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스웨덴

스웨덴의 공주들....(1) 잉리드 : 구스타프 6세 아돌프의 딸

엘아라 2012. 1. 10.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그리스 공주들 이야기 끝난걸 깜빡할뻔했네요 루이즈 왕비 이야기를 특집으로 쓰느라 다른 이야기들을 써야할것을 하나도 생각안했답니다. 아하하하...-0-;;; 백수주제에 글이라도 열심히 써야하는데 말입니다..ㅠ.ㅠ

 

그래서 뭘할까 고민하다가

그래!!필받은 김에 스웨덴 공주들 이야기를 하는거야!!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베르나도테 가문은 대충 다 봐놨으니 대충 그냥 사진이나 찾으면 되고 그 이전 가문들은 지금이라도 열심히 읽으면 되지!!라고 생각했는데 ...베르나도테 가문에 공주들이 몇명없는걸 깜빡했습니다..ㅠ.ㅠ

그래도 한 달은 버틸수 있으니 얼른 다른 공주들 이야기를 읽으면 돼!!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시작해봅니다.

요즘 구글번역기가 좋아진건지 아니면 능력자께서 영어 위키와 스웨덴어 위키를 동시에 쓰시는건지 하여튼 둘 내용이 거의 비슷해서 좋습니다. (이제 제가 어설픈 스웨덴어 찍기를 안해도 된다는거죠..ㅎㅎㅎ)

늘 그렇듯이 살아있는 사람들은 제외입니다. 그리고 시대는 거꾸로 올라갑니다.^^*

 

스웨덴의 공주들....(1) 잉리드 : 구스타프 6세 아돌프의 딸

덴마크의 잉리드 왕비

 

 

 

 

스웨덴의 잉리드

덴마크의 왕비

Ingrid of Sweden

(Ingrid Victoria Sofia Louise Margareta)

(28 March 1910 – 7 November 2000)

 

스웨덴의 잉리드 빅토리아 소피아 루이즈 마르가레타는 당시 왕태자였던 구스타프 아돌프(후에 구스타프 6세 아돌프)와 그의 부인인 코넛의 마거릿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잉리드는 위로 두 오빠가 있었고 밑으로 두 남동생이 있던 고명딸로 어머니나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특히 마거릿은 고명딸인 잉리드와 매우 강한 유대관계를 가졌던것으로 보입니다. 잉리드 본인도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매우 강하고 소중하게 간직했습니다. 이런 유대는 훗날 새어머니와의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게 하기도 합니다.

 

 

잉리드의 어머니

코넛의 마거릿

스웨덴 궁정 예복을 입은 모습

티아라가 혼수로 해온 코넛 티아라군요

 

잉리드가 10살무렵이던 1920년 잉리드의 어머니인 마거릿은 여섯째아이를 임신중이었는데 갑자기 사망합니다. 이는 매우 급작스러운 일이었는데 5월 1일 마거릿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수상이 메이데이 연설을 하다가 말고 급하게 마거릿의 남편인 왕태자에게 무슨일이 일어난거냐고 물을정도였다고 합니다.

 

 

가족사진

..위키에는 애들 다섯 다 있는 사진은 안 올라오네요..ㅠ.ㅠ

 

잉리드가 13살이 되던 무렵인 1923년 잉리드의 아버지인 구스타프 아돌프는 재혼을 합니다. 바로 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으로 잉리드와는 육촌관계이기도 했습니다.(루이즈의 어머니인 빅토리아가 잉리드의 어머니인 마거릿과 사촌관계입니다.) 잉리드는 아버지의 재혼을 받아들일수 없었는데 루이즈의 어머니인 빅토리아는 사윗감과 그 가족들이 만난 자리에 나온 잉리드를 보고 "매우 우울해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잉리드는 루이즈와 거리를 뒀으며 루이즈에게 절대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았다고 합니다.사춘기 소녀에게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의 재혼은 굉장히 받아들이기 어려웠을듯합니다.

 

 

14살의 잉리드

...질풍 노도의 시기..--;;;

 

게다가 잉리드는 곧 스웨덴을 떠나 영국으로 가서 교육을 받게 됩니다. 코넛 공작은 외손녀를 영국에서 교육시키기로 하고 데려오죠. 이때문에 루이즈와는 거의 알시간도 없이 다시 떨어지게 됩니다. 영국에서 잉리드는 영국 공주들과 비슷한 교육을 받고 자랍니다. 야외스포츠를 즐겼는데 승마와 수영 스케이트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잉리드는 영국에서 머물렀고 자라면서 영국 왕실에 중요한 혼담 상대로 여겨지게 됩니다. 영국 왕위계승자에게 어울리는 적당한 나이의 신교도 공주였기 때문이죠. 영국 언론들은 잉리드를 웨일즈공 (후에 에드워드 8세, 윈저공작)의 부인감으로 여기거나 아니면 그 동생인 조지왕자(후에 켄트 공작)의 상대로 여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잉리드는 영국 왕가와는 인연이 아니었죠. 잉리드는 조지의 결혼식때 들러리를 서기도 했습니다.

