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스웨덴

스웨덴의 공주들...(3) 매르타 : 오스카르 2세의 손녀

엘아라 2012. 1. 24. 06:00

스웨덴의 공주들...(3) 매르타 : 오스카르 2세의 손녀

 

 

 

스웨덴의 매르타

노르웨이의 왕태자비

Princess Märtha of Sweden

Märtha Sofia Lovisa Dagmar Thyra

(28 March 1901 – 5 April 1954)

 

매르타 소피아 로비사 다그마 티라는 오스카르 1세의 아들인 칼 왕자와 그의 부인인 덴마크의 잉에보리의 둘째딸로 태어났습니다. 칼왕자의 가족들은 스웨덴에서 매우 인기있는 왕족들이었뿐만 아니라 노르웨이에서도 인기 있었던 왕족이었습니다. 노르웨이가 스웨덴으로부터 독립하기 전 여러가지 계획들중에는 칼 왕자를 국왕으로 노르웨이의 독립을 추진한 적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오스카르 2세는 노르웨이 독립에 대해서 단호하게 거부했었기에 이는 이루어질수 없었죠.

매르타는 부모와 가족들과 함께 왕굴에서 떨어져 소탈한 생활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주 칼 왕자의 딸들이 아버지가 사준 군것질 거리를 들고 먹는것을 보곤했었죠.

 

 

칼왕자와 잉에보리 왕자비에 대한 그림중 하나

아마도 칼 왕자를 국왕으로 노르웨이를 독립시켜야한다는 의견이 나올때 나온 그림인듯합니다.

왼쪽에 노르웨이 국민들이 있고 오른쪽에는 칼의 형인 구스타프 5세가 있군요.

 

친할머니인 소피아 왕비와 언니 마르가리타와 함께 있는 매르타

 

1928년 매르타는 사촌인 노르웨이의 왕태자인 올라프와 약혼합니다. 둘은 어린시절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였는데 특히 둘은 덴마크에서 가끔 만났는데 올라프는 덴마크의 프레데릭 8세의 손자였고 매르타는 프레데릭 8세의 외손녀였기에 할머니인 루이세 왕비(스웨덴의 로비사 공주)를 만날때 알고 지냈었습니다.

훗날 올라프는 아내에게 처음으로 사랑을 느꼈던 때가 할머니 루이세 왕비의 70번째 생일때 만났을때였다고 회고했습니다.

 

 

부모와함께 있는 어린시절의 올라프

노르웨이의 호콘 7세와 그의 부인인 모드

호콘 7세의 어머니인 로비사 공주는 스웨덴의 칼 15세의 딸이었고 호콘 7세가 노르웨이 국왕이 되기전 이름 역시 외할아버지의 이름을 딴 칼 이었습니다.

 

둘이 사랑에 빠졌지만 결혼은 매우 미묘한 문제였습니다. 노르웨이는 스웨덴에서 독립한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비록 평화롭게 연합왕국 관계를 해체하긴 했지만, 한때는 양국간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기운이 돌 정도였기에 스웨덴 공주가 노르웨이 왕자와 결혼한다는것은 정치적으로나 외교적으로 껄끄러운 문제일수 있었습니다.

결국 오랜 약혼기간끝에 1929년 매르타는 올라프와 결혼합니다.

 

올라프

후에 노르웨이의 올라프 5세

 

매르타는 노르웨이에 와서 매우 인기있는 왕족이 됩니다. 그녀는 어린시절부터 소탈하게 살아왔으며 사람들을 편안하게 대하는 가족분위기에서 살았죠. 이런 스타일은 노르웨이에서도 그대로 이어갔으며 이때문에 노르웨이 사람들은 매르타를 좋아하게 됩니다.

 

매르타와 올라프 사이에는 모두 세명의 아이가 태어나는데 첫째는 랑닐, 둘째는 아스트리드 공주였고 막내는 후계자이자 현 노르웨이 국왕인 하랄이었죠. 하랄은 결혼 8년만에 태어난 기다리고 기다렸던 후계자였습니다. 이때문에 매르타의 어머니인 잉에보리 왕자비는 딸에게 시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유서깊은 에메랄드 티아라 세트를 선물하기도 합니다. 이 에메랄드 티아라 세트는 나폴레옹이 조제핀에게 선물한 것으로 후에 조제핀의 손녀인 스웨덴의 요세피나 왕비가 물려받아 스웨덴 왕실에 전해져오던것이었죠.

 

 

결혼식때쯤의 매르타와 올라프

 

2차대전 직전 올라프와 매르타는 미국을 공식방문합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죠. 또한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루즈벨트와 그의 부인인 엘레노어 루즈벨트와 친한사이가 됩니다. 이 우정은 훗날 매르타에게 큰 도움이 되죠.

2차대전이 일어나자 노르웨이는 독일의 공격을 받습니다. 결국 왕실가족들은 노르웨이를 떠나 망명하기로 결정했는데 올라프와 그의 아버지인 호콘7세는 영국으로 갑니다. 매르타와 아이들은 안전을 위해서 고향인 스웨덴으로 가기로 했습니다만, 스웨덴 의회에서 매르타와 아이들의 안전 보장을 거부합니다. 당시 스웨덴은 중립국이었기때문에 노르웨이 왕족들을 받아들이는것을 거부한것이었죠. 매르타는 어린 아들인 하랄이 독일에 이용당할것을 우려하면서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이때 루즈벨트 대통령이 매르타와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배를 보내 미국으로 데려옵니다. ( 매르타는 스웨덴 공주였는데 모국인 스웨덴에서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것에 대해서 스웨덴 국민들이 반감을 가졌고 반 독일 정서가 심해졌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매르타는 노르웨이를 돕기 위한 일을 합니다. 여러 단체를 후원했으며 정치적으로 미국이 노르웨이를 돕도록 노력하죠. 루즈벨트 대통령과의 친분은 매르타에게 무척이나 도움이 됩니다. 몇몇 짧은 일정을 제외하고 매르타는 전쟁기간 내내 남편과 떨어져 아이들과 함께 미국에서 지냈습니다. 

 

 

1944년 미국 방문 중

엘레노어 루즈벨트와 함께 있는 매르타와 올라프

 

전쟁이 끝난후 노르웨이 왕실 가족들은 노르웨이로 돌아왔고 매르타는 노르웨이 국민들로 부터 매우 큰 환영을 받습니다. 이후 노르웨이 왕위계승자의 부인이자 왕실에서 제일 높은 지위의 여성으로 여러가지 일을 했습니다. (매르타의 시어머니인 모드 왕비는 2차대전전에 사망했습니다.)

 

 

노르웨이로 돌아가는 노르웨이 왕실 가족들

 

매르타는 전쟁직후부터 건강이 좋지 못했고 여러가지 병에 시달렸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국왕이 되기전인 1956년 오슬로에서 사망합니다.

 

 

 

매르타와 올라프

 

자료출처

1. 위키 피디어

2. http://www.theroyalforums.com/forums/f189/1905-2005-march-biography-m-rtha-5214.html

사진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