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스웨덴

스웨덴의 공주들...(5) 로비사 : 칼 15세의 딸

엘아라 2012. 2. 7.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베르나도트 가문에서 Princess칭호를 받은 딸네미들은 의외로 많이 없답니다.

원래 자손이 많이 없는 가문이었지만 특히나 귀천상혼하기도 하고 그래서 파팍 줄었다죠.

아마 한대에 딸네미들이 최고 많은 때는 현 국왕님 누나들 네명이 최고일듯합니다.

(덕분에 시빌라 왕자비가 엄청 스트레스 받았을듯...--;;;)

어쨌든 공주들이 파팍 줍니다.--;;;;

 

로비사나 유셰니 공주는 사실 했는데 그냥 한번더 하렵니다.-0-;;;;

 

스웨덴의 공주들....(5) 로비사 : 칼 15세의 딸

 

 

 

 

스웨덴의 로비사

덴마크의 루이세 왕비

Lovisa of Sweden 

Lovisa Josefina Eugenia

Louise Josephine Eugenie;

( 31 October 1851 – 20 March 1926)

 

스웨덴의 로비사 요세피나 유셰니아는 1851년 당시 왕태자였던 스웨덴의 칼 15세와 그의 부인인 네덜란드의 루이제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결혼후 스웨덴식 이름인 "로비사"로 불렸던 루이제는 네덜란드의 프레드릭 왕자와 프로이센의 루이제의 딸로 태어났죠. 그녀의 할아버지는 네덜란드의 국왕인 빌렘 1세였고 외할아버지는 프로이센의 국왕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였습니다만 루이제는 국왕의 손녀였을뿐이었습니다.

 

사실 칼은 루이제와 결혼하기전 다른 루이제와 약혼했었습니다. 그녀는 프로이센의 루이제로 빌헬름 1세의 딸이었죠. 하지만 칼은 루이제와의 혼담을 깨버렸는데 정략결혼이었던 이 혼담을 함부로 깨버린것은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베르나도테 가문이 스웨덴의 왕가로 자리잡긴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벼락부자"라는 시선이 강했기에 이런식으로 대가문과의 혼담을 깨는것은 매우 불리했죠. 후에 네덜란드의 루이제와 다시 혼담이 진행되었는데, 이때도 칼은 루이제를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만, 이번 혼담마저 깨진다면 더이상 혼담이 이뤄지지 않을것을 우려해서 그냥 결혼했다고 합니다.

 

 

로비사의 부모

스웨덴의 칼 15세와 로비사 왕비

 

 

이 때문에 로비사의 부모인 칼 15세와 로비사 왕비는 매우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둘은 외동딸인 로비사를 매우 사랑했는데 특히나 아들이자 후계자였던 칼 오스카르가 사망한후에는 더욱더 로비사를 사랑했습니다. 특히 칼 15세는 외동딸을 끔찍히 아꼈고, 딸을 위해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로비사는 어린시절부터 그다지 예쁘지 않은 외모에 아버지의 편애로 매우 명랑하고 행복한 아이로 성장합니다. 칼 15세는 딸을 끔찍히 아꼈기에 당시 소녀들보다 더 활발한 활동을 하도록 허락했는데 로비사 왕비는 딸이 너무 "사내아이"같아질까봐 걱정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Sessan이라는 애칭으로 불렸지만 로비사 공주 스스로는 "스톡홀름의 부랑아"라고 불렀기에 숙부인 오스카르 왕자는 조카의 이런 행동에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자라면서 로비사는 어머니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고, 곧 얌전하고 신앙심 깊은 소심한 처녀로 자라나게 됩니다. 특히 대중앞에 나서는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어머니의 성격을 많이 이어받습니다.

 

 

어린시절의 로비사

 

한때 로비사를 스웨덴의 여왕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이전에도 스웨덴은 여왕을 인정했고 사실 스웨덴 법률 자체로는 로비사가 여왕이 되는것에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스웨덴과 연합 왕국을 이루었던 노르웨이는 살리카법을 따랐고 이때문에 로비사가 즉위한다면 노르웨이는 독립하려 할것이기에 결국 로비사가 왕위계승자로 만들려던 논의는 숙부인 오스카르 왕자에게 아들이 태어나면서 끝나게 됩니다.