 

잉리드의 결혼 상대는 덴마크의 왕태자였던 프레데릭이었습니다. 프레데릭은 한때 친척이었던 그리스의 올가 공주와 약혼까지 했습니다만 파혼했었습니다. 아마도 둘은 (특히 올가쪽에서) 결혼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고 여겨집니다. 프레데릭은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10세와 그의 부인인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알렉산드리네의 아들이었습니다. 프레데릭의 할머니는 역시 스웨덴의 공주이기도 했죠. 또 프레데릭의 이모는 독일의 마지막 황태자비인 체칠리에였습니다.

 

 

프레데릭의 부모와 어린 프레데릭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10세와 그의 부인인 알렉산드리네

 

 

잉리드의 남편

프레데릭

 

1935년 스웨덴에서 결혼식을 올린 잉리드는 남편과 함께 덴마크로 갑니다. 크리스티안 10세는 매우 가부장적인 사람으로 아들과 아내에게 매우 강압적인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아들들은 그를 두려워했죠. 잉리드는 이런 시아버지의 비위를 잘 맞췄고 남편과 시아버지 사이에서 무척 노력했다고 합니다.

 

2차대전이 일어났을때 덴마크는 독일에 점령당합니다. 덴마크 왕실가족들은 코펜하겐에 모두 남았고 잉리드 역시 남편과 함께 덴마크에 머뭅니다. 잉리드는 개인적인 용기와 의지를 가지고 독일 점령에 항거했고 이런 모습은 덴마크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되죠. 특히 유모차를 끌고 가는 잉리드의 모습은 덴마크 저항의 상징중 하나였습니다. 잉리드의 할아버지인 구스타프 5세는 손녀의 안위를 걱정해서 스웨덴으로 오라고 권합니다. 하지만 잉리드는 남편곁에 머무는것이 의무라면서 할아버지의 제안을 거절하죠.

 

잉리드와 프레데릭 9세

 

1947년 시아버지인 크리스티안 10세가 사망하면서 남편 프레데릭은 프레데릭 9세가 되었고 잉리드도 덴마크 왕비가 됩니다. 잉리드는 덴마크 왕실을 좀더 국민들과 가깝게 합니다. 자주 모습을 드러냈으며 단란하고 행복한 가족 생활을 보여주면서 왕실과 국민들 사이의 거리감을 좁혀가죠. 또 낡은 의전등을 없애고 좀더 소탈하게 국민과 만날수 있는 자리도 마련합니다.

 

잉리드는 부모의 취미를 모두 물려받았는데, 어머니인 마거릿으로부터는 가드닝 취미를 물려받았고 아버지인 구스타프 6세 아돌프로부터는 예술과 역사에 대한 취미를 물려받습니다. 이때문에 잉리드는 왕실 소유성을 새로 꾸미기도 하고 역사적 배경을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잉리드는 완벽주의자에 열정이 넘쳤으며 강한 양성평등주의자이기도 했습니다.

 

잉리드는 매우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으며 자녀들과도 행복했기 때문에 아마 훗날에는 아버지와 새어머니를 이해했을듯합니다. 나중에 루이즈의 생일에 잉리드가 와서 사진을 찍은것도 있고 루이즈의 임종때 곁에 잉리드가 있었던것을 보면 잉리드도 루이즈에 대한 감정이 어릴때와는 많이 달랐을듯합니다.

 

 

스웨덴에서 부모와 동생 벨틸과 함께

....ㅠ.ㅠ 늘 보면서 생각하지만 스웨덴은 사진사들이 공화주의자인듯...

 

1972년 남편 프레데릭이 사망하고 딸인 마르그레타가 즉위한후, 잉리드는 의회에서 최고의 영예를 수여받습니다. 그녀는 "섭정"지위를 받게 된것이죠. 이것은 여왕과 여왕의 아들이 없을경우 왕실을 대표할수 있는 것으로 이 지위는 오직 왕위계승자가 될 왕태자만이 가질수 있는 지위였습니다.

 

잉리드는 모두 세명의 딸을 낳았는데 큰딸인 마르그레타는 덴마크의 여왕이 됐으며 둘째딸인 베네딕테는 자인-비트겐슈타인-베르레부르크의 공비가 되었고 막내인 앤 마리는 그리스의 왕비가 됐습니다.

 

잉리드는 자신이 스웨덴 공주였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을듯합니다. 그것은 보석에 대한 애착으로 흔적이 남아있는데 덴마크에는 베르나도테 왕가의 첫 왕비인 데시데리아 왕비의 티아라가 전해집니다. 이 티아라는 잉리드의 시할머니였던 로비사 공주가 자신의 증조할머니인 데시데리아 왕비에게서 물려받은것이었죠. 잉리드는 이 티아라를 무척 좋아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옛날 스타일이던 이  티아라를 현재 스타일로 만든것도 잉리드 왕비였습니다.

 

 

 

왕비시절의 모습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텔레그라프의 잉리드 특집기사 (주소가 기억 안남.-0-;;)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