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스웨덴

스웨덴의 공주들...(4) 아스트리드 : 오스카르 2세의 손녀

엘아라 2012. 1. 31.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이제 칼왕자의 막내딸에 대해서 이야기 할차례네요.

칼왕자의 막내딸은 아스트리드로 벨기에의 왕비였습니다. 벨기에에서 매우 사랑받던 왕비였지만 안타깝게 죽은 이 공주 이야기를 해볼까요

 

스웨덴의 공주들...(4) 아스트리드 : 오스카르 2세의 손녀

 

 

 

 

 

스웨덴의 아스트리드

벨기에의 아스트리드 왕비

Astrid of Sweden

Astrid Sofia Lovisa Thyra of Sweden

(17 November 1905 – 29 August 1935)

 

스웨덴의 아스트리드 소피아 로비사 티라는 오스카르 2세의 셋째아들인 칼왕자와 그의 부인인 덴마크의 잉에보리의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후에 아스트리드의 밑으로 남동생인 칼이 태어나죠.

아스트리드는 부모와 언니들과 남동생들과 함께 소탈하게 살았고 스웨덴에서 "칼 왕자의 가족들"은 매우 인기 있는 왕족들이기도 했습니다.

 

 

아스트리드의 부모

스웨덴의 칼 왕자와 그의 부인인 잉에보리

 

아스트리드는 20살 무렵 무도회에서 멋진 왕자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벨기에의 알베르 1세와 엘리자베트 왕비의 큰아들이자 벨기에의 제1왕위계승자였던 브라반트 공작 레오폴이었죠. 아스트리드와 레오폴은 함께 춤을 추면서 첫눈에 반해버립니다. 그리고 몇달후 둘의 공식 약혼이 발표됩니다.

당시에도 많은 왕족들이 정략결혼을 했었습니다만 둘의 결혼은 정략결혼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레오폴의 어머니인 엘리자베트 왕비는 레오폴과 아스트리드의 결혼은 정략결혼이 아니라 사랑에 빠져서 결혼한것이라 언급했었죠.

 

 

약혼 발표때

 

아스트리드와 레오폴은 1926년 결혼했는데 결혼전부터 아스트리드는 벨기에 국민들에게 매우 환영받는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둘이 결혼한후에 아스트리드는 벨기에에서 가장 인기있는 왕족이 됩니다. 아름답고 소탈한 아스트리드에 국민들은 큰 사랑을 보냈죠.

 

 

결혼식때 레오폴과 아스트리드

 

아스트리드는 결혼후 가톨릭으로 개종합니다. 스웨덴 왕가는 루터파였고 벨기에 왕가는 가톨릭이었는데 아스트리드는 결혼식때 개종하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아스트리드에게 조언을 하던 사제들이 "진정으로 개종을 원하게 되면" 그때 개종하라고 이야기했고 결국 아스트리드는 1930년에 개종을 결심합니다. 아스트리드의 시아버지인 알베르 1세는 며느리의 개종을 매우 기뻐했다고 전해집니다.

 

 

알베르 1세와 그의 가족들

가운데가 알베르1세 오른쪽옆은 엘리자베스 왕비 왼쪽옆은 딸인 마리조제(이탈리아 왕비)

마리 조제 옆이 레오폴, 엘리자베트 왕비 옆이 알베르 1세의 둘째아들 샤를 그 옆이 아스트리드

 

 

1934년 아스트리드의 시아버지인 알베르 1세가 등산을 하다가 추락해서 사망했고 레오폴이 벨기에의 레오폴 3세가 되죠. 아스트리드 역시 왕비가 되었고 왕비로써 많은 일을 했습니다. 특히 어린이와 여성에 대한 일들을 했으며 1935년 벨기에의 경제위기 당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자선사업을 했습니다.

 

 

아스트리드와 레오폴 3세

 

1935년 8월 아스트리드는 남편과 위의 두 아이들과 함께 스위스로 휴가를 옵니다. 아스트리드와 레오폴은 아이들이 벨기에로 돌아간 뒤 자동차를 타고 기분전환을 하러 갑니다. 운전기사가 있었지만 국왕이 직접 운전했고 왕비가 그 옆에 탔죠. 그리고 운전기사는 뒷자석에 동승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아스트리드의 마지막이었습니다. 레오폴이 운전하던 차는 길에서 벗어나 사고가 났으며 아스트리드는 차에서 튕겨져 나가 사망했습니다. 레오폴은 경미한 부상만 입었고 운전기사는 전혀 다치지 않았습니다.

 

아스트리드의 죽음은 벨기에는 물론 고향인 스웨덴에서도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아스트리드의 언니 매르타는 동생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고 이를 극복하는데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남편인 레오폴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그는 무척이나 큰 상심에 젖게 됩니다.

 

아스트리드가 죽은 장소에는 아스트리드를 기리는 교회가 세웠고 많은 벨기에인들과 스웨덴인들이 이곳을 참배했습니다.

 

아스트리드와 레오폴 사이에서는 모두 세명의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딸이자 큰 아이였던 조제핀 샤를로트는 룩셈부르크의 대공인 장과 결혼해서 룩셈부르크의 대공비가 되었습니다. 둘째아이이자 큰아들이었던 보두앵은 아버지가 퇴위한후 벨기에 국왕이 되었으며, 막내인 알베르는 현 벨기에 국왕입니다.

 

아스트리드 왕비와 아이들

왕비가 안고 있는 아이가 막내이자 현 벨기에 국왕인 알베르 2세입니다.

 

 

 

더하기

아내를 잃은 젊은 국왕에게 모든 사람들이 동정적이었습니다만 2차대전은 이 모든것을 바꾸게 됩니다. 레오폴 3세는 아내를 잃고 독일의 포로가 된 불쌍한 왕이었지만 그의 이런 이미지는 곧 한 여성에 의해 깨집니다. 미국 출신의 릴리안 바엘을 만난 레오폴은 곧 사랑에 빠지게 되죠. 그녀를 소개 시킨 사람은 국왕의 어머니인 엘리자베트 왕비였다고 합니다. 아들을 위해 새로운 사랑을 찾아준것이었죠.

릴리안 바엘은 아스트리드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의 여성이었습니다. 이때문에 벨기에 국민들은 그녀를 받아들이기 힘들었죠. 게다가 레오폴은 릴리안과 원래는 전쟁이 끝난후 결혼하려 했지만 릴리안이 임신하는 바람에 1941년 서둘러 결혼했습니다. 왕비가 죽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다른 사랑을 찾은 국왕에게 벨기에 국민들은 배신감을 느꼈을듯합니다. 게다가 연합국측의 과도한 흑색선전 역시 레오폴과 릴리안 바엘(레티 공비)의 사이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게 되죠.

하지만 레티 공비는 레오폴과 전처 자식들에게 매우 잘 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아스트리드의 딸이자 후에 룩셈부르크 대공비가 되는 조제핀 샤를로트는 레티 공비가 아버지와 결혼한후에 "어머니"라고 불러도 되냐고 할 정도였죠.

 

http://en.wikipedia.org/wiki/File:Lilian_baels.png

레티 공비 릴리안

릴리안 바엘

(저작권때문에 링크만 겁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