 왕가에 의해 로이히텐베르크 공작이 되죠. (재미난것은 젊은시절 베르나도트는 외젠 드 보아르네의 친아버지인 알렉상드르 드 보아르네 휘하의 하급 장교로 복무한적이 있었다죠.) 유셰니라는 이름 역시 외할아버지인 외젠 드 보아르네의 이름을 땄습니다.
유셰니의 외조부모
로이히텐베르크 공작 외젠 드 보아르네와 바이에른의 아우구스테
둘다 슈틸러 작품
(바이에른 왕가가 사랑한 화가인 이유가 있군요..루드비히1세 여동생들 그림을 다 그렸더라는..)
유셰니의 어머니
요세피나 왕비
스웨덴 화가 작품
(쓰고 있는 티아라가 카메오 진주 티아라입니다.)
유셰니는 고명딸로 위로는 오빠가 세명있었고 동생으로 남동생이 한명있었죠. 어린시절부터 다른 아이들과 격리된 생활을 했던 유셰니는 어린시절 주로 오빠와 남동생과 생활했기에 사내아이들이 하는 놀이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오스카르 1세와 가족들
유셰니 공주는 맨오른쪽 서있는 여성입니다.
어린 소녀는 칼 15세의 외동딸인 로비사 공주입니다.
비록 베르나도테 가문이 "벼락부자"가문이긴 했지만 스웨덴의 통치가문이었으며, 요세피나 왕비의 이모들이 작센의 왕비,오스트리아 황후,오스트리아 대공비,프로이센의 대공비등 쟁쟁한 가문으로 시집갔고, 또 유셰니의 이모나 외삼촌들 역시 쟁쟁한 가문과 혼담이 이루어졌기에 유셰니 역시 꽤나 인기있는 신부감으로 여겨졌습니다. 특히 오빠인 칼이 프로이센의 루이제와의 혼담을 추진할때 유셰니 역시 프로이센 왕가와 혼담이 이루어질것이라 여겨졌습니다만 혼담은 이루어지지 않죠.
젊은 시절의 유셰니
유셰니는 어린시절부터 연약했는데다가 중병을 앓은뒤로는 스스로 결혼에 대한 희망을 버립니다. 매우 연약했기에 유세니는 스톡홀름에서 지낼수가 없어서 좀 남쪽인 고틀란드로 가서 머물러야할 정도였죠.
이전까지 스웨덴에서 결혼하지 않은 미혼 여성에게는 독립적 삶을 살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858년 미혼 여성에게도 독립적 삶을 살수 있도록 법률이 개정되었고 그 첫 수혜자가 바로 유셰니 공주가 되죠.
어머니 요세피나 왕비와 닮은 모습
참고로 맨위의 안티 사진도 이 초상화랑 이목구비가 똑같습니다.--;;
단지 자세가 안티사진을 만들뿐..ㅠ.ㅠ
유셰니는 어린시절부터 부모의 영향을 받아 예술에 조예가 깊었습니다. 유셰니의 부모는 모두 작곡을 했으며, 요세피나 왕비는 예술가들을 후원했죠. 유셰니는 오빠인 구스타프와 함께 자주 악기를 연주하고는 했고 자신의 작품을 작곡하기도 했습니다. 또 그녀는 미술에서 재능을 보여는데 조각에 재능을 보였고 조각작품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여러가지 책을 번역하는 일을 하기도 했죠.
유셰니 공주의 조각작품
스웨덴어로 까먹었는데 대충 "강아지와 대화하는 아이"정도로 해석될수 있는 제목이었습니다.
유셰니는 1850년대 이미 자선사업에 매우 심취합니다. 다양한 자선사업은 물론 여러 조합등에 참여해서 다양한 사람들의 권익을 대변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당시 왕족 여성들에게 허용된 의무보다 벗어난것이었죠. 권익을 대변하는 것은 의무가 아니었음에도 유셰니 공주는 매우 적극적으로 사회문제에 참여했습니다.
유셰니 공주는 자신의 병약함때문에 병을 가진 사람에게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습니다. 특히 유셰니는 병을 앓은후 한쪽 다리를 거의 못썼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그녀는 의료분야에 매우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아이들을 위한 병원이나 특별한 시설을 만들었으며, 장애인을 위한 시설도 만들었습니다. 이를 위해 유셰니는 자신의 수입대부분을 이곳에 썼으며 심지어는 물려받은 가문의 보석을 팔려고 하기도 했습니다. (유서깊은 가문의 보석을 파는것에 오빠인 오스카르 2세는 못마땅해했고 동생을 열심히 말렸고 동생에게 경제적 지원을 해줬습니다;...사실 유셰니 공주가 물려받은 보석중에 현재 스웨덴 웨딩티아라가 되는 카메오 진주 티아라가 있거든요. 이때 팔아먹었으면 왕실의 웨딩 티아라로 못봤을수도 있었겠죠.)
중년의 유셰니 공주
유셰니 공주는 조카들과 매우 친했고 나중에 자신의 보석이나 집을 조카들에게 물려줍니다. 특히 오스카르 2세의 둘째아들인 오스카르 왕자에게 고틀란드에 있는 자신의 집을 물려줬고 오스카르 2세의 막내아들인 유셴 왕자에게는 유명한 "카메오 진주 티아라"를 물려주기도 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 '저는 모로 장군이 반역죄로 체포될 무렵에 두가지 세력이 있다고 생각한답니다. 한쪽은 나폴레옹을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군(이탈리아 주둔 프랑스군)소속의 군인들이었고 다른 한쪽은 플랑드르 전선과 라인전선에서 싸운 사람들이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모로였죠. 그런데 재미난것은 베르나도트는 플랑드르와 라인전선에서 싸우다가 나폴레옹 휘하 이탈리아군으로 발령났었다는 점이죠. 이점은 매우 흥미로운데 이탈리아군 소속의 베르나도트는 나폴레옹과 그 휘하 장군들과 약간 어긋나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베르나도트는 이탈리아군 소속이었음에도 나폴레옹의 휘하 장군들은 자신의 무리가 아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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