 

얌전한 처녀로 자란 로비사는 열여덟살에 덴마크의 왕태자인 프레드릭과 결혼합니다. 이 결혼은 당시 흔한 정략결혼이었습니다. 처음에 덴마크 왕실에서는 로비사와 프레드릭의 결혼을 반기지 않았습니다. 특히 프레드릭의 어머니였던 루이세 왕비(크리스티안 9세의 왕비)는 대중앞에 나서는것을 꺼렸고 매우 어둡고 종교적이었던 로비사 왕비의 영향을 받은 로비사 공주가 덴마크 왕실 분위기와 맞지 않을것이라 여겼다고 합니다. 하지만 로비사는 외동딸이어서 물려받을 재산이 많았으며, 또 당시 유행하던 범스칸디나비아주의때문에 덴마크 국민들의 지지를 얻는 결혼이 될것이기에 로비사와 프레드릭의 결혼은 성사되죠.

 

 

로비사와 남편 프레드릭 후에 덴마크의 프레드릭 8세

 

로비사는 덴마크 왕태자비로 덴마크에 갔을때 매우 큰 환영을 받습니다. 스웨덴의 공주가 덴마크로 시집간것은 중세 이후 처음이었고, 북유럽국가간의 동맹을 중요하게 여기던 시기에 매우 환영받았죠. 로비사는 덴마크 국민에게 인기 있는 왕족이 됩니다만 왕실 가족들에서는 그다지 인기가 없었습니다.

아름다웠던 크리스티안 9세의 딸들보다 미모가 딸렸는데 특히 영국의 알렉산드라 왕비와 러시아의 마리야 황후가 올케를 못마땅해했다고 합니다. 반면 또다른 시누이인 티라와는 잘 지냈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그리스 조카들은 로비사를 "앤트 스완"이라고 불렀는데 그 이유가 로비사가 고니처럼 목이 휘고 입이 튀어나와서였다고 합니다.--;;;(좋은 이유가 아니어서 좌절이었다는....) 또 시어머니인 루이세 왕비 역시 로비사를 못마땅하게 여겼는데 로비사가 공적의무를 싫어한다고 생각해서였습니다.

 

 

시누이인 티라와 함께 있는 로비사

...미모가 좀 비교되죠..ㅠ.ㅠ

 

로비사와 프레드릭의 결혼은 행복한 결혼은 아니었습니다. 로비사는 시댁 식구들과의 관계로 힘들었지만 그녀의 남편인 프레드릭은 로비사를 도와주지 않았죠.

 

로비사는 시간이 갈수록 어머니처럼 공적인 생활보다 점차 사적생활을 좋아했고 종교적으로 변해갔습니다. 특히 부모의 죽음이후 고아가 됐다는 생각으로 더 그랬던듯합니다. 그녀는 어머니처럼 정치에는 관여하지 않았으며 아이들을 매우 엄격하게 교육시켰죠. 이것은 자신의 어린시절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특히 자녀들의 귀천상혼을 용납하지 않았는데 막내딸인 다우마는 어머니가 죽은후에야 평민과 결혼할수 있었습니다. (로비사의 시어머니인 루이세 왕비가 못마땅해한것이 어느정도는 이해가 되는데 왕족들은 대중앞에 나서야함에도 저렇게 혼자만의 생활을 고집하는것이 못마땅했을듯합니다. 왕위계승자의 부인은 많은 사람들에게 모습을 보여주고 만나야하는데 말입니다.)

 

로비사는 어머니처럼 많은 자선단체를 후원했고 예술가들을 후원했습니다. 그리고 왕비가 된 후에도 이를 지속합니다.

 

 

나이든 후의 로비사

 

로비사는 4남4녀 모두 여덞명의 아이를 낳았습니다. 로비사의 장남인 크리스티안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10세가 됩니다. 로비사의 둘째아들인 칼은 후에 노르웨이의 국왕으로 선출되면서 "호콘"으로 이름을 바꾼 호콘 7세입니다. 로비사의 둘째딸인 잉에보리는 오촌인 스웨덴의 칼 왕자와 결혼해서 스웨덴의 왕자비가 되었고 앞에서 이야기한 세명의 공주들인 마르가레타,매르타,아스트리드의 어머니가 되죠.

 

 

북유럽의 세 국왕들

왼쪽에서 노르웨이의 호콘 7세 스웨덴의 구스타프 5세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10세

구스타프 5세는 로비사의 사촌이고 호콘7세와 크리스티안 10세는 로비사의 아들입